석기자미술관(235) 앙리 미테랑 『교차된 편지들 1858-1887』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프랑스 남부 연안 도시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에서 나고 자란 전도유망한 소년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은 훗날 행동하는 지식인의 상징으로 불린 작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 또 한 명은 훗날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게 될 위대한 화가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이었다.
중학교에서 만난 둘은 끈끈한 우정으로 맺어진 친구가 됐고, 중학교를 마친 졸라가 개인적인 사유 때문에 파리로 이사한 뒤로 장장 30여 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돈독한 우정을 이어갔다. 둘의 편지 가운데 현재 전하는 건 115통. 이 책은 그 편지를 전부 모아 2016년 프랑스의 유명 출판사 갈리마르가 출간한 『교차된 편지들 1858-1887』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건 세잔 때문이다.
처음에는 세잔도 인상주의자였다.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단체전에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과 <모던 올랭피아> 등 석 점을 출품했다. 이 가운데 <모던 올랭피아>는 가장 인상주의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하지만 세잔은 인상주의의 자장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예술 세계로 묵묵히 나갔다. 재현과 결별함으로써 피카소의 형님이 됐고, 색채의 마법을 실현함으로써 마티스의 형님이 됐다. 세잔을 ‘가장 지적인 화가’라 부르는 이유다.
남아 있는 두 사람의 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 1858년, 졸라가 파리로 이사한 직후에 세잔이 졸라에게 보낸 것이다. 열아홉의 세잔과 열여덟의 졸라. 한창 감수성이 폭발했을 10대의 마지막 시기에 이른 두 젊은이는 고향에서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며, 서로를 향한 그리움을 토로하며, 습작한 시와 산문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편지로 대화를 나눈다. 1858년 6월 14일 졸라가 세잔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친애하는 친구, 네게 아주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말하려고 해. 사실 나는 센 강물에 벌써 몸을 담가보았지. 강의 가장 넓은 폭과 가장 깊은 곳, 모두 탐사해 보았지. 하지만 거기엔 백 년 묵은 소나무는 없었고, 한바탕 포도주를 마신 뒤 숙취를 가라앉혀줄 신선한 강물도, 풍부한 상상력으로 유쾌하고 짜릿한 대화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세잔도 없었지! 그래서 나는 센 강이 대수인가! 팔레트에서 우리가 함께한 산책과 강변에서 함께 거닐던 천국의 시간을 위하여! 라고 외치겠어.
파리는 거대하고, 유흥거리도 건축물도 여인들도 매력적이지. 엑스는 작고, 단조롭고, 인색하고, 여인들로 가득하지… (선하신 신께서 내가 엑스 여인들을 모욕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를).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엑스가 파리보다 더 좋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던 소나무 때문일까, 오사와 펠리온처럼 메마른 협곡에 겹겹이 쌓인 바위들 때문일까, 아니면 나를 매혹하는 그림 같은 프로방스의 자연 때문일까? 잘 모르겠어. 하지만 시인의 꿈을 꾸는 내 가슴은 막 새 단장을 마친 좋은 집보다 가파른 바위산이 더 좋다고 하고, 대도시의 부자연스러운 소음보다는 천연의 자연이 만들어내는 요동치는 물결 소리가 더 좋다고 하네. 아르크 강변과 고향 동네에 남겨둔 친구들 때문에 내가 부이야베스와 아이올리의 땅에 이토록 끌리는 것일까? 당연하지, 그 이유가 전부겠지.
고향 엑상프로방스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번잡한 대도시 파리에 이제 막 도착한 이방인 졸라가 소중한 친구들과의 추억이 담긴 정겨운 고향을 그리워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한 명은 작가의 길을, 또 한 명은 화가의 길을 갔지만, 두 사람의 공통된 정서적 뿌리는 풍요로운 자연에 둘러싸인 고향에 있었다.
세잔과 졸라가 주고받은 편지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지금이야 전화로, 문자로 하루에도 몇 번이고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라지만, 당시에는 편지 말고는 소식을 전할 다른 수단이 없었으니. 세잔은 세잔대로, 졸라는 졸라대로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를 어딘가에 고이 보관했겠지만,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많은 편지 가운데 상당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책의 어느 부분에선 졸라의 편지만 읽게 되고, 또 다른 부분에선 세잔의 목소리만 듣게 된다.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퍼즐을 맞추는 느낌이랄까.
파리의 선진 문물을 먼저 경험한 졸라는 1860년 3월 25일 편지에서 지금도 파리에 가면 볼 수 있는 저 유명한 <이노상 분수>를 본 일을 세잔에게 들려준다.
얼마 전 복원 공사를 하던 장 구종의 분수대 천막을 걷어냈지. 이 분수대는 한때 ‘미라클 거리’라 불리던 곳에 있는데, 주위엔 작고 어여쁜 정원이 있어서-지상의 존재들이 얼마나 다채롭게 변화하는지 잘 보여주지. 사각형 모양의 이 르네상스 스타일의 분수대는 돔으로 덮여 있고, 그 아래 네 개의 뚫린 면에는 아치형 기둥이 있어. 그리고 기둥의 보이는 면 주위에는 아주 가늘고 긴 돋을새김이 옅게 되어 있어. 밖으로 보이는 면이 두 개이니 모두 여덟 개의 조각이 있는 셈이지. 각 면에는 멱 감는 여인의 조각과 ‘요정들의 정원’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검은 대리석 판이 있어. 그런데, 여기 새겨진 매력적인 여신들은 정말이지 내 삶의 가장 지루한 순간을 기쁘게 만들 만큼 사랑스럽고 우아하게 웃고 있어. 너도 장 구종의 작품을 잘 알 거야. (중략) 게다가 그 아치형의 기둥에는 옅은 돋음으로 새겨진 깃발을 들고 날아가는 작은 큐피드들이 주변 조각과 비슷하게 우아하고 매력적인 선의 기교를 뽐내고 있지. 마지막으로, 물은 그 사이로 층층이 떨어지지. -이 분수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내가 그 앞에서 넋을 잃고 쳐다보기 때문이야. 심지어 나는 그 사랑스러운 분수를 감상하려고 가던 길을 자주 벗어나서 그리 향할 때도 있어. 재 변변치 못한 표현력으로는 그 모든 우아함과 섬세한 간결미를 네게 전하기 힘든 것 같아! 그래서 언젠가 네가 여기 오면, 이 도시를 함께 산책하며 첫 번째로 할 일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이 분수를 보는 것이지.
같은 편지에서 졸라는 이어 당대에 천재 화가로 불린 네덜란드 출신의 아리 쉐퍼(Ary Scheffer, 1795~1858)의 작품 이야기도 꺼낸다. 화가가 되길 꿈꾸는 친구 세잔에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선물이라 여겼을 것이다. 아직 십 대 후반에 불과한 졸라의 예민한 감수성과 뛰어난 문필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파리의 천재 화가, 아리 셰퍼를 네가 아는지 모르겠군. 파리에서 그를 모르는 것은 범죄이지만, 지방으로선 그저 심각한 무지함이겠지. 셰퍼는 열렬히 이상을 추구하는 작가이지. 그의 모든 인물은 너무나 순수하고 가벼워서 투명할 정도야. 현실 세계는 거의 그리지 않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열정적인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말 그대로 시인의 피를 지녔다고 할 수 있어. 낯설고 가슴 아픈 그의 서정시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보다 더 시적인 회화가 있을까. 단테의 신곡 속 프란체스카와 그의 연인 파올로의 이야기는 너도 잘 알 거야. 비극적인 사랑 때문에 지옥에서 끔찍한 형벌을 받는 연인이지. 어둠 속에서 영원히 회오리바람에 갇힌 채 바람에 휩쓸려 허공에 있어야만 하는 끔찍한 운명에 처한 이들이지. 이 얼마나 멋진 주제인가! 또 작가에겐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암초일까! 그 궁극의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들은 형벌까지도 영원히 함께 받도록 묶여 있어! 고통도 그들의 사랑을 막지 못한 연인들은 어떤 표정이며, 작가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너도 이 판화를 한 번 찾아보길 추천한다.
졸라는 아리 셰퍼가 시인의 피를 지녔다고 적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보다 시적인 회화는 없다고 말한다. 시인의 마음. 시심(詩心).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가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미덕은 없다. 졸라가 인정한 대로 세잔은 일찍부터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을 지녔다. 그런 시적 감수성이 있었기에 훗날 세잔은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에서 내가 기대했던 건 훗날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세잔의 편지에서 작업과 작품, 예술에 관한 생생한 육성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아 있는 편지에서 세잔의 예술 세계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훗날 미술평론가로 활약한 졸라조차도 세잔의 그림에 관해선 좀처럼 의견을 드러내지 않았다. 바로 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였으므로.
졸라는 누구보다 세잔을 정확하게 보고 있었고, 남들이 뭐라든 세잔을 아끼고 사랑했다. 은행가 출신의 아버지로부터 받는 경제적 지원이 부족해질 때마다 세잔은 자신보다 일찍 파리에서 명성을 얻은 친구 졸라의 큰 도움을 받았다. 당대에 유행하던 인상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둔 세잔의 그림은 살롱전에서 매번 낙선했다. 낙선, 낙선, 또 낙선. 세잔은 영원한 낙선자 신세였다.
나는 감각하는 대로 그림을 그립니다. 내 감각은 매우 강렬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감각하고 보지만, 그들은 감히 그렇게 그리지를 못합니다. 그들은 살롱의 회화만을 그립니다. 그러나 나는 과감히 시도합니다…. 나는 나의 관점에 당당합니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결국 나일 것입니다.
세잔은 자기 예술에 관한 확고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살롱전에서의 잇단 낙선은 세잔에게 적잖은 스트레스를 줬다. 거듭되는 낙선에 지친 세잔이 어느 날 살롱전 심사위원이던 친구를 찾아간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 친구는 세잔을 추천했지만, 결과는 또다시 낙선이었다. 세잔은 나중에 바로 그 친구의 추천으로 살롱전에 그림을 걸 수 있었다. 세잔은 끊임없이 살롱전 문을 두드렸다. 그러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좇지 않았다. 세잔의 그림이 인정받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1878년 4월 14일 세잔은 졸라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알렉시네 시골 마을 근처 철로를 달리다 보면 동쪽으로부터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놀라운 모티프 하나가 펼쳐지지. 바로 생트-빅투아르 산과 보르쾨이를 뒤덮은 암석들이야.
그렇게 서서히 세잔은 훗날 자기 회화 예술의 절정을 이룰 생트-빅투아르 산에서 자신의 모티프를 찾았다. 나의 독서는 이런 작은 실마리를 찾아가는 흥미진진한 여정이었다. 뛰어난 독서가였던 세잔이 편지에서 유일하게 친구 졸라에게 추천한 미술책이 있다. 『적과 흑』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프랑스 문학가 스탕달의 『이탈리아 회화의 역사』다.
아주 흥미로운 책을 하나 샀어. 내겐 부족한 면인 섬세한 관찰력으로 구성된 책이고, 실제 일어난 일화들과 사실로만 구성되어 있어! 그리고 이런 저자들을 우린 역설적 저자라고 하지. 스탕달의 『이탈리아 회화의 역사』인데, 자네도 읽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꼭 이 책을 추천하고 싶네. 이 책을 세 번째 읽는 중인데, 1869년에는 제대로 읽지 못한 것 같아.
이 편지를 쓴 해가 1878년이니 9년 전에 스탕달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땐 몰랐던 무언가가 다시 책을 읽으면서 강렬하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스탕달은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를 찾아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품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감상하다가 무릎에 힘이 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여러 차례 경험했다. 여기에서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 유래했다. 스탕달의 책은 2002년 『스탕달의 이탈리아 미술 편력』이란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됐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에게도 ‘찐 우정’을 나눈 화가와 시인들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겸재 정선과 사천 이병연이다. 둘도 없는 친구였던 시인 사천 이병연이 시를 보내오면 겸재가 그림을 그려 화답한 시화상간(詩畵相看)은 유명하다. 예술로 맺은 인연으로 예술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얼마나 감동적인가.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내용이 몹시도 궁금했는데, 출판사가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책이 나오자마자 보내주셨다. 다른 일로 독서를 미루다가 한여름에 받은 책을 늦가을에 읽었다. 출판사 소요서가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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