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뚫고 피어난 불멸의 예술혼

석기자미술관(241) 김인혜 『살롱 드 경성 2』(해냄, 2025)

by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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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주로 취재하면서 출판을 겸했던 나는 매주 월요일 아침 KBS 뉴스광장에 신간 서적을 엄선해 소개하는 「새로 나온 책」 코너를 꽤 오랫동안 맡아 만들었다. 방송에서 책이 인기라곤 없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현실에서 최소한 공영방송이라도 책 읽는 문화를 묵묵히 이어가야 마땅하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2019년 3월 문화부에 복귀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석연찮은 이유로 폐지됐던 「새로 나온 책」 코너를 되살린 일이었다. 그때부터 2023년 11월 문화부를 떠날 때까지 4년 8개월여 동안 거의 한 주도 빠짐없이, 웬만한 9시 뉴스보다 더 품을 많이 들여서 정말 열심히 「새로 나온 책」 뉴스를 만들었다. 소소한 자부심이라면 자부심이다.


미술을 주로 취재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매주 들어오는 신간 중에서 눈에 띄는 좋은 미술책이 있으면 뉴스에 소개하려 애썼다. 2023년 9월 11일 KBS 뉴스광장에 소개한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이 그중 하나다. 단순히 책만 보여주는 재미없는 뉴스를 만들지 않으려 본문에 나오는 주요 작품을 그래픽 이미지로 구성해 소개하고 책의 의미와 가치를 시청자에게 알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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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수십 권, 많게는 1백 권이 넘게 배달돼 오는 그 많은 신간 도서를 일일이 펼쳐보며 책을 고르고, 보도자료를 읽고, 책 본문을 발췌해 읽고, 원고를 쓰고, 촬영할 페이지를 정해 방송 카메라로 찍고, 자막을 맡기고, 자료 영상을 찾고, 최종 편집해 완성하기까지 ‘책 뉴스’ 만드는 일에는 정말 손이 많이 간다.


물론 시청자들은 모른다. 굳이 알 필요도 없다. 알아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그렇게 정성껏 소개한 책이 한두 명에 그칠지도 모를 잠재적인 독자에게 가 닿아서 책이 선택되고, 팔리고, 읽힌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런 마음으로 「새로 나온 책」을 만들었다. 국내 방송사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지금도 오직 KBS만 「새로 나온 책」 뉴스를 만든다.


사실 「새로 나온 책」 뉴스에 가장 빠르고 크게 반응하는 건 출판사다. 텔레비전 대신 넷플릭스를 보고, 책 대신 스마트폰을 보는 시대에 책은 설 자리를 더 많이 잃었다. 유튜브에서도 책 콘텐츠는 인기가 없다. 출판사는 갈수록 어렵다. 책을 내도 소개할 공간이 없다. 과거에는 주요 일간지 주말판이 책을 소개하는 가장 효과적인 창구였지만, 지금 종이 신문을 읽는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방송뉴스는 더 언감생심이다. 그러니 출판사들이 매주 월요일 아침 KBS 뉴스광장을 기다린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자랑처럼 들리겠지만, 그건 지푸라기를 잡는 일이었다. 그만큼 책을 말하는 미디어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다.


잡설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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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에 출간된 『살롱 드 경성』에 이어 2025년 5월 두 번째 책 『살롱 드 경성 2』가 해냄출판사에서 나왔다. 첫 권을 방송에 소개한 걸 기억해 준 출판사가 두 번째 책도 관심 있을 것 같다며 따로 내게 보내줬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올해 내내 다른 일에 집중해야 했던 탓에 필요한 대목만 부분 부분 읽었다가 마지막 달 12월이 돼서야 비로소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책을 보내준 출판사에 보답하는 길은 성실한 독자가 되는 일이다. 많이 늦은 책 빚을 이렇게 갚는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 하나. 조각가 김종영이 1973년에 종이에 펜과 수채물감으로 그린 <산동네 풍경>이다. 김종영에 관한 자료가 필요해서 넘겨보다가 이런 그림이 있었나 싶어 깜짝 놀랐다. 김종영은 서울 삼선교 부근 언덕 꼭대기 인적이 드문 달동네에 집을 얻어 살았다. 그림 속 산동네 바로 그곳이다. 가는 선과 두어 가지 색으로 달동네 정경을 이리도 근사하게 그려내다니.


김종영 산동네 풍경 1973.jpg 김종영, <산동네 풍경>, 1973, 종이에 펜‧수채, 53×38cm, 김종영미술관



자료를 찾아보니 김종영미술관이 2021년 11월 12일부터 2022년 2월 27일까지 연 김종영 조각 드로잉 상설전시 《동네풍경》에서 선보인 여러 그림 가운데 하나였다. 이 전시에서 김종영이 1930년대에 그린 유화 <동소문 고개>와 <고향풍경>, 그리고 <삼선동 풍경>, <동네풍경>이란 같은 제목의 드로잉 여러 점이 공개됐다. 김종영에 대한 앎이 짧아 이 전시를 못 본 게 한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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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으로 돌아와, 저자의 글솜씨가 상당하고, 책 내용도 꽤 알차다.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던 화가의 뜻밖의 면모를 알게 됐고, 모르는 화가의 존재를 새롭게 알아가는 즐거움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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