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이 쓴 이탈리아 미술사

석기자미술관(240) 『스탕달의 이탈리아 미술 편력』(이마고, 2002)

by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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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행동하는 지식인의 상징으로 불린 작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와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위대한 화가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이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2016년 프랑스의 유명 출판사 갈리마르가 출간한 『교차된 편지들 1858-1887』을 얼마 전 읽었다. 성실한 독서가이기도 했던 세잔이 편지에서 유일하게 친구 졸라에게 추천한 미술책이 있다. 『적과 흑』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프랑스 문학가 스탕달의 『이탈리아 회화의 역사 Histoire de la peinture en Italie』다.


다행히 2002년에 강주헌이라는 뛰어난 번역가를 통해 국내에도 번역본이 나왔다. 우리말 번역본 제목은 『스탕달의 이탈리아 미술 편력』이다. 책이 절판된 까닭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했다. 표지만 낡았을 뿐 속은 깨끗하다. 책이 나온 뒤로 내게 오기까지 23년 동안 아무도 읽지 않았을 거라 짐작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23년 만에 비로소 임자 만난 셈이다.


1805년, 당시 스물두 살이던 스탕달은 프랑스 육군에서 독일로부터 프랑스가 압류한 회화를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이때 나폴레옹 박물관장과 관계를 맺어 1810년에 나폴레옹 박물관 소장품 목록을 작성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스탕달은 세계 최고의 걸작들 속에서 미술을 보는 안목을 키웠다. 그리고 1811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해 말, 두 권 분량의 『이탈리아 미술 편력』을 쓴다.


그런데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이란 말인가. 1812년 스탕달은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나폴레옹 원정군의 전령으로 참전했다가 전투에서 크게 져 후퇴하는 와중에 원고가 든 가방을 적군에게 빼앗기고 만다. 원고가 사라졌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1813년 초 파리로 돌아온 스탕달은 처음부터 원고를 다시 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817년이 돼서야 『이탈리아 미술 편력』이 프랑스에서 출간된다. 스탕달의 첫 책이 세상에 나온 순간이었다.


이 책은 1부 <르네상스의 화가들>과 2부 <스탕달의 예술론>, 그리고 에필로그 <50시간 미술 감상 학습법>으로 이뤄졌다. 핵심은 르네상스 미술을 다룬 1부다. 2부와 에필로그는 오늘의 현실에 맞지 않으므로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탈리아 곳곳을 찾아다니며 작품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당대의 대표적인 이탈리아 미술책을 두루 섭렵한 뒤 자기만의 예리한 관찰력과 안목, 비판적인 시각으로 써낸 1부는 지금 읽어도 전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고 신선하다.


궁극적으로 이 책의 1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스탕달은 다 빈치에 관해 서술하면서 저 유명한 <최후의 만찬>을 아주 자세하게, 입체적으로 설명한다. 그중에서도 다 빈치의 창작 태도를 보여주는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콩트작가 지랄디의 책에 언급된 내용을 다시 인용한 대목을 읽어보자.


다 빈치 최후의 만찬.jpg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 1495~1498년경, 산타마리아 그라치에 성당, 밀라노



레오나르도는 예수와 11제자를 그다지 어렵지 않게 끝낼 수 있었지만 유다를 그리는 데는 무척 고심했다. 무엇보다 유다의 얼굴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가 막막했다. 이 부분에서 막혀 작업이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다. 식당이 온통 그림 도구로 어질러져 있는 것에 짜증이 난 수도원장이 마침내 로도비코에게 불평을 털어놓았다. 레오나르도에게 그림값을 두둑이 지불했던 로도비코는 레오나르도를 불러들여 작업이 그렇게 지체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레오나르도는 하루에 꼬박 2시간씩 그림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로도비코는 레오나르도의 말을 믿었다. 그래서 수도원장을 불러 레오나르도의 대답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러자 수도원장은 “폐하, 그는 한 사람의 얼굴, 그러니까 유다의 얼굴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후로 거의 1년 이상을 붓조차 잡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식당에 얼굴조차 비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수도원장의 대답을 듣고 로도비코는 레오나르도에게 속았다는 생각에 화를 버럭 내면서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이렇게 대답했다.


“수도자들이 그림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습니까? 물론 수도원장의 말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수도원에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하루에 적어도 두 시간씩 그 작품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수도원장이 말했다는 그 말은 틀린 것입니다.”

로도비코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 수도원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면서 어떻게 하루에 두 시간씩이나 그림을 생각했단 말인가?”


레오나르도가 대답했다.

“이제 유다의 얼굴만이 남아 있습니다. 폐하께서도 잘 알고 계시듯이 유다는 천하의 못된 불한당입니다. 그의 얼굴은 악랄하고 간악하게 그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1년 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매일 아침저녁으로 밀라노의 불량배들이 모여 살고 있는 보르게토를 뒤지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얼굴과 딱 맞아떨어지는 간악한 얼굴을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얼굴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하루 만에 그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얼굴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제 문제로 폐하께 불평을 터뜨린 수도원장의 얼굴로 유대를 그려볼 생각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수도원장이 제가 생각하는 얼굴의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만족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도원장을 웃음거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로도비코는 레오나르도의 이런 대답에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로도비코는 유다의 얼굴만이 남은 그림에 모든 수도자가 감탄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레오나르도가 하나의 그림을 완벽하게 그려내기 위해서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지를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레오나르도는 찾아 헤매던 얼굴을 마침내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얼굴의 특징을 스케치한 후 <최후의 만찬>에 옮겨 그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그림 또한 그렇다. <최후의 만찬>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의 오류에 대한 부분도 음미해 볼만 한 대목이다.


<최후의 만찬>을 보고 ‘최후의 만찬’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수 없다. 예수와 제자들이 네오나르도의 그림처럼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식사를 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레오나르도는 그런 것까지 고려해야 하는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였을 뿐이다. 운문 비극을 쓰는 극작가처럼 역사적 사실을 고증할 필요가 없었다.


역사의 진실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걷히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 우리는 깜짝 놀라며 그 사실에 관심을 가진다. 여기에서는 예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에서 식사법이 잘못되었다는 등의 예술과 관련한 무의미한 폭로는 우리 가슴을 관통해서 영혼까지 이르는 감동을 빼앗아 가버린다.


푸생 최후의 만찬.jpg 니콜라 푸생, <최후의 만찬>, 캔버스에 유채, 95.5×121cm, 1638~1640년경, 런던 내셔널갤러리



예수가 살던 당시의 식사법이 그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더라도 레오나르도는 절대 그렇게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푸생도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푸생의 <최후의 만찬>에서는 제자들이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그러나 푸생의 가치는 과거의 풍습을 충실히 반영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어려운 단축법을 사용해서 제자들을 그려냈다는 데 있다. 만약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예수가 제자들과 나눈 최후의 만찬을 보게 된다면, 아마도 너무나 놀라서 감동받을 여유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의 옛 조상들은 야만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컨대 위대한 화가들은 당시의 야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풍습을 걸러내고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고민한 사색가들이었다.


HRitIun-bFhfBmD5I81Sb9B3rCv7VIUBMOk3vGPvK-QjQodEG37NButl5BZ8sIPLlXh0Nk6m1_Krc6lNXyAIlg.jpg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패널에 유채, 77×53cm, 1503~1506년경, 파리 루브르박물관



저 유명한 <모나리자>에 관한 스탕달의 언급은 이렇다.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의 부인을 모델로 <모나리자>를 그렸다. (…) 그는 초상화 <모나리자>에만 4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수아 1세가 4만 5,000프랑을 선뜻 내놓으면서 그 초상화를 가져가려 했을 때, 레오나르도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직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고 극구 만류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의 화풍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해 주는 그림 중 하나이다. 유난히 눈에 띄는 오른손은 코레조의 수법을 보는 듯하다. 또한 그 아름다운 여인에게 눈썹이 없는 것도 이상하다.


다음 장에서 스탕달은 다 빈치보다도 훨씬 더 긴 분량을 할애해 또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 갔을 때 틀림없이 보았을 <피에타>에 관한 설명은 특히 더 인상적이다. 나 또한 15년 전에 <피에타>를 직접 봤지만, 그때의 감동이 이렇다 하게 기억에 남지 않았다. 스탕달의 문장을 읽으면서 이 위대한 조각품에 관한 희미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Pieta_de_Michelangelo_-_Vaticano.jpg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피에타>, 대리석, 174×195cm,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



인생의 황혼기에 이른 예수의 어머니, 남편을 사랑할 수 없었던 어머니, 영성으로 가득했지만, 평범한 사람처럼 감성적이었던 아름다운 아들에게 온갖 사랑을 쏟았던 어머니! 그 어머니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더 이상 의지할 곳도 없었다. 하찮은 복수심으로 그 찢어지는 가슴을 달랠 수는 없었다. 가난하고 연약한 여인이 광기 어린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들에게 어찌 맞설 수 있었겠는가? 그녀에게는 든든한 아들도 없었다. 입을 뗄 때마다 사랑이라는 이름과 감정을 민중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혼신의 정열을 쏟았던 아들, 여성이라면 가슴속까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온유함과 상냥함을 지녔던 아들, 이 세상의 모든 남자 중에서 가장 관대하고 친절했던 아들! 이제 그 아들이 그녀의 곁을 떠난 것이었다.


아들이 처절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아야 했던 어머니는 생명을 잃은 아들의 얼굴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오열하고 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어머니의 고통을 이보다 더 절실하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그러나 한적한 오두막집에서 일어났다면 한결 애절했을 법한 이 사건에서 종교는 교리의 가르침으로 그 슬픔을 간단히 씻어내 버린다. 마리아는 아들을 하느님이라 믿고 그런 믿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아들을 전지전능한 존재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종교는 가르친다. 이때부터 독자는 마리아의 영혼을 상상해 보기만 하면 된다. 독자가 진정으로 감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마리아가 예수를 어머니로서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옛날의 추억과 장래의 희망으로 어우러진 인간적 사랑을 아들에게 베풀 수 없게 된 어머니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죽음은 하느님의 계획에 예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이 하얀 수의에 싸여 있는 한, 그 죽음은 아들을 한없이 사랑한 마리아에게는 끔찍한 사건일 뿐 결코 감동적인 죽임일 수 없었다. 게다가 아들이 그녀에게 눈곱만큼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처럼 처절한 죽음을 어머니 마리아에게 보여주지 않았어야 했다.


아들의 죽음이 마리아에게는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는 점을 새삼스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지전능하고 한없이 선한 하느님이 인간에게나 있는 죽음이라는 고통을 겪은 것은 또 한 분의 한없이 선한 하느님의 복수심을 해소시켜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을 누가 쉽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마리아에게는 그녀의 눈앞에서 전개된 예수의 죽음이 무의미한 잔혹 행위로 여겨질 뿐이었다. 그러나 종교의 가르침에 세뇌된 우리가 한 어머니의 슬픔과 감정을 어찌 짐작이라도 해보겠는가!


스탕달은 미켈란젤로의 표현에 대한 그 시대의 비판에 관해서도 길게 적었다.


<피에타>에서 그리스도의 어머니는 우리 눈에 결코 아름다움의 표본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그 작품을 완성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서른세 살이나 된 사람의 어머니가 지나치게 젊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콘디비의 책에 따르면 그때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 여인은 성모였습니다. 순결한 영혼은 언제까지나 젊음을 간직하는 법입니다. 마리아의 순결함을 증거해주기 위해서 하늘이 그녀에게 영원한 젊음을 허락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구세주의 경우 하늘은 그분이 인간의 모든 불행을 짊어지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인간에 속한 것을 한 줌도 빼앗아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모는 나이보다 젊어 보이게 표현했지만, 구세주는 본래의 나이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정도의 설명이라면 신학자가 무색할 정도이다. 굽힐 줄 모르는 고집과 철저한 논리로 무장한 열정적인 사내의 변명이 아니다. 또한 그의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강인해 보이는 근육에 반론을 제기할 만한 해부학적 지식이 없었다. 미켈란젤로는 그리스도를 운동선수처럼 표현했다. 그가 생각하던 이상적 아름다움의 원칙으로는 그리스도의 미덕을 표현해낼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Apollo_del_Belvedere.jpg <벨베데레의 아폴론>, 흰 대리석, 224cm, 120~140년, 바티칸박물관



콘디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바사리의 추론을 인용해 볼까 한다. 바사리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극찬하면서 근육과 혈관과 힘줄의 표현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기 때문에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리스 조각가가 빚어낸 <벨베데레의 아폴론>을 보면서 우리가 “그래, 이게 바로 신의 모습이야!”라고 경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세한 표현의 과감한 생략과 울퉁불퉁한 근육의 절제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보다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스탕달은 이 책에서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의 저자 바사리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미켈란젤로를 서술한 대목에서는 생전에 미켈란젤로의 제자였던 바사리의 글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상 <다비드>에 관한 내용이 그렇다. 그러면서 정작 각주에는 “내 생각에 <다윗>은 아주 평범한 작품일 뿐이다. 특히 다리는 답답해 보일 정도이다.”라고 적었다. 스탕달이 가장 높이 평가한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모세>였다.


'David'_by_Michelangelo_Fir_JBU004.jpg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다비드>, 카라라 대리석, 517×199cm, 1501~1508,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Moses'_by_Michelangelo_JBU140.jpg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모세>(율리우스 2세의 묘비), 대리석, 1515, 로마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바사리는 <다윗>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실제로 <다윗>이 1504년에 완성되고 나자 당대의 조각은 물론이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까지도 그 명성을 잃어갔다. 로마의 마르포리오, 벨베데레의 <티그리스 강>과 <나일 강>, 몬테카발로의 거인들도 <다윗>에 비교될 수 없었다. 미켈란젤로는 그 조각에 모든 아름다움을 집약해 놓았다. 그처럼 우아한 자태의 입상을 본 적이 없었고, 그처럼 아름다운 윤곽의 다리 선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조각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늘날과 고대의 다른 조각가들이 빚어낸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정도였다.”


SistineChapel-57ffd66e5f9b5805c2ac4916.jpg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와 벽화



책을 읽다 보면 스탕달이 다 빈치보다 미켈란젤로를 더 높이 평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과 벽을 장식한 미켈란젤로의 그림 때문이다. 스탕달은 “인류의 역사에서 희귀한 일이 일어났다. 평생 혼신의 정열을 바쳐온 예술(조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다른 예술(회화)에서 전대미문의 결실을 맺어낸 예술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회화의 역사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규모가 큰 작업을 조각가가 해낸 것이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나는 다시 15년 전 시스티나 성당이라는 거대한 우주로 돌아가 목이 빠지도록 천장을 뚫어지게 쳐다본 기억을 새삼 떠올렸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스탕달의 생각에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책에서 본 남의 생각이 아닌 자기 시선으로 미술품을 감상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서양미술을 다룬 숱한 책들이 지금도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건 그 책을 쓴 저자의 시선일 뿐이고, 그 저자의 시선마저도 누군가가 쓴 책이나 글에서 읽은 내용을 정리한 데 불과한 것들이 수두룩한 형편이다. 그러므로 믿을 만한 책이 많지 않다.


좋은 책은 해석을 손에 쥐여주는 대신 미술품을 감상하는 눈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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