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House'가 아니라 'Home'이 필요해.
크리스마스를 어쩌다 펜트하우스에서 보냈다. 코로나 때문에 딱히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밴쿠버 다운타운 번화가에 위치한 호텔에서 조촐하게 놀기로 했는데, 코로나의 여파인지 뭔지 호텔 측에서 방을 업그레이드를 해주었고 어쩌다 맨 꼭대기 31층, 호텔에서 가장 큰 방에서 머물 수 있었다. 위로는 다운타운의 가장 큰 번화가 그랜빌 스트릿이, 아래쪽으로는 BC Place 경기장이 보여 경치도 좋았고, 무엇보다 한 번도 머물러 본 적 없는 '펜트하우스'라 신기했다. 아주 비싼 호텔은 아니었지만, 언제 또 내 인생에 호텔의 가장 위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기회가 있을까 싶어 은근히 신이 났다. 이런 데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상상하며.
설날이나 추석이 가장 큰 명절이자 휴일인 한국과 다르게 이곳 캐나다에서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를 가장 큰 휴일로 생각한다. 대부분 집을 아늑하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민 뒤 친구가 아닌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정석이다. 체크인을 하고 해가 떠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해가 점점 지며 주변이 어둑어둑 해지니 호텔 주변의 집들에 하나둘씩 불이 켜 졌고, 대부분의 집 안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나 장식, 따뜻한 불빛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경쟁하듯 쏟아져 나왔다. 집 안은 멀리서 봐도 그 온기가 느껴질 만큼 따뜻해 보였고 완전히 어둑해지자 집은 더 밝아져 안의 사람들까지도 잘 보였다.
나와 일행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며 조명도 켜고 사진도 찍으며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놀다 보니 슬슬 취기가 올라와 나른해졌고, 묘하게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좀 쉴까 싶어 소파 등받이에 반대로 걸터앉아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창문에 이마를 대고 바깥 야경을 바라봤다. 그러다 맞은 편의 집들을 바라봤다. 창문 하나하나 진득이 오래오래 바라보니 따뜻한 불빛 아래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들, 부엌에 서 있는 사람들, 식탁에 앉아있는 식사를 하는 사람들,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각각 다른 집의 모습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게 보였다. 각각 다른 모습의, 다른 형태의 가족, 그리고 다른 따스함이었지만 다들 '집'에 있었다. 'Home'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자주 다녔다. 부산 전포동에서 태어나 해운대에서 긴 학창 시절을 보내다 부모님의 군부대가 대전 지역으로 옮겨지는 바람에 고등학교 때 고향 부산을 떠나 익숙하지 않은 대전이란 곳에서 불안정하게 2년을 보냈다. 그 이후 스무 살부터는 대학을 서울로 가게 되었는데 연고가 없는 서울에 갑작스레 가게 되어 1년 간은 3번이나 사는 곳을 옮겨야 했다. 그러다 대학교를 다시 가며 잠깐 안산에 살았고 휴학을 하며 영국에서도 잠깐 살았다. 해외에 거주하는 동안 당시 본가는 당최 어딘지도 모를 세종시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또 안산에 잠깐 또 머물다 또다시 뉴욕에서 잠깐, 그리고 서울로 돌아왔다. 나의 '집'이어야 할 부모님 집에 있으면 이제는 꼭 남의 집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5~6년 길게 살았던 서울. 하지만 이곳에서의 1인 가구로서의 '집' 또한 역시 1,2년 예정된 임시 거처일 뿐이었고 월세가 저렴한 동네, 대학원과 가까운 동네, 직장과 가까운 동네를 전전하며 이동하는 유목민 같은 방랑하는 삶을 살았다. 지금은 또 생각도 못했던 캐나다라는 나라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이 밴쿠버라는 도시에 잠시 머물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난 내가 이렇게 이동을 많이 하고 살았는지도, 또 그게 나한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이렇게 평생을 유목민처럼 살아왔다고 깨달은 건 작년에 우연히 접한 전시에서다. 전 대륙에서부터 한국의 각 도시, 작은 동네 이름까지도 새겨져 있는 큰 벽에 개개인의 생애사에 기반한 공간들을 선으로 연결해 개인의 기억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돌이켜 보며 생애 지도를 만드는 일종의 체험형 전시였다. 도슨트 말로는 1~2분이라는 짧은 시간이면 된다던 체험이 '아, 좀 더 걸리겠네요'라는 말과 함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길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내가 30년 짧은 인생 기간 동안 정말 많이도 이동하며 살았구나를 깨닫게 했다.
펜트하우스 창 밖을 멍하니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자니 그날의 전시가 떠올랐다. 나의 생애 지도에 또 하나의 줄이 만들어졌구나 라고 생각하며. 나의 다음 생애 지도의 점은 어디가 될까. 나는 또 어쩌다 이 나라에, 이 도시에, 이 호텔 룸 안에 있는 걸까. 나의 집은 어디일까. 내게 '집'이란 게 있긴 할까? 여기서 무얼 하고 있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문득, 다들 저렇게 따뜻하고 아늑한 '집'에서 집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왜 나는 돌아갈 '집'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걸까?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한참을 멍하니 창 밖만 쳐다보고 있는 날 보고 왜 그러냐 묻는 일행에게 '집이 없는 것 같아서'라고 내 입으로, 이 문장이 발화되는 순간 울음도 같이 터져 나왔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과 발화되어 나오는 목소리는 다르다. 발화되는 순간 잠겨있던 생각은 수면 위로 드러나 현실이 돼 버린다. 음악과 함께 즐거웠던 마음이 갑자기 엉망이 되었고, 초조해졌다. 평생 이렇게 옮겨만 다니다가 안정이나 정착이라는 단어가 나와 상관이 없는 단어가 돼버릴까 무서워졌다. 많은 사람들이 '집'이라는 공간을 찾아 방랑하고 결국엔 대부분 아늑한 보금자리에 정착하지만, 나도 그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자니 앞으로도 내 역마살의 기운을 내뿜으며 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렇게 깨달았다. 나는 거창하고 화려한 집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이런 펜트하우스도 필요 없다. 나에겐 그저 따스한 보금자리, 어디에서든 돌아가면 나를 따듯하게 안아줄 '집'이 필요하다는 걸. 맞은편 콘도에 살고 있는 저 사람들처럼, 서로를 안아줄 사람이 있는 닻과 같은 존재가 있는 따뜻한 공간, Home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태까지 나에게 'House'는 있었지만 'Home'은 없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지만, 나는 이제 자기만의 집이 필요한 시간이 온 것 같다. 아직 잘 알 수 없는 나의 심연, 바닷속에 깊게 내려앉아 내 중심을 잡아 줄 닻과 같은 '사람'이 있는 ‘집’ 말이다.
언젠가 나도 가질 수 있을까? 묵직하게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닻이 내려진, 안전하게 정박된 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