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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atre Romance Dec 08. 2020

생각해 보니 요즘, 쫓기는 꿈을 안 꿔

근데 그게 그립다는 말이야

 나는 종종 무언가에게 쫓기는 꿈을 꾼다. 누구에게 쫓기냐고? 그 대상은 너무 다양하다. 상어나 고래, 호랑이 같은 동물에게 쫓기기도 하고 저게 무엇인고- 싶은 괴물도 있었고 주변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나를 쫒는 꿈을 꾸기도 한다. 아, 한 번은 만화 둘리에 나오는 우주 해골들이 칼을 들고 쫒아 온 적도 있다. 쫓기는 공간도 다양하다. 도시이기도 하고 집이기도 하고 어떨 땐 바다 속이나 우주 공간이기도 하다. 물속에서는 허우적거리며 익사하거나 저것에게 잡아 먹히거나 둘 중 하나겠다 생각하며 미친 듯이 도망가다 보면 어느새 꿈에서 탈진한 채로 깨게 된다.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쫓기는 꿈을 꿨다. 웃기게도 친오빠에게 살해의 협박을 당하는 꿈이었다. 온갖 무기를 계속해서 바꿔 들고 나를 쫒아오는 꿈이었는데 독이 든 주사기를 내가 숨은 문틈 사이로 난폭하게 쑤셔 넣는가 하면 갑자기 어느샌가 칼을 들고 나를 쫒아오기도 했다. 무슨 이런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꿈을 꾸냐고? 이유는 단순하다.


 보통 내가 쫓기는 꿈을 꾼다는 것은 현실에서도 쫓기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은근 꿈에 현실 반영이 잘 돼서 평소에 생각하고 있거나 무언가 꼭 생각해야 하거나 하면 그게 꿈에 잘 나왔다. 예를 들면 상처 받았던 일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지독하게 꾸준히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면 꿈에서도 그 상처는 반복된다.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어 꿈에서 마주하게 된다. 다음날 중요한 일정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중요한 일정이 계속해서 꿈에서 반복되고 계속해서 늦는 꿈을 꾸며 잠을 설친다. 무언가에게 쫓기는 꿈은 역시 현실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거나 생의 고민들이 많아지면 시작된다. 즉 대부분의 내 꿈은 나의 스트레스의 반영이라는 뜻이다. 보통 사람들 모두가 그렇듯이.


그런데 나와 보통 사람들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 사실, 나는 은근 이 쫓기는 꿈들을 즐긴다. 쫓기는 꿈은 꿈속에서 은근 스릴 있기도 하고 요리조리 피하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물론 꿈속에서 극한의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이러다 정말 죽으면 어쩌나 하는 그런 공포. 상상해 보면 날 절대 죽일 일 없는 친오빠가 독이 든 주사니, 칼이니 하며 온갖 무기를 계속해서 찾아 바꿔 들고 미친 듯이 쫒아와 이유 없이 쫓긴다면 그것 만큼의 공포가 또 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꿈속에서 엄청난 상해를 입거나 죽은 적은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이 꿈을 꾸는 것 자체를 즐겼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꿈을 즐기는 명백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런 꿈을 꾼다는 것은 내가 현실 속에서 어딘가에 열정을 부으며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그게 일이 되었든, 학업이 되었든, 그냥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든 말이다. 무엇인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움직인다는 것은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내 쓸모를 세상에 보여주고, 내 존재의 유의미를 찾고 있는 중이라는 말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제 이 꿈을 꾼 이유를 나는 안다. 사실 어젯밤, 몇 해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한 개인의 작업들이 현재는 그 규모도 퀄리티도 높아져 하나의 단체가 된 과정들을 어젯밤 우연히 목격했다. 그녀는 저렇게 자신의 커리어를 열심히 쌓아가며 유의미한 작업들을 쌓아가는데 나는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것을 공부하고도 같은 길을 걷지 못하는 상황들이 나를 비참하고 울적하게 만들었고 내가 지금 이 길에 혼란스럽게 서서 멈춰버린 이유가 무엇이었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여기에 온 목적은 무엇이었지도 희미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나아가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내 존재의 쓸모는 무엇인가 등 생의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고민들을 하다 잠들었는데 고민들이 바로 꿈에 반영된 것이다. 


이런 꿈은 정말 오랜만에 꾼 것이었다. 작년에는 어디다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게 아니라 어디에 절대 내놓고 싶지 않은 논문을 쓰며, 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부끄럽지만 쫓기는 꿈을 자주 꿨었다. 하지만 올해는?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런 꿈을 꾼 것이 손에 꼽았다. 거의 없었다 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만큼 머리를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살았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나는 어제 그런 꿈을 꾼 것이 반갑다. 올해는 자의든 타의든 많이 걷고 많이 쉬었으니 (혹은 누워서 빈둥빈둥 대었으니) 이제는 다시 조금 뛰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여러 상황에 기대어 변명하고 자기 합리화를 너무 해댔더니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헷갈린다. 그걸 기억하고 되뇌어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왜 오빠가 꿈에 나왔을까. 


사실 나는 답을 안다. 자, 몸을 일으켜 쓰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공부하자. 다시 상어가, 고래가, 호잇 호잇 둘리에서 해골 유령들이 나를 쫒아 올 수 있게. 

기억나나요 이 해골악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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