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하지 못하고 서랍 속에 고이 남겨둔 글들이 몇 개나 쌓였다.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글로 정리하려 해도 정리가 안되어 쓰다 말다 쓰다 말다 벌써 네 번째 서랍에 글이 고이 보관되었다. 열어보지 않을 생각이라면 두서없이 배설하고 두서없이 받아들이고 두서없이 마무리했을 텐데. 아무렇게나 헝클어지고 엉망진창인 지금 내 마음처럼. 마음을 정리하고 모든 일을 정리한다는 것은 매일 아침 시를 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매일매일은 일희일비였다. 공개되지 못하고 서랍 속에 보관된 글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바뀌고 고민하고 절망하고 또 작은 것에 기뻐한 것들의 이야기이며 그것의 결과물이다. 글들을 다시 보고 있자면 한없이 한심해지다가도 이렇게 단순한 인간 인가에 대해 자문하게 했다. 도대체가 내 마음이 뭔지 나도 모르겠는 일들이 허다했다. 쌓여 있는 글들을 다시 열어 마무리하려고 하면 마음이 힘들었다. 그래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는 마음도 함께 나는 멀리 도망가는 것을 택했고 그 마음을 숨겨 서랍 속에 넣어버렸다.
모두에게 어려운 날들이었겠지만, 나는 내가 제일 힘들었다. 모든 건 내 선택에서 비롯된 일들이었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그 사실이 나를 견딜 수 없게했다. 비난 할 누군가나 책망할 대상이 있었다면 나약하고 이기적인 나에게 편한 방법이 생겼을 텐데.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나의 모든 것이 삐뚤어졌다. 내가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웃고 즐기고 기뻐하고 행복해도 되나? 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내 계획 속에 이런 것은 없었는데. 내 계획속의 나는 이런 모습이 아닌데. 너 지금 뭐하니? 정신차려. 라는 압박감. 그 부담감. 아무도 관심없는데 나 혼자 나에게만 엄격했고 잣대를 들이대고 기준을 만들었다. 그러면 결국 그건 죄책감으로 다가왔고 다시 조금씩 도망가게했다.
결국엔 해결된 것이 없고 완성된 것도 없고 남은 것도 없다. 남은건 제 자리에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멍청하게 서 있는 나 자신 뿐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길을 잃은 아이처럼. 작은 동그라미 안에서.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 줄 사람은 없고, 걷고 달리지 않는 사람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법 또한 없다. 방어벽을 치고 눈 앞에 무섭게 쌓아두는데 누가 용기 있게 그 곳을 오르려 할까.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그 안에 서있는데 어떻게, 무엇이 동그라미를 지워주려 할까. 내가 내 마음속에서 살아 남는 방법은 한참 잘못 되었다. 치졸하다 못해 한심할 정도다.
마무리를 못한 채 서랍속에 고이 남겨진 글들 처럼 결국엔 나 또한 서랍 속에 갇혀버렸다. 아무도 보지 못하고 아무도 열어주지 않을 서랍 안에. 결국 나는 또 그대로고, 나는 서랍 속에 있다. 나는 글을 마무리 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서랍 속 글들을 꺼내어 읽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