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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atre Romance May 08. 2021

고백하는 일

아 사랑고백은 아니고요.

 어제 밤, 또 왔다. 그것이.


온 몸에 피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에 손과 발끝이 저리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심장이 벌렁벌렁 짓누르듯 아파오는 고통에 애꿎은 윗도리만 쥐어뜯으며 뒹굴었다. 이유도 없이 불안하고 울지 않고는 못 배길것 같은 느낌에 숨쉬기가 힘들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며 한시간을 울었다. 그렇다할 특별한 일도 없는데 찾아오는 이 손님은 단연코 반갑지 않다.


해외에서 처음 마주한 이 손님은 이게 뭐지? 이게 뭐지? 하는 순간에 찾아왔었다. 상황파악도 못한 채 어리둥절 하는 사이 조용히 또 사라져버린 이 손님이 처음에는 뭔지도 모르고 지나갔었지만 이후에도 두 번 세 번 찾아왔었다. 그리고 '아, 이거 심각하구나'라고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멀쩡히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안해서 죽어버릴것 같은 이 느낌에 그 자리에서 바로 일을 더 이상 못할것 같다고 통보하고는 집에 걸어오는 길 항구에 앉아 엉엉 울어댔다. 누구든 목소리라도 들어야할것 같아 친구한테 전화해 그냥 엉엉 울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한국에 와서는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갑작스레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너무 바쁘기도 했고 오랫동안 못봐 너무 보고싶었던 친구들과 만나고 웃고 떠들며 언제 그랬냐는 듯 불안했던 그 일들은 모두 잊혀졌었다.


그러다 며칠 전. 재택근무를 한 날이었다. 재택근무로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느즈막히 일어나 사과 한개에 요거트를 얹어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일을 시작했다. 딱히 밀려드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처리해야할 일들을 대부분 처리했던 터라 여유도 있었고 노래를 틀어놓고 집에서 편하게 일한다는 사실에 오히려 즐겁게 시작한 하루였다. 그러다 오후가 되었고, 아무생각 없이 비가 오는 창문을 쳐다보고 있는데 또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냥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숨이 가빠오고 심장이 뛰면서 조여왔다. 마치 비와 구름이 나를 짓누르는 것처럼.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 급히 침대에 누웠다. 퇴근 이후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내내 누워있다 밤을 보냈다.


해외에 있을때와는 달리 그렇다할 특별한 일이나 불안한 일이 없다고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원치 않는 이 손님이 불쑥 찾아오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니 오히려 모든 것이 평탄하다고 이야기 해야 하는게 맞는 요즘인데. 모든 것이 나아진 줄 알았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지도 모르는 채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가 불쑥 나타나버리니, 아무리 생이라는 것은 불안이라는 감정과 늘 동반한다 하더라도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


아무튼, 스스로 단단해져야 한다고 계속해서 다독이고 있다. 잘 하고 있는 거라고, 불안해 할 필요 없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좋아하는 것을 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앞서서 하자고. 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은 열심히 하고 또 잘 해 내자고. 하지만 동시에 꼭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고, 그저 선처럼 누워 있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라고. 그렇게 다독이고 있다. 실제하지 않는 공포와 불안에 지지 말자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 불안에 휩쓸려가지말고 그 파도 위에 타서 즐겨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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