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될지, 필연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예를 들면 있잖아. 전혀 다른 층위의 사람이, 전혀 다른 층위의 사람을 이해 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정말 누가 봐도 상류층의 사람이 누가봐도 그렇지 않은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것이 가능할까?" 라는 질문에
"아니, 불가능해" 라는 말이 돌아왔다. 거기에 덧붙여진 말.
"근데 그게 참 매력적인것 같아. 정말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낯선 사람이, 공감되는 말들을 쏟아 낼 때. 그게 진짜 매력적인것 같아. 그게 바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갑자기 이 대화가 왜 기억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단어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의외성, 사랑, 그것의 상관관계.
'의외성'이라는 단어가 품은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대상에 대한 기대나 생각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을 의미한다. 사람에게 의외성이라는 단어를 덧붙여 보자면 그건 바로 매력이라는 단어와 직결되는게 아닌가 싶다. 매력이라는것도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것에서 반전의 요소를 발견하며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이니까.
내가 '의외성'을 발견하고 사람에게 빠졌던 순간들이 언제일까. 양아치 같고 잘 생기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신문을 읽는 다는 사실을 발견했을때? 한참 어린 동생같다고만 생각했던 친구가 차로 내가 전혀 알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공간으로 데리고 가 노을을 바라보게 했을때? 딱히 유대가 없었던 건너건너 알던 친구가 툭 던졌지만 진심이 가득했던 위로를 주었을때? 자존심이 강하고 늘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의 유약함을 내비치고 나에게 기댔을때?
의외성의 매력에 빠져 사람을 다시 보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독특한 성질과 매력을 차근차근 뜯어보고 그 사람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또한 의외성은 굉장히 위험하기도 하다. 은근하게 사람들을 이성을 잃게 만들고 물불 가리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너무 강력한 끌어당김이라 순간의 의외성에 빠져버리면 다른 것들은 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의외성이라는 것은 정말 기대하지 못했던 순간에 나오는 반전되는 지점이고 그 지점에 닿게하는 역치가 낮아 그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던 예상되던 뻔한 행동과 일상의 것들을 잠깐 잊게 만든다. 사랑이 아무리 순간의 감정이고 나도 모르는 빠른 순간에 스며드는 것이라지만 그렇기에 의외성으로 부터 오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위험하다.
의외로 빠져드는 사랑이 우연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려면 필연적인 만남이 되어야 한다. 의외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연으로 이어지려면 '그 사람'이라는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것으로 대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우연적인 의외성에 지나지 않는다. 의외성이라는 우연에 지나지 않고 그 조건과는 무관하게 또 다른 기쁨으로 그 사람과의 필연적인 지점이 있어야 한다. 의외성에서 시작하여 필연이 되는 그 지점을 찾지 못한다면 그 사랑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에서 끝나고 만다.
우연적인 의외성에서 오는 끌림은 결론적으로는 사랑에 빠질 수는 있지만 사랑이 되기 어렵다. 의외로 빠져드는 사랑이든, 은근히 젖어드는 사랑이든, 진솔하게 스며드는 사랑이든,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을 만큼의 확률이고 겨우겨우 오아시스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게 진정한 내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거대한 물 웅덩이일지 신기루 같은 허상일지는 가까히, 또 자세히 들여다 봐야 알 일이니까. 그리고 그 물을 마셔 봐야 내가 마실 수 있는 물인지, 아니면 뱉어내야 하는 물인지도 알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런 의외성에서 오는 매력과 끌림에 착각하지 않고 진실을 바라보고 필연적인 인연인지를 꿰뚫어 보려면 마음을 바라보아야 한다. 마음은 의외성에서 오지 않는다. 진실한 마음은 의외성 그 너머에서 온다. 오직 '당신' 이라는 조건은 의외성에서는 성립될 수 없다. 시작은 의외성일지라도 그 이후는 필연성에서 와야한다. 오직 '당신'이어야만 하는 그 필연성. 그리고 또한 그 필연성은 '함께'여야 진정한 시작이지 '혼자'여서는 시작이 될 수 없다. '혼자'가 아닌 '함께'로 시작하려면 필연적으로 시간이 맞아야 한다. 모든 것은 타이밍이라는 말은 누군가가 말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고, 지난 세월동안 뼈져리게 느껴왔던 진실 중의 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기적이라는 단어로도 읽히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