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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Jun 25. 2022

우크라 전쟁이 주는 의미

6.25를 기억하며...

6.25 전쟁일을 맞이하여 마침 서랍에 담아두었던 글을 서둘러 발행해봅니다. 




    소득의 일정 비율만큼을 사회로 환원하고자 기부를 하는 것은 소득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세운 만의 작은 약속과도 같았습니다. 잘 버는 만큼 잘 쓰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최근 그 약속깨뜨려 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휴직하면서 소득이 없지만 계속해서 기부를 이어간 것이 그 하나이고, 소득의 증가분이 없었는데, 아니 오히려 일을 쉬면서 물가상승률 대비 소득 증가분이 현저히 감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새로운 기부를 추가로 시작한 것이 그 두 번째였습니다.


   직업병처럼 항상 새로운 선택에서 습관처럼 투자 안의 기회비용과 손익을 따져보던 제가, 장기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비용만을 지불해야 하는 결코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 선택을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치는 시기에 무리하게 진행한 것은 과연 어떤 이유였을까요?


      누군가 약자를 돕는다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국익과 여러 이해관계가 걸리고, 선의로 돕는 과정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며, 다양한 국민들의 저마다 견해가 다르다 보니 전쟁을 돕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온도차는 저마다 무척이나 달라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지기도 전인, 전쟁 발발 전부터 가스 송유관을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의 대립에 얽힌 양상이 마치 세계 3차 대전과 같다는 생각에 관심 깊게 쭉 지켜봐 왔지만, 이런 이유에서 사실 우크라전에 대한 언급은 스스로 자제해왔습니다. 하지만 선거권 조차도 아직 없는, 전쟁을 막을 힘도 기여한 바도, 아무런 잘못도 없는 많은 아이들이 아직 꽃도 활짝 못다 핀 채 무더기로 죽어나가자, 평소 한번 후원해보고 싶었던 유니세프를 통한 우크라 아이들을 돕는 기부를 실천에 옮겨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캐나다 교환학생 시절 만났던 참전 용사 분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캐나다 교환학생 시절, 저는 음치였지만, 한국 전쟁 참전 용사를 위한 위문 콘서트를 가지는 합창단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라면 저의 음치 노래 실력으로 합창단 가입이란 어림도 없었겠지만, 한국인을 찾아보기 힘든 캐나다에서는 음악 실력이 가입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이기만 하면 무사통과였습니다. 처음에는 파스타, 라쟈냐만 나오는 느끼한 기숙사 식단에 질려 성탄절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의 시계줄을 선물한 와이프라도 된 것처럼 당시 한국 음식에 굶주렸던 저는 제 목소리를 팔아 고춧가루가 팍팍 가미된 한 끼의 따스한 한국식 저녁식사를 맛볼 수 있는 그 자리가 무척 솔깃했습니다. 또, 한국에서라면 가입조차 안될 실력으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합창단 경험 자체가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별생각 없이 재미 삼아 가입했습니다. 얼굴도 보기 전, 전화 통화로 제 음성을 들은 클라라 아주머니께서는 그 자리에서 곧장 저를 알토로 배정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합창단 가입이 진행된 후, 주기적으로 한 번씩 모여 저녁도 먹고 합창 연습을 했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6.25 전쟁에 참전했던 한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가 모여 합창 연습하는 모습을 보곤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그리고 이내 그 이유를 듣자 저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젊은 시절, 할아버지는 가기 싫다는 동생을 억지로 설득해 한국전쟁에 함께 참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동생은 죽고 할아버지만 혼자 살아서 캐나다로 돌아왔던 거예요. 전쟁터에서 아우를 잃고 가슴에 묻은 채 평생의 한으로 살아온 그 아픔의 무게는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든데, 할아버지는 오히려 저희들에게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평생을 동생을 잃은 후회와 죄책감으로 살았는데, 여기에서 한국 생들이 자신을 위해 이렇게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전쟁 참전에 대한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다고 합니다. 합창단을 보면, 동생을 잃은 상처가 비로소 치유되는 느낌이라고 하셨어요.


    연고도 없는 나라를 돕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그들의 피와 땀 덕분에 저희들은 지금 이렇게 우리가 평화롭게 공부도 노래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지나간 역사이자 한 번도 얼굴을 본 적도 없는 그들의 희생이 새삼 고마웠습니다. 또, 저라면 동생을 잃은 슬픔에 한국을 원망하고 동쪽이라면 쳐다보기조차 싫어질 것도 같았는데, 오히려 재미 삼아 서툰 솜씨로 합창하고 있는 저희에게 고맙다고 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그전까지 저에게 봉사활동이란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학교에서 과제처럼 주어지는 시수를 채우기 위해 그저 숙제하듯 억지로 누가 시켜서 등 떠밀려하는 활동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합창단 자원봉사활동을 계기로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봉사활동에서의 보람에 대해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자원봉사활동에서는 결코 봉사를 하는 봉사자와 봉사를 받는 피봉사자란 그 경계가 없음도 느꼈습니다. 합창단원 자원봉사활동에서 과연 저는 봉사를 하러 간 것이었을까 아니면 오히려 인생에서 큰 깨달음과 보람을 얻는 봉사를 받은 피봉사자였을까요? 매콤한 맛에 굶주렸던 당시 꿈에 그리던 깍두기 김치도 얻을 수 있었고, 따스한 한 끼의 한국 식사도 먹을 수 있었으며, 봉사활동 경험도 쌓았고, 그때 인연이 닿아 한국에서 다시 만나 친하게 지내고 있는 소중한 인연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때 할아버지가 준 울림은 20년이 다 돼가는 긴 시간 속에서도 내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울림이 태어나기도 전 저도 모르게 받았던 한국전쟁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한 각국에서의 도움이 인연의 끈이 되어 이번에는 제가 유니세프 후원을 통해 다른 이에게 돌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약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면,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고 있다면, 한번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바닥이라 여겼던 그 바닥 아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경험을 해보길 한번 권해봅니다. 내 인생의 저점에서도 의외로 나는 가진 것이 많았고, 나도 모르게 당연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이 전장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팔다리가 멀쩡하고, 언제 포탄이 머리 위에서 떨어질지 모를 두려움에 떨지 않고 우리의 터전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음이 무척 감사한 것임을 미안하게도 우크라의 전쟁을 지켜보며 새삼 느꼈습니다.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 것입니다. 당연하게만 느꼈던 제게 주어진 모든 것들은 결코 당연한 것은 아니었음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비한다면 나의 짧은 고민은 고민조차 될 수 없는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상대방의 불행에서 우월감을 느끼란 의도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내가 다른 사람의 입장에 가깝게 서서 평소 당연시했던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다시금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봉사나 후원의 실천을 통해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임을 경험해보는 것도 자신에게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매해 지나치기만 하던 6월 25일이 올해 유난히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우크라 전쟁이 터지면서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6.25 전쟁일을 맞이하여,
평화를 위해 싸워주신 모든 전쟁의 참전 용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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