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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myo Jul 28. 2020

나 다운 게 뭔데?

엄청난 자아 발현과 성장 직전 쓰는 클리셰


"   다운 게 뭔데?! "


옛날에 영화 '실미도'에서 부대원들이 폭주하는 중사를 말리며 " 중사님 답지 않으십니다. " 하니
" 나 다운 게 뭔데?! "를 외쳐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말은 소년만화에서 많이 쓰이기도 하는데 주인공이 엄청난 자아 발현과 성장 직전 쓰는 클리셰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이용해 재미로 많이 사용하지만 나는 정말 저 문장이 우습지가 않다.
내가 아직 사춘기인 건지, 사실 나도 아직 나 다운 게 뭔지 알겠으면서도, 모르겠다.
사실 '나답다.'는 나보다 타인이 알기 더 쉬운 모습인데, 내가 모르는 내 모습들이 과연 나인가 싶으면서
모든 순간 모든 행동은 모두 내가 하니까 그 또한 나지 싶다.

그래서 정말 내가 외치고 싶다. 나 다운 게 뭔데!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대표적인 곡이 있다.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치우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난 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어느 쪽이게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 아이유 스물셋


그래, 또 우습게도 난 곧 스물셋이 되기도 한다.
위 노래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가사가 공감이 되는데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 부분이다.
내가 이다지도 변덕스러워 어느 날엔 사랑의 헌신이 솟았다가, 어느 날엔 커리어를 쌓아야지! 외치며
일을 열심히 하다가도 모든 의욕을 잃고 게을러진다. 하지만 나는 매 순간 진심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사람들, 아니 내 주위 친구들만 봐도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어느 전공으로 어떤 일을 할 건지
뚜렷하게 정한 친구들이 태반인데 이도 저도 않고 있는 내가 정말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전에 있던 팀 내에서 세바시처럼 자신이 발표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 번은 내 과거를 이야기했으니, 그다음엔 뭘 준비할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뭐 하나 깊~게 파고들어 사람들에게 이렇다 저렇다 할 분야의 이야기가 없었다.
지금까지 한 건 뭔가 많은 거 같은데 이거 하나만 발표하기엔 내용이 적고...

아.. 모르겠다 그냥..
 합쳐서 말해버릴까?

결국 나는 '심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취미'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준비했다.
(맞다. 베스트셀러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도서명을 인용했다.)
그림, 글쓰기, 사진 찍고 찍히기, 뮤지컬, 핸드메이드, 디자인 툴 다루기, 요리, 다양한 운동, 만화 보기, 게임 방송 보기 등등 나열해 보니 굉장히 많았다. 내가 22년 인생 살면서 이리 많이 해봤었나, 깊진 않더라도 다채로우니 내용이 꽤 나온다 싶었고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살면서 기본적으로 하는 게 아닌 특이한 것들을 많이 경험하고 도전했는데 뭔가 벅차오르기도 했다.

모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아직 못해본 것들도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왜 이렇게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도전하는가 생각해봤다.
발표 서론과 결론에서 이야기한 내용은 이랬다.


" 저는 사실 남들을 맞춰주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면서 찾아보자 싶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 자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저를 다 알았다는 건 아니고, 앞으로도 알아가려고 합니다. 하하하...(멋쩍은 웃음) "

굉장히 멋져 보이게 말했지만, 저 말을 했을 때만 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 내뱉었다.
그렇게 ..존경하는 팀장님께서 발표를 마무리해주시는 멘트를 해주셨는데, 그 순간 뇌리 깊이 새겨졌다.


" 저는 끊임없이 자신을 알아가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xx님은 나이를 떠나서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나를 알아가는 사람?

나는 결국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되어야 하는지

모든 행동을 통해서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거였구나.

나를 나답게 해 주는 거, 그거 그냥 진짜 별거 아니네
내가 나로서 하고 있는 모든 것이 나 다운 것이겠지.
하며 느꼈다. 그리고 잊고 있다가 지금 글로써 다시금 느낀다.


나에게 나 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마 내가 바라는 것을 행하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며, 이렇게 글을 쓰며, 사진을 찍으면서  자연스레 내가 원하는 색깔, 원하는 문구, 원하는 필터를 찾게 된다. 또 오히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행했을 때 성취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도 분명 내가 바랐던 것이고,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여러 가지 운동을 해보며 몸이 건강해진다는 걸 느낄 때, 원하던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얼추 매력 있는 그림이 되었을 때,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며 그때의 감정을 곱씹을 때, 옷이나 액세서리 모든 게 특별했으면 하니 열심히 찾고 코디하는 작은 하나하나가 나 답게 만들어주는 거, 참 근사하다.


내가 한 모든 결과물을 아름답게 바라봐줄 수 있는 내가 됐을 때, 그게 정말 괜찮아진 거고 성장시켜주는 거구나.

아직은 모든 게 서투르고 자주 넘어져 울지만 그저 그것도 나인 것을, 이제는 사알짝, 조금. 내가 유일무이해서 멋진 거 같다.


+

이번 나도 작가다 공모전을 세 번 모두 참가하면서,

익숙한 듯 익숙지 않은 주제로 글을 써 내리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솔직히 부족한 부분도 너무 많고, 뭐 어쨌든 수상하면 좋겠다 생각하며 글을 썼지만,

공모전이라는 게 이런 기대감을 주어 게으른 나에게 글 쓸 원동력을 선사하니 좋은 거 같다. 과한 기대만 하지 않으면!

좋은 주제로 공모전을 내준 EBS팀과 브런치팀에게 감사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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