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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코치 Mar 22. 2021

니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마(영화"인투더와일드")

1. I am = I am 이다.


실제 주인공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1968-1992)


00. 영화 배경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Into The Wild 2007' 야생에서 2년 동안 살아왔던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우수한 대학성적으로 졸업한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전재산을 빈민구호단체에 기부하고 갑작스럽게 가족의 곁을 떠나 야생 속으로 들어가 살게 되죠.


여행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본명을 '알렉산더 슈퍼 트램프'라고 계명을 합니다. 이후 산과 계곡, 바다로 모험을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정신적 교류를 하게 됩니다. 그의 최종 목적지인 알래스카로 가는 길에 만년설로 길을 잃고 자연 속에 묻혀 생활을 하게 되는데요, 우연하게 길에 버려진 버스를 발견하게 됩니다.






01. 정신혁명을 완성시킬 극한의 투쟁



본래의 기능을 잃은 버스지만 모든 상황이 열악한 장소에서는 비가 눈보라를 피할 수 있는 훌륭한 피난처가 될 수 있습니다. 상황과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가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버스가 '폐차'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마법의 버스'가 되니까요.



마법의 버스를 발견한 후 주인공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깨끗이 청소를 한 후 나무판 위에 작은 칼로 자신의 신념을 새긴 것입니다.



2년 동안 그는 대지를 방랑한다. 전화도, 수영도, 애완동물도, 담배도 없이 사회와 소비문화로부터의 자유, 극단주의자, 자연과 아름다움을 감사할 줄 아는 여행자 그의 집은 길이다. 2년간의 방랑에 종지부를 찍을 가장 위대한 모험을 시작한다.
 내면의 허상을 쫓아내고 정신의 혁명을 당당히 완성시킬 극한의 투쟁을 시작한다. 몹쓸 문명에 더 이상 물들지 않기 위해 달아난 그는 홀로 대지 위를 거닐다.
야생에서 길을 잃는다. 알렉산더 슈퍼트램프 1992. 5
2007  Into The Wild  11:08 - 13:30



02.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완성형 노예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내면의 허상'과 '몹쓸 문명'입니다. 영화 속에서 맥캔들리스는 학교, 사회, 부모로 부터의 가르침, 권력자가 만든 사회 시스템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모습을 비춰 봤을 때 나무판에 새긴 '내면의 허상'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길들여져 굳어져버린 생각을 의미합니다.


 pixbay

쉬운 예로는 서커스 코끼리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서커스 코끼리는 어릴 때 야생에서 데려와 다리에 줄을 묶어 땅에 말뚝을 박고 길들 입니다. 새끼 야생 코끼리는 땅에 박혀 있는 말뚝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다리에 상처만 생기고 뽑히지 않아 결국 포기하게 되죠.


그렇게 길들여진 새끼 야생 코끼리는 서커스 코끼리로 성장하게 되고, 덩치 큰 성인 코끼리가 되더라도 땅에 박혀 있는 말뚝을 빼내기 위해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툭 들기만 하면 뽑을 수 있는 말뚝이지만 완벽하게 길들여져 시도조차 하지 않죠. 


여기서 코끼리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이며, 발목에 묶여 있는 끈과 말뚝은 우리의 잠재력을 묶어 놓고 있는 사상들이죠.



영화 속에서 주인공 크리스토퍼가 강에서 카누를 타려고 관리원에게 허락을 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격증 없이 강에서 카누를 타려면 12년을 기다려야 된다고 하죠.(정말 맙소사 네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면허로 카누를 타게 됩니다. 분명히 무면허로 카누를 탄 것은 사회적인 약속에서 어긋난 행동입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시스템으로 인해 제약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시스템은 누가, 왜, 무엇을 위해 만든 것일까요? 때론 저도 크리스토퍼와 같은 생각을 합니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면 안 되는 것 투성이 입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증명해야만 하죠. 세상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 속에서 살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왜 자연이 허락해준 강에서 배를 타는데 12년이 걸려야만 할까요?



특히나 미와 부의 기준에서는 이런 프레임이 강력합니다. 피부가 촉촉해야만 될 것 같고 BMW 정도는 타 줘야 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것 같고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의 틀은 누가 만들어 놓은 걸까요? 정부, 기업, 매체입니다. 특히나 라이프 스타일과 연관된 프레임은 기업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심어놓은 이미지입니다. 매체를 통해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 광고입니다. 광고뿐만이 아니죠. 생각과 사상 체계를 만드는 곳은 학교이며 교육입니다. 우리는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많은 지식과 생각을 주입받습니다. 걸러내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입된 관념은 고스란히 자신의 신념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심어놓은 이미지, 음성, 글을 통해 우리의 신념체계가 만들어져 버립니다. 이런 신념체계는 선입견으로 가득 차버리고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죠. 또한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만듭니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들이 더욱 많죠. 


모든 것이 궁금하고 가능할 것 같았던 순수하고 깨끗한 자신의 모습은 사러 져 버립니다. 이렇게 정부와 기업 학교가 만들어 놓은 문화를 소비하고 소비하며 중독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소비에 중독된 상태를 만들게 한 문화를 영화 속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몹쓸 문명'이라 말한 것 아닐까요?



03. 올바른 이름으로 불리기 위함이다



그래서 크리스토퍼는 이런 몹쓸 문명으로부터 중독되어온 소비문화를 멀리하고 외부로부터 주입되어온 자신이 아니라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한 정신혁명의 투쟁을 시작합니다. 그 투쟁의 첫 시작이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가 계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Doctor Zhivago의 소설을 읽는 모습이 보입니다. 지바(Живаго/Zhivago)는 러시아어로 '살아있는(alive)'을 뜻하는 '지보가(Живой)'의 소유격 형태로, 이 소설의 배경과 관련이 있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의 체제가 아직 살아있으며, 이는 파스테르나크가 집필 당시 소련의 사회 체제를 반대한다는 뜻으로도 풀이됩니다. 


우리에겐 영화와 뮤지컬로 익숙한 Doctor Zhivago의 소설은 현대 사회의 시스템과 체제를 반대하고 투쟁하는 크리스토퍼의 가치관도 결이 맞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크리스토퍼가 인상 깊게 읽었던 한 구절을 소개해드립니다.



"잠시 동안 그녀는 삶의 목적을 재발견했다. 그녀가 이곳에 온 건 삶의 거친 매력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각각을 올바른 이름을 부르기 위함이다."
Doctor Zhivago


 

우리는 태어나면서 누군가로부터 이름을 부여받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 나를 대신해서 나를 나타내 줄 이름이 '자신' 이 되는 것이죠. 학교에서는 학생, 집에서는 아들딸, 직장에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역할에 따라 직책으로도 불립니다.


부모가 되면 이제는 처음에 불렸던 이름마저 사라져 버리고 '엄마, 아빠' 또는 '누구누구 엄마, 아빠'로 불려지게 됩니다. 사회 속에서 맡겨진 역할에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모습은 사라져 버립니다. 이름과 직책을 버리고 스스로를 한번 표현해보세요. 설명이 아니라 표현입니다.


2년 전 마음 챙김 및 영성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약 일주일간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신념체계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감을 일깨워 바람의 냄새, 소리, 숨의 흐름, 사물의 촉각을 음미했습니다. 처음에는 주변 상황에 따라 집중력이 깨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집중하려고 하면 집중에 집착하게 되고 집중이 깨져버립니다. 이런 메커니즘을 알게 된 저는 집중하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저, 그 상황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고요한 시점이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주변 상황 때문에 집중력이 깨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도움이 되었고, 나의 주의가 있는 대상이나 사물이 더 잘 보이기도, 잘 들리기도 하였습니다. 어떨 때는 바람, 공기, 나무가 자신인 것처럼 느껴지면서 흐뭇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신을 느끼고 표현할수록 스스로가 선명해짐을 느낄 겁니다. 그때가 되면 자신의 이름 옆에 있던 수식어들이 사라질 거고, 나중엔 이름마저 사라져 버릴 거고 오로지 자신만 남을 겁니다. 



"I am a studednt"가 아니라 단지 "I am = I am"인 상태로 말이죠.





# Core Question


1) 나무판에 새길만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타인이 만든 프레임(관념 혹은 시스템) 속에서 내가 살고 있다면 무엇인가요?

3) 자신을 이름이나 직책 말고 다른 것으로 표현한다면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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