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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김재민 Aug 21. 2024

브랜드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DLOG vol. 5

"마케팅이 매출 나오고, 노출 잘되면 그만이지.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쓸데없이 마케팅에 철학이 왜 필요해?"


언젠가 지인 마케터에게 들었던 말입니다.


철학이란 뭘까요? 일단 추상적인 느낌이 듭니다. 어떤 아리송한 생각 같기도 하고요. 서울대학교 철학과 소개 페이지에는 "철학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이성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브랜드와 마케팅에 철학이 왜 필요 할까요? 매출을 만들고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데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까요?


8월 세 번째 DLOG 주제는 '브랜드의 철학'입니다.






철학은 브랜드의 성장 동력입니다.


혹시 작은 브랜드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으신가요? 작은 브랜드는 대규모 예산으로 단기간에 인지도를 높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로 성장한다는 것은 밀도 있는 성장 모멘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멘텀은 세부적이지만 명확한 고객 가치에서 시작됩니다. 거기서 입소문이 생기고, 곧이어 남들보다 예민한 감각으로 새로움에 반응하는 초기 수용자(얼리어답터)가 확성기 역할을 하면서 대중으로 빠르게 확산됩니다.



이 기간은 작은 브랜드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일정 기간 초기 수용자의 주목을 끌 정도로 확실한 가치 전달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캐즘(Chasm)을 넘어설 정도로 모멘텀을 형성하지 못한 브랜드는 조용히 사라지게 됩니다. 반면, 이 구간을 무사히 넘겼다는 것은 입소문을 형성했음을 의미합니다. 초반 입소문은 빠르게 사업 비용을 낮춰주고, 이익은 높여줍니다. 고객이 브랜드를 인지하고 구매하기까지 기존에 10만 원이 들었다면, 입소문은 거의 0원에 가깝게 비용을 낮춰주기 때문입니다.




입소문이 생길 정도로 제품 가치가 명확하고, 비용 효율이 높아지면 브랜드가 무럭무럭 성장하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모든 브랜드가 이러한 성장 과정을 원합니다. 하지만 성장 동력을 얻어 빠르게 대중으로 확산되는 제품과 서비스는 본질적으로 철학이 우선된다는 것은 잘 모르는 거 같습니다. 브랜드 마케팅을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트렌드라는 파도를 잘 활용해야 하는 어떤 기술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하지만 브랜드 철학이 브랜드 성장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매일 변화하고, 끝없이 경쟁하는 이 험난한 시장 환경에서 나의 고객들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철학이 차별화를 만듭니다.


철학에서 시작된 브랜드는 제품과 서비스가 다릅니다. 그들이 제공하는 고객 가치안에 그럴 수밖에 없는 역학 관계가 동작하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마케팅은 그 자체로 브랜드의 성공을 만들 수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마케팅이란, 브랜드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잠재고객에게 알리고 구매하도록 돕는 행위일 뿐입니다. 제품과 서비스의 근본적 가치는 결국 생각의 차이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목적을 향한 누군가의 상상이 결국 제품과 서비스로 탄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상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대상의 어떤 변화를 의도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철학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이듯, 브랜드의 철학도 '고객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탐구하고 이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브랜드는 언제나 '작지만 강력한 변화'에 집중해야 합니다. 동시에 철학으로 구체화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 좁더라도 지금까지 누구도 추구하지 않았던 수준의 혁신적 상상이 시작됩니다. 마치 송곳이 작은 힘으로도 구멍을 내듯, 범위가 줄어든 문제해결은 누군가에게 탁월함과 명쾌함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큰 기업은 어쩔 수 없이 고객 다양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편적인 상품을 만듭니다. 작은 브랜드는 한가지 생각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지만, 특별한 차별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차별화가 바로 철학의 결과입니다. 브랜드의 철학이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저 '누구를 위한 제품을 만들 것인가?', '누구의 마음을 기쁘게 할 것인가?', '어떻게 감동을 줄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일 뿐입니다. 상대를 떠올리며 진정성 있게 '가치를 전달하려는 마음'을 열망하는 것. 그것이 바로 브랜드의 철학입니다.



철학이 모든 실체를 창조합니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인간의 문명은 언제나 3개의 층으로 구성된다고 말합니다. <물건 - 제도 - 철학>입니다. 물건은 보이고 만져지는 것들이며, 그래서 분명하고 구체적입니다. 대부분의 상품과 서비스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물건은 물건 자체의 능력으로 생산될 수 없습니다. 물건이 태어나는 방법과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은 제도 안에서 결정됩니다. 시스템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회, 프랜차이즈, 인프라, 설비, 유통 구조, 트랜드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제도는 구체적인 동시에 추상적입니다. 좋은 물건은 좋은 제도 안에서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제도 역시 마찬가지로 세계관이나 생각에서 탄생합니다. 이것이 철학이 됩니다. 그래서 철학은 매우 추상적인 상위 개념입니다.


철학자 최진석


물건과 제도가 만들어지는 모든 기반에는 철학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브랜드의 시선이 물건 수준에만 머물러 있으면 더 싼 제품, 더 트랜디한 제품, 더 그럴듯한 제품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제도 이상의 수준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은 브랜드는 의식의 수준을 반드시 철학으로 끌어 올려야만 합니다.



"무엇을 팔아야 할지" 또는 "어떻게 팔아야 할지"가 아니라, 세상과 고객을 위해 필요하다고 진정으로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를 뾰족한 목적의식으로 다듬어야 합니다. 그 고민이 바로 섰을 때, 좋은 제도와 물건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또, 예측할 수 없는 시장 변화 앞에 때로는 유연하게, 때로는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브랜드 철학은 구체적 실체인 제도와 물건이 가질 수 있는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포함합니다.



고객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좋은 제도와 물건을 만드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면, 브랜드를 철학의 수준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서 브랜드란 지극히 문화적인 가치입니다. 물건과 제도는 누군가의 변화를 위한 브랜드 철학의 구체적 시도 중 하나일 뿐입니다.



좋은 브랜드는 철학을 먹고 자랍니다.


더본코리아를 만든 백종원 대표의 철학은 자영업자와 소비자의 상생입니다. "가맹점주가 겪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소비자는 주머니 사정에 구애받지 않고 외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백종원 대표가 직접 밝힌 사업의 이유입니다. 명확한 브랜드의 철학은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며, 소비자는 그렇게 탄생한 더본코리아의 제품과 서비스에서 브랜드의 내러티브를 느낍니다.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


도넛 브랜드 노티드의 브랜드 철학은 나누는 행복에 있습니다. 노티드는 도넛이 아닌 기분 좋은 경험을 선물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물건 수준에서 더 맛있는 도넛, 단순히 더 예쁜 패키지를 만드는 데 집중한 것이 아니라, 좋은 걸 나눌 때 느끼는 사람들의 행복에 집중했습니다. "도넛이 주는 기분 좋고 행복한 경험은 무엇일까?"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발견했을 때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 노티드의 철학은 바로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노티드가 고객에게 선사한 알록달록한 패키지, 굿즈, 콜라보, 매장 인테리어와 같은 모든 내러티브는 브랜드 철학에서 나온 시도였습니다. 특별함이 느껴지는 도넛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서 브랜드는 바이럴되었고, 음식 그 이상의 가치를 나누고 싶었다는 브랜드의 철학은 소비자들의 마음에 닿았습니다.


노티드


브랜드가 만들어야 하는 모든 기획은 결과물이 아닌, 의도에 목적이 있습니다. 브랜드 철학이 의도를 결정하고, 그렇게 탄생한 모든 결과물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의 과정입니다.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만든 콘텐츠는 힘이 약합니다. 하지만 고객이 제품을 활용해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에 도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콘텐츠는 힘이 있습니다. 브랜드 철학을 공유하고 있는 회사는 임직원 모두가 그들의 생활 곳곳에서 수많은 잠재고객을 만듭니다. 기업을 위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나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브랜드를 알리고 좋아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브랜드가 철학을 통해 성장하는 방식입니다.



브랜드가 가야 할 길이 더 높고 원대할수록 명확하고 집중적인 철학이 필요합니다. 철학 없는 브랜드는 짧은 효율은 가능해도, 끈질긴 생명력과 한계 없는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물건과 제도 너머에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상황에 따라 모든 걸 비워낼 수도, 모든 걸 포용할 수도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를 운영하는 박정수 대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박정수 대표는 '일'이라는 단어를 3개의 자음과 모음으로 분해하고 그 의미를 설명합니다. 'ㅇ,ㅣ,ㄹ'로 분해된 자음과 모음이 0, 1, 2로 구성된 일의 계층이라고 말합니다.


녹기전에 박정수 대표


일 = ㅇ ㅣ ㄹ = 0 1 2


0 = 철학(우리가 일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

1 = 제품 개발

2 = 마케팅


'일'이라는 단어를 쓰는 순서를 보면 'ㄹ'을 가장 마지막에 씁니다. 마케팅은 마지막의 단계에서 브랜드를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알리는 일에는 무엇을 알릴지, 그에 앞서 왜 알려야 하는지 이유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 역할을 0에 해당하는 철학이 합니다. 0은 시작점과 끝점이 같습니다. 일의 철학이란 모든 일의 시작이자 끝에서 끊임없이 제자리로 회귀하며 추구해야 하는 본질이라고 설명합니다. 제품 개발보다, 마케팅보다 항상 앞서 써야 하는 가장 첫 번째 모음이기도 합니다.



'녹기 전에'의 철학은 좋은 기분입니다. 손님에게 좋은 기분을 만들어 준다는 철학이 매일 달라지는 다양한 메뉴의 즐거움을 떠올리게 했고, 접객의 기준을 만들었고, 심지어 가게가 매년 한 달간 겨울방학을 보내는 제도도 만들었습니다. 좋은 기분을 위해 제품이 만들어졌고, 마케팅도 트렌드나 감각이 아닌 철학을 알리고 돕기 위해 따라옵니다. 좋은 기분이라는 철학이 있기 때문에 좋은 기분을 알리는 마케팅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 문장에 브랜드 철학이 가진 힘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위한 브랜드의 진정성 담긴 철학이 결국 브랜드의 미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브랜드의 철학이 중요한 이유,

모든 가능성이 그리고 모든 잠재고객이 그 안에서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뉴스레터 <DLOG>는 사람과 브랜드,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다룹니다.

"인간 중심의 가치를 추구하는 브랜드가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브랜드의 진정성 있는 고객 가치와 소통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DLOG는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하는 브랜드의 여정을 탐구합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변화를 포착하고, 그들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헌신하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행동.

그것이 브랜드의 시대정신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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