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OG vol.4
브랜드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란 본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제품이나 서비스처럼 실질적인 가치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인식에 기반한 개념적 가치에 가까울까요?
우리는 브랜드의 가치가 실제로 비용을 내고 얻게 되는 제품과 서비스에 기반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면 고객이 알아서 찾아줄 것이라는 브랜드의 기대는 금세 실망이 됩니다. 좋은 제품을 경험하고도 다른 사람들의 리뷰나 의견이 없으면 좋은 것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좋은 제품이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며, 그 반대의 경우도 어렵지 않게 경험합니다.
브랜드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란, 당연하게도 제품 그 자체로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제품이 대변하는 고객, 제품이 상징하는 변화, 제품 너머의 기능처럼 제품과 연결된 모든 요소의 총합이 '다른 것과 다르다'는 인식을 남깁니다. 그러한 인식이 나에게 충분한 의미가 있을 때, 가치의 차등을 만들어 냅니다.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한다면 브랜드가 제공하는 가치를 특별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차별화'라고 합니다.
8월 두 번째 DLOG 주제는 '차별화'입니다.
스라시오(Thrasio) 모델이라는 사업 전략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시장 가능성이 보이는 회사에 투자하거나 지분을 인수한 다음, 마케팅 역량을 기반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방식의 사업입니다. 스라시오라는 이름은 미국의 실제 유니콘 기업 이름입니다. 이 회사는 아마존에 입점한 기업 중 성공 가능성이 있는 브랜드와 손을 잡고 마케팅 역량을 기반으로 회사를 키우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방식의 사업을 하는 국내 기업으로 에코마케팅 사례가 있습니다.
<에코마케팅 주요 성과>
- 매출 29억, 영업손실 5억을 내던 젤네일 오호라 제조사(글루가)를 2019년 지분 인수하여, 2022 매출 2316억 / 영업이익 183억 달성
- 매출 759억, 영업손실 88억을 내던 안다르를 2020년 지분 인수하여 2022년 매출 2,300억 / 영업이익 125억 달성
- 매출 52억을 내던 데일리앤코를 2017년 지분 인수하여 2022년 매출 1,335억 달성
김철웅 에코마케팅 대표의 인터뷰를 보다가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데일리앤코를 인수하고 클럭이라는 EMS 자극기를 출시했는데,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출시 1년 만에 300만 대, 2022년에는 1,000만 대 이상 팔린 제품이니까요. 당시 시중에 EMS 자극기가 나온 지 10년이 넘었고, 20개가 넘는 제품이 있었지만, 일부러 특별하지 않은 제품에 투자했다고 합니다. 순전히 마케팅 역량으로 성공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여기에는 사업 전반에 걸쳐 제조, 상품 기획, 유통 등 다양한 프로세스 혁신이 포함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성공 변화는 EMS 자극기를 소형 마사지기로 제품의 컨셉을 바꾸고 시장에 진입했다는 점입니다.
EMS 자극기를 운동 기구가 아닌 마사지기로 리포지셔닝 했던게 성공의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소형 EMS 운동기구가 마사지기가 되면서 '간편한 마사지로 일상의 피로를 풀고 싶은 사람'은 클럭이라는 제품에서 가치를 느꼈을 겁니다. 제품은 바뀐 게 크게 없는데 인식이 바뀌면서 브랜드가 제공하는 고객 가치도 크게 변화했습니다. 5년 만에 매출이 1,000억 이상 상승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클럭이라는 제품에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제품이 아닌 인식을 바꾸는 마케팅. 우리는 그걸 차별화라고 부릅니다. 차별화는 고객으로 하여금 기존의 제품들과 무언가 확실히 다른 특별함을 느끼게 하는 전략입니다. 흔히 마케팅의 역사는 인식 변화의 역사라고 합니다. 차별화 역시 아직 주인이 없는 이미지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기도 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 차별화라는 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쓸모 이상의 특별한 가치를 만들어내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차별화를 만들고 발전시켜 가는데 꼭 필요한 원칙을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차별화의 또 다른 이름은 희소성입니다. 이 희소성이라는 가치는 매우 상대적인 가치입니다. 직접 비교할 대상이 적을수록 희소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즉, 브랜드의 차별화란 비교 대상이 적으면서도 고유한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만약 소규모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주변에 큰 규모의 커피 전문점이 들어왔습니다. 매장 규모나 커피 맛으로는 차별화를 만들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렇다면 가게 규모와 커피 맛이 아닌 카페가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다른 가치를 고민해 봐야 할 겁니다. 예를 들어 제가 늘 클래식 음악을 늘 좋아했다면 커피와 함께 클래식을 함께 큐레이션 하는 형태의 카페로 피봇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커피보다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커피까지 마시면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는 대체가 안 되는 최고의 카페가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처럼 차별화를 만드는 첫 번째 원칙은 고객의 범위를 좁히는 데 있습니다.. 고객의 범위가 넓으면 차별화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당연히 고객을 모두 만족시키는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희소성이란 다른 것과 같지 않았을 때 강해집니다. 고객의 범위를 아주 좁게 정의해야만, 단순히 저렴하고 좋은 제품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가치인지 집중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희소성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남성 화장품 시장은 국내 시장 규모가 2조 가까울 정도로 크지만 90% 남자들은 화장품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일부 남성만이 멋지고, 남자답고,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화장품 소비를 이끌어 갑니다. 우르오스는 자신을 꾸미는 남성과 그렇지 않은 일반 남성을 구분하고, 과거 모든 화장품 시장이 타깃으로 삼지 않았던 일반 남성을 위한 제품을 출시합니다. 일반 남성은 샤워 시간을 15분 이내로 완료하고, 화장품도 2개 이내로 사용합니다. 남성 화장품 시장의 90%를 차지하지만, 실제 구매력은 매우 약한 편입니다. 우르오스는 이들에게 집중했습니다. 씻고 꾸미는데 들이는 시간을 최소화하려는 이들을 위한 화장품을 만들었고, 일반 남자를 타깃으로 모든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갔습니다. 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남자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그들의 특성에 맞는 화장품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명확한 고객 정의가 있어야 제품의 특징을 결정할 수 있고, 나아가 차별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고객 특성에 집중하지 못하면 차별화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제품이 가진 다양한 본질 중에서 하나의 포인트를 잡고, 소외된 고객을 찾고 그들을 위한 깊고 좁은 만족들 그게 차별화가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새로운 고객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진부함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차별화는 반드시 진부함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객의 입장에서는 진부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차별화는 제품이 상징하는 다양한 요소 속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제품과 서비스는 늘 단 한 가지 목적만 가지고 소비되지 않습니다. 비타500은 비타민 섭취를 목적으로 구매하는 사람보다, 적당히 들고 갈만한 선물이 필요해서 구매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건강 기능 음료를 만드는 브랜드라면 건강에 도움 되는 음료보다 선물용 음료라는 누구나 이해하는 클리셰에서 차별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음료를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것은 음료가 가진 오래된 소비 요소입니다. 하지만 음료 대부분은 맛에 치중되어 있으므로, 선물용이라는 소비 요소, 나아가 선물용 음료가 필요한 고객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든다면 충분한 차별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독창적인 패키지 디자인에 신경 쓰고, 프리미엄 품질과 독특한 맛을 더하고, 다양한 선물 세트 구성을 고민하고, 계절별 한정판 제품을 만들고, 선물하기 적당한 가격과 접근성을 제공하고, 이 모든 내용을 브랜드 스토리로 엮어낸다면 음료 시장에서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과일 가게 센비키야는 30만 원이 넘는 멜론을 판매할 정도로 최고급 과일 선물을 상징하는 브랜드입니다. 센비키야를 방문하는 고객 대부분은 직접 먹기 위해 과일을 사는 경우보다 대부분 선물을 목적으로 구매합니다. 센비키야는 과일 선물의 확실한 차별화를 이룬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브랜드의 차별화를 고민한다면 제품과 서비스에 담긴 소비 요소에 어떤 진부함이 있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주목하지 않은 진부함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소비할 고객을 아주 깊고 좁게 정의 내리면 됩니다. 그다음은 오직 그 고객들에게 집중하면서 어떤 가치가 필요할지 고민하고 시도하면 됩니다. 그러면 차별화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비슷한 제품을 취급하더라도 남들과 구분되는 차별화는 아이러니하게도 클리셰에 온전히 집중할 때 만들어집니다. 브랜드의 차별화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임과 동시에 명확한 배타성을 지녀야 합니다. 브랜드의 자기다움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명확할 때 느껴집니다. 동시에 누구를 위한 것인지 설명이 필요하면 안 됩니다. 완전히 식상하고 원래 늘 그랬던 것 안에서 명확함이 있어야 합니다. 새롭고 특이하기만 하다면 호감은커녕 기괴하다는 느낌만 남기게 됩니다. 익숙한 것을 다름으로 인식하는 방법. 그것이 브랜드가 차별화를 성공적으로 구축하는 길입니다.
내가 다루는 제품의 클리셰를 파고들고, 그 안에서 늘 익숙하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고객으로 정의해야 합니다. 그것이 차별화로 인식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브랜드가 됩니다.
뉴스레터 <DLOG>는 사람과 브랜드,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다룹니다.
"인간 중심의 가치를 추구하는 브랜드가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브랜드의 진정성 있는 고객 가치와 소통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DLOG는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하는 브랜드의 여정을 탐구합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변화를 포착하고, 그들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헌신하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행동.
그것이 브랜드의 시대정신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