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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Apr 06. 2022

입에서 흘러나오는 형상

말에는 초고가 없다.


하지만 문장이 이미 시위를 떠났다. 말이 화살처럼 침실과 복도를 가로질러, 자기 방에서 천천히 옷을 벗고 있는 샤를에게 꽂혔다. 
<패배의 신호> , 프랑수아즈 사강

 해마다 신년 계획을 세울 때면 나는 ‘말’에 대한 다짐을 한다. 말을 아낄 것,  말해도 괜찮을지 의심이 가면 하지 말 것, 긍정적인 말을 할 것 등등. 하지만 쉬이 지키지 못하고 일을  저지른 뒤 잠자리에서 이불 차기를 하고 혼자 머리를 쥐어박는 일이 적지않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입에서 나온 말이 형상으로 눈에 보인다면 어떨까 하고…어느 땐 연기처럼 피어올라 부드럽게 누군가를 감쌀 것이고 부드러운 벨벳처럼 뺨을 간지럽힐 것이다.  또 어느 땐 날카로운 독화살이 되어 찰나보다 빠르게 심장에 박힐지도 모른다. 나비로, 새로, 개구리로, 구름으로, 장미로, 아이스크림으로… 말이 눈에 보인다면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는 못할 것이다.


 말을 하기 앞서 잠시라도 내가 하는 말에 형상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떠올려 보면 좋겠다. 그 찰나가 나의 말을 순화시키거나 적절성을 고려하게 할 것이다. 날카롭고 무서운 형상의  말들을 떠오르는 순간 검열해 낼 테니 말이다.


 글을 쓸 때는 자기 검열을 하지 않아야 창조성을 키울 수 다고 한다.  수도 없이 퇴고하여 완성할 수 있어 가능한 이야기이다. 이것이 내가 글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초고가 없다. 내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이미 당겨진 방아쇠이고 쏘아진 화살일 뿐이다. 내 입에서 얼마나 많은 화살이 쏘아져 누군가의 심장에 밖혔을까. 내 심장에 새겨진 상흔을 쓰다듬고 있자면 몸이 살짝 떨리는 것을 느낀다. 내 입에서 어떤 에너지를 담은 형상이 흘러나오려는 참인지 입술을 떼기 전에 꼭 떠올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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