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별 Mar 16. 2023

불을 삼키고 난 뒤

언젠가 불을 삼킨 이후로 시도 때도 없이 꺼지지 않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곤 한다.


얼마나 민감한지 아주 작은 실바람에도 불씨는 주체할 수 없는 불덩이로 변해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태운다.


이 것을 꺼트리려고 얼마나 긴 시간 물을 붓고 기도를 했던가...

어쩌면 이번 생에는 꺼지지 않을 것만 같다.


오늘도 작은 바람이 나를 스치고

어김없이 잠자던 불씨는 악마가 잠에서 깨듯

빨갛고 뜨겁게 달아올라 내 속을 시꺼멓게 만든다.


결국은 시 사그라들 것을 알기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우당탕탕 설거지를 하고

난폭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웃기지도 않은 코미디 프로를 본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늘따라 꺼지지 않겠다며 더욱 뜨겁게

극성을 부린다.


도리가 없다.


맥주 한 캔을 꺼내 냉동실에 넣었다.

얼기 직전에 다시 꺼낸다.

고개를 뒤로 젖혀 목구멍을 열고 쏟아붓는다.

불씨,  너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콸콸 흘러 들어가는

얼음 같은 맥주.


푸시식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올라온다.


지금이다.


라벤더 오일을 베개에 뿌리고

노라 존스의 노래를 아주 작게 튼다.


불을 휩쓸어 단전까지 내려간

뜨거운 기운을 느끼며

노곤해진 몸을 뉘인다.


두 손을 단전 위에 살포시 올려놓는다.


안녕 , 내 안의 불씨.

오늘은 그만 작별을 고할 게.









작가의 이전글 입에서 흘러나오는 형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