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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Apr 25. 2022

[동심찾기] 고사리밭길에서 발견한 행운

남해바래길 별 5개짜리, 바닷가 마을


한여름, 고사리밭길

20217 19

고사리밭길에 가다!



은모래에 있으면서 느긋한 마음이 너무 좋았던 건지, 바래길 걷는 게 조금 두려웠다. 특히 고사리밭길은 힘들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더 그랬다. 별점 5짜리. 언덕이 엄청나게 많다고 했다. 하지만 그만큼 예쁘다는 말을 듣고 다시 용기를 냈다.






오늘 바래길은 두 명 더 늘어났다.

바다와 수가 합류!

6명이 함께 고사리밭길을 걸었다.

버스를 타고 창선면복지센터에 내렸다.

나무에 붙은 바래길 표시와 <남해바래길> 어플을 길잡이 삼아 걷는다.







길을 가다가 큰 웅덩이를 만났다. 겨우겨우 넘어서 이상한 언덕으로 올라갔다. 바래길 참 신기하네...라고 생각하면서 언덕을 넘어갔다.





우리는 정상에 도착해서 이곳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길도 없었으니까. 수가 건너편을 가리키며 '저기야!'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왕 온 김에 여기에 서서 아침부터 만들어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오히려 좋아!





물고기 뼈.





고사리밭길 표지판을 따라서 다시 걷는다.

바래길을 걸을 때, 의외로 길이 헷갈릴 수 있다.

어플을 보면서도 잘 모르겠을 땐 이런 표지판이나, 리본으로 묶인 표시를 보면서 걸으면 된다.





조금 더 걷자 사유지 같은 곳이 나왔다.

계단을 따라 걷는 바래길이라니.

너무 신기하고 생소했다.

주택 마당을 지나 풀숲으로 들어가면

긴 다리가 나왔다.





다리에 묶여 있던 꽃들이 예뻤다.







숲길을 헤치고 지나면 다시 바른 길이 나왔다.

숲과 도로가 구불구불 오갔다.





계속 걷는다. 아무 생각 없이.







가는 도중에 근의 팔에 풀독이 올랐다.

서둘러 물을 뿌리고 응급 처지를 했다.





슬쩍슬쩍 보였던 나무숲






고사리밭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지금부터였다.

엄청난 언덕이었다. 언덕이 심지어 엄청 많고 계속 이어졌다. 우리는 중반부 언덕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잠시 멈추지 않고는 도저히 안 되는 길이였다.






토마토와 초콜릿 등 가방에 넣어뒀던 간식을 꺼내 먹었다. 처음에 언덕길을 올랐을 땐 사진 찍을 힘도 없었다.







다시 또 다른 언덕으로.

오늘은 바다와 수현이도 같이 걸어서 더 재밌었다.

문, 류, 근과 나는 1박을 할 예정이어서

짐이 더 무거웠다.






드디어 고사리밭길 언덕을

마주했을 땐 식은땀이 났다.

언덕이 한두 개가 아니고 계속 쭉 이어졌다.

오늘따라 몸이 더 지치고 힘들었다.

계속 혼자 뒤처졌다.

그래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자기 페이스대로 걸어야 하니까!


걷는 도중에 본 고사리 밭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걸었던 모든 바래길 통틀어

가장 힘들고 예쁜 길이었다.






고사리를 따라 계속 숲길로 걸었다.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 아름다웠다.


쫌쫌으로 붙은 고사리 잎이 귀엽다.

아기 손을 왜 고사리에 비유하는지

알 것 같은 모양새.






길을 따라서 천천히 걷다 보면

또 다른 풍경이 나온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고산지대 마을을

탐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너구리같이 생긴 강아지를 봤다.

염소도 뒤에 있었다.





고사리밭길은 언덕과 언덕의 연속이었다.

양옆으로 펼쳐진 수많은 고사리를 보며

눈동자에 초록을 가득 담았다.

풍경이 아름다워서 힘든 게 조금 덜어지는 느낌.





나무가 겹겹이 붙은 숲들은

자연스러운 포토존을 만든다.

잠시 빌려갈게요!





내가 계속 뒤처지니깐 류가 걱정되는 마음으로

나를 쳐다봤다. 근데 진짜로 쓰러질뻔했다.

몸에 통증이 있어서 걷는 게 힘들었다.







중간중간 쉬어가는 타임.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겼다! 고사리밭길 완주!

살짝 해가 저물고 있어서 더 아름다웠다.






고사리밭길에서 피어나는 노을을 감상했다.

정말 아름다웠다.





노을을 보고 나서 바래길 표시를 따라

마을로 내려가기로 했다.

수처럼 새겨진 고사리를 지나 걸었다.






가까이 마을이 보였는데 내려가는 길이

어디인지 헷갈려서 한참을 헤맸다.




빙빙 돌아서 겨우 길을 찾았고,

아래에 보이는 마을 따라 내려갔다.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

고사리밭길의 언덕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앞으로는 내리막길만 남았으니까.





마을 끝에 다 닿았을 때, 노을은 분홍빛.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이 순간에서

좀 더 머무르기로 했다.





일몰은 자신의 빛으로

보랏빛 하늘과 오렌지 구름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 속에 서서 추억을 만들었다.



바닷가 마을



수와 바다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고,

나머지 넷은 바닷가 마을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처음엔 마을 정자에서 텐트를 치거나 노숙을 할 생각이었는데, 지나가던 마을 할머니께서 한 아저씨한테 가서 부탁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우리는 당황했지만, 마을 가장 끝에 산다는 아저씨 집에 가 보기로 했다.







좁은 고샅길을 지나니 옆에서는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다. 밤이 점점 짙어져서 거리가 보이지 않았다.

정자의 짐을 챙겨서 넷은 함께 이 수상한 거리를 걸어갔다. 걷는 내내 우리는 이상한 망상에 빠졌다.

인신매매라던가 마을의 흉흉한 소문 따위를 지어내면서 긴장감과 두려움을 조금 안고 걸어갔다.





집 문을 두드리니까 아저씨가 나왔다.


"저희는 남해바래길을 걷고 있는데요. 혹시 여기 마당 앞에서 하룻밤 자도 될까요?"


"네네 저기 바로 옆에 창고 같은 방이랑 화장실도 쓰세요"



아저씨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으셨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호의는 지친 우리에게 너무 달콤하게 들렸다. 아저씨가 일러준 곳으로 가니깐 그곳은 천국이었다. 아마 고사리인지 해산물 따위 등을 작업하는 공간 같았다. 방은 생각보다 넓었고, 깨끗했다. 심지어 선풍기와 텔레비전도 있었다.


우리는 우선 손을 닦고 물가 앞에 돗자리를 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아침에 편의점에서 쓸어온 족발과 김밥을 먹었다.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있는데, 근처 고양이 가족이 우리 먹이를 탐냈다. 계속 호시탐탐 팔을 휘둘렸고 우리는 그들을 상대하느라 진이 빠졌다.






배가 채워지자 나른한 잠이 쏟아졌다.

넷은 기분 좋게 얼굴을 씻고

(오늘은 정말 못 씻을 줄 알았다)

도란도란 여유를 즐겼다.


텐트를 치고 잘 생각이었는데,

아까 잠깐 본 방이 눈에 자꾸 아른거렸다.


우리 넷은 모두 한 마음 한뜻으로 방에 들어갔다.

누워서 선풍기를 틀었다.

이런 호상을 누려도 되는지 잠시 고민했지만,

손은 이미 리모콘에 가 있었다.


다 같이 <슈퍼밴드>를 보면서

기분 좋은 호의를 실컷 즐겼다.







다음날, 집으로 가기 위해 방을 나오니

아저씨 집이 보였다.

따뜻하고 정겨웠던 작업실.





짐을 챙기고 쓰레기를 정리했다. 깨끗하게!




우리의 하룻밤을 책임져준 마을의 마당,

이곳을 빌려준 아저씨 안녕히 계세요!









오늘의 바래길 코스

남해바래길 4번 고사리밭길 (남파랑길37코스)

거리: 15km

소요시간: 약 6시간 30분 내외

걷는 경로: 창선면행정복지센터 -> 오용 -> 식포 -> 가인 ->천포 -> 적량 마을

개요: 4코스 고사리밭길은 동대만휴게소를 지나 동대만 둑을 지난다. 이후의 길은 우리나라 고사리 최대 산지인 창선면 가인리 일대의 구릉지대가 만들어낸 작업로이다.


*2022년 3월 23일(화)~6월까지 고사리채취 기간에 한해 사전예약제로 운영됨.

지정된 안내인 동반하에 주 4회 걸을 수 있다.

('남해바래길'애플리케이션 참고)







오늘의 에필로그


이방인에게 기꺼이 마당과 방을 내준 아저씨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우리는 택시 안에서 급하게 이 편지를 썼고, 후다닥 내려서 두고 왔다. 기사님도 적극적으로 기다려주셔서 웃겼다.


마음씨 좋았던 바닷가 마을 주민분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아저씨에게 부탁해보라며 슬쩍 말을 건네준 할머니, 강아지와 아기를 품에 안고 안부를 물었던 마을 주민들까지. 우리를 환영해주시는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덕분에 편하고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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