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홉 Aug 24. 2022

불씨

<다 함께, 숲을> 

@together.soop


불에 그을린 돌은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 

어느 가정집 정원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이곳에서만 살았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발자국을 구경하거나, 

정원 사이를 활강하는 새를 올려다보는 일. 

돌의 일과는 그런 것뿐이었다. 


그저 아주 작은 불씨였다. 

지나가던 동네 아이들의 거침없는 발소리가 그의 단잠을 깨웠다. 

아이는 알맹이 같은 손으로 돌의 옆구리를 덥석 집어 들었다. 

딱딱하게 몸이 굳은 돌은 숨죽인 채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나무 막대기를 돌의 거친 피부에 마구 비볐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돌의 몸에 불씨가 타올랐다. 

뒤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눈을 감았다. 마치 죽은 돌처럼. 

아이들은 몸에 붙은 불꽃 스파크를 한참 구경하다가 

갑자기 모든 게 시시해졌다는 듯이 돌을 정원으로 내던지며 사라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돌의 인생으로 따지자면 그건 영겁의 시간과도 같았다. 

불에서 한참을 품어진 돌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었다. 

그는 울타리를 쳐다보다가 이내 몸을 세차게 굴렀다. 

아주 오랫동안. 


마침내 돌은 어느 숲까지 다 닿았다. 

녹색 빛 호수에 돌의 몸이 옅게 비쳤다. 

여기저기 구르느라 생긴 흉터와 선명한 화상 자국. 


돌은 촉촉이 젖은 땅에 누웠다. 

생명력을 나이테처럼 몸에 두른 돌은 이 모든 것에 일부처럼 보였다. 


그는 여전히 숲에 있다.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채로.














*

<다 함께, 숲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연우 작가님의 '돌' 드로잉을 보고 상상한 것을 글로 옮겼다.

자연을 담은 그림과 글이 여러 편 묶여 책으로 나왔다. 


[불-씨]

1. 언제나 불을 옮겨붙일 수 있게 묻어 두는 불덩이. 

2. 어떠한 사건이나 일을 일으키게 되는 원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매거진의 이전글 흑고니의 행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