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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daal Apr 12. 2023

(Don’t) Talk to strangers.

narrative_recipe: 김밥

꽤 오래 살다 보니 습관이나 패턴, 나만의 의식 같은 게 생기지 않아? 난 그중에 하나가 생리기간에 초콜릿을 사 먹는 거야. 진하고 꾸덕한 초콜릿케이크도 좋지만 오늘은 속이 편하게 flourless chocolate cake으로 정하고 (밀가루 대신 아몬드가루로 만든듯해.) 옆동네로 산책을 갔어.


Bourke street bakery
in Barangaroo

케이크를 야무지게 먹고 리턴미 컵 (@bottle_factory 에서 기획하고 제작한 공유컵)에 남은 롱블랙을 담아 페리 선착장으로 걸어. 페리는 시드니 주요 교통수단 중에 하나인데 이곳에 선착장이 있거든. 그 앞을 걷고 있는데 다정한 우정의 모습을 한 두 명이 보여 렌즈에 담았고, 난 어찌할 도리 없이 그들에게 사진을 주고 싶어 큰 용기로 다가갔어.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웃으며 ‘hi?’라고 인사한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었어. 등에서도 행복이 보였던 걸까. 나는 내가 사진을 찍었는데 예뻐서 주고 싶었다, 하지만 네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다면 지우도록 하겠다.라고 말을 했고 그들은 사진에 신나 하며 ‘심지어 더 찍어도 돼!’라고 했어.



그리고는 앞모습을 몇 장 찍었어. 사진을 보여주며 나는 말했어.


‘난 실은 너희에게 와서 이렇게 얘기하는데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어.‘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그래? 아마도 사람들도 (누가 찍어주길) 원할걸? 엄청 좋아할 거야! 그리고 최악의 시나리오가 뭐겠어?’


이 부분에서 나는 징이 된 느낌이 들었어.

‘딩~~~~~’하고 맞은 느낌! 깨달음.


무언가 두려울 때, 그래서 망설여질 때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상해 보자! 이 경우 ‘아, 괜찮아요!’ 정도의 수줍음이 섞인 거절이 아닐까?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질까 봐, 혹은 사진으로 나쁜 걸 하려는 건 아닌지 그들이 불편한 상상을 하게 할까 봐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난 정말 착하게 생긴 까만색 삐삐머리를 하고 있거든. 게다가 거절은 개인적인 게 아니니 수용하고 친절하게 인사로 마무리하면 되잖아. 오늘만 볼 사람들이야.



그녀들은 나에게 용기를 주었어. 분명 그들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배웠어. 망설이다 놓쳐버린 패딩턴에서 만난 고운 할머니. 말똥말똥 나를 바라보던 짤랑 귀 푸들. 그들을 기록하지 못해 기억하지 못할 아쉬움. 이런 아쉬움 말고, 앞으로는 두려움 앞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자. 두려움은 미지에서 오는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지. 내가 생각한 최악이 그럭저럭 내가 다룰 수 있는 거라면 해보는 거야.


Don’t talk to strangers.

어렸을 때 귀에 박힌 말. 하지만 나는 모르는 이들과의 대화가 즐거워. 편향 없이 주고받는 작은 대화 속에서 얻어지는 게 있더라. 다양한 맛이 한데 어우러지는 무지개 김밥처럼 너무나 다르고 알지 못하는 서로가 잠시 만나 자신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지.

냉장고 속 모든 채소
김밥김을 뜯고 9장이 남았다. 이번주는 계속 김밥아다.

아무거나 섞어도 괜찮은 맛이야. 무계획한 만남은 마치 아주 짧은 폭죽놀이 같아.


집에 돌아와 이메일에 사진을 얹어 그녀들에게 편지를 부쳤어.


Hi! This is JEIN. On my way back home, I felt so thankful to have met both of you. I learned a lot from our conversation, even though you didn't have any intention of giving me any lessons. Thank you for inviting me to share in your moment of the day!


The photos are a little overexposed, but I think that's because of your shiny smiles : ) I'm really happy with how they turned out, and I hope you are too. I also hope that these photos can serve as a beautiful reminder of the time you spent together and help enrich your friendship.


Best,

J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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