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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daal May 17. 2023

부정을 부정한다.

[둥근사각형] 6.어렵다 vs. 도전이다

옷을 고를 때처럼 낱말을 꽤 신중하게 고를 때가 있다. '들어가지 마시오. Do not enter.' 보다는 '밖에 있으세요. Keep out.'를 택할 것이고 '금연. No smoking.' 보다는 '담배 없는 구역. Smoke-free zone.'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부정어를 피하곤 한다. 물론 위험한 상황에는 꽤 강력하고 단호한 부정어가 필요하겠지만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강력하고 뾰족한 단어보다는 나의 태도와 목소리에 더 큰 에너지를 싣고 싶다.




레시피를 보고 요리를 하는 과정을 어려워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녀의 행동을 살펴보니 그녀가 일 하는 방식을 알 수 있었는데 그녀는 전체 맥락이 머릿속에 그려져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여행을 가는 상황에 놓인다면 그녀는 세계지도를 펼치고 각 나라의 위치와 그 둘 사이의 거리와 방향을 이해해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떻게 알 수 있었냐면 나 또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도쿄에 갔을 때 언어는 둘째치고 역과 역 사이를 오고 가는 게 인지적으로 힘이 들었다. 요즘엔 메트로 전체를 보여주는 지도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구글맵이 시키는 대로 오르고 갈아타고 내리면 되기 때문이다. 지협적이고 단순한 이것이 나를 무척이나 곤혹스럽게 했다. 휴대폰에서 지도를 전체가 보이도록 확대해 보았지만 이제는 글씨가 작아져서 세부사항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종이지도가 필요한 사람이다. 아날로그여서라기 보다는 숲을 보아야 나무도 볼 수 있는 두뇌구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10개가 넘는 재료와 10단계가 넘는 요리 과정을 이해하지 않아도 되도록 '정다운집밥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달고 모든 재료를 적당한 크기로 담은 키트를 가져다주었다. 요리 과정은 4단계이다. 자른다. 섞는다. 끓인다 담는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요리할 상황을 만드는데 이미 40분이 걸린 것이다. 냄비를 찾고 칼과 도마를 꺼내고. 칼질이 어려워서 감자필러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감자필러가 집에 (당시 가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있다는 걸 알고는 집까지 다녀왔으니 말이다.



그녀는 여전히 어려워했다. 하지만 나는 강된장에 이어 감자조림 키트를 만들어다 주었고 역시 과정은 단순했다. 그녀가 만든 감자조림을 먹는데 그녀의 요리를 지켜보던 우리는 감격을 했고 그녀는 '나 이제 감자조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슬쩍 뿌듯함을 내비쳤다.



"이런 어려움이 아니라 도전이야. 어려움 (It's difficult for me.)이라고 말하면 어떤 벽에 맞닥뜨려 좌절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이에 반해 도전 (It's challenging.)이라고 말하면 흥미로운 얼굴로 마주한 일을 관찰하는 관찰자가 되거든."



전자는 피상적인 표현이다. It's difficult.라고 할 때는 '문제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있다. 그리고 해결을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반면에 후자는 역시 어려운 문제를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과 함께 해결 과정을 경험하고자 하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듣는 입장에서도 그러하다. 상대가 어떤 표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의 얼굴에 염려와 안타까움이 생길 수도 있고 반대로 설렘과 지지의 표정을 만들 수도 있다.


어려운가 도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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