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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밥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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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daal Sep 01. 2023

또 삐졌어?

prescription: 뒤집어진 마음을 다시 뒤집어 주세요.

삐졌다는 말이 다른 언어로 번역이 가능할까? 영어로는 upset, pout나 sulk이 떠오른다. 다른 많은 단어들이 그러하듯 나는 도저히 삐진 감정을 글로 설명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상황이 오면 이게 바로 그것이라고 집어줄 수는 있다.


성나거나 못마땅해서 마음이 토라지다. 사전적 의미를 보면 눈에 띄는 것이 '토라지다'이다. 토라진 것은 화남과 실망, 거기에서 기인한 침묵을 포함한다. 이렇게 미묘한 단어들은 나이가 들 수록 경험을 통해 내 것이 될 수 있다. 가령 '쑤신다'는 말이 단순히 '아프다'와 다른데, 우리는 소위 연륜을 통해 단어의 의미를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삐졌어'로 돌아가자면, 나는 이 단어의 매력을 알고 있지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기도 하다. 삐졌어는 삐졌어를 낳고 기른다. 삐졌어가 성장하고 어른이 되면 이별을 낳는다. 삐졌어는 장난감을 갖지 못한 아이가 입을 내미는 귀여운 실망을 포함하지만 고요 속에서 바로 극한 노여움으로 도약할 여지가 크다. 그것의 스펙트럼은 무척 넓지만 정도를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그 감정의 8할은 침묵이기 때문이다.


그는 '왜 또 삐졌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삐졌어'도 싫은데 '또'에다가 '이유'까지 묻는 그 물음표를 상실한 질문(?)은 내 마음에 노여움의 불씨를 지핀다. '아니? 안 삐졌는데?'라고 답하면 그는 '에이, 삐졌는데?'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아니, 나는 너에게 실망한 거야.'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는 이 상황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감지한다.


우리는 갈등이 있을 때 서로의 감정에 집중한 나머지 본질은 잊고 만다. 게다가 삐졌냐는 질문을 들여다보면 이 불편한 상황의 원인과 결과의 화살표는 모두 '나의 취약한 감정'을 향하고 있다. 그는 이 상황의 원인을 찾기 위해, 혹은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는 종종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말들을 하곤했다. 나쁜 의미에서 그러는 게 아니니까,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삼켰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뭐 그런 거 가지고 삐지고 그래. 너 너무 예민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믿었다. '이 사람과는 곧 헤어지겠구나.'라는 것을.


사실 이런 대화가 오고 갔던 과거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척 숨이 막히고 백스페이스를 와장창 누르고 싶어 진다. 하지만 이 엉킨 실타래 같은 대화는 가위로 잘라내는 것 만이 답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한다.


'아니, 나는 너에게 실망한 거야.'라고.



증상: 설명할길 없는 짜증, 호흡 곤란

처방전: 릭 샌드위치


복용방법:
호밀빵을 뒤집어가며 노릇하게 굽다가 마지막에는 팬에 남은 대파를 빵으로 닦아낸다.

Leek이나 대파는 생각보다 넉넉히 준비하자. 그 이유는 한번 더 먹어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큼한 오렌지쥬스와 샴페인을 섞은 미모사를 곁들여도 좋다.



Leek은 여기에서 흔한 재료이다. 대파 같으면서도 묘한 달큼함과 은은한 향이 있다. Leek은 감자와 함께 수프로 끓여도 맛있겠지만 흰 부분만 송송 썰어서 올리브유에 볶으면 적당한 만큼의 질감이 살아있다. 이에 반해 대파는 꽤 으깨지는 편이다. 단것만이 능사가 아닐 때가 있다. 딸기딸기딸기한 토스트도 먹고 싶지만 (딸기잼을 바르고 생딸기를 얹어 건조딸기를 뿌려 먹는 토스트) 오늘은 배를 채워야 한다. 그렇다면 세이보리 하게 샌드위치를 만들어야 한다.



송송 썬 대파 두 줌을 올리브유가 데워진 팬에 볶는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곳곳이 노릇해지면 불을 끈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팬의 상황이 허락한다면 한쪽에 빵도 같이 굽는다. 다 익은 대파를 걷어낸 후 팬에 남은 대파와 올리브유의 흔적은 빵으로 깔끔하게 닦아낸다. 설거지의 반이 끝났다.



샌드위치의 요점은 접착력과 미묘한 새콤함에 있다. 그래서 나는 아보카도를 잘 쓴다. 빵 한 면에 으깬 아보카도를 발라주면 다른 재료들을 잘 잡아준다. 그리고 새콤함을 더한다. 부엌에 토마토가 있으니 얇게 썰어서 얹는다. 이 샌드위치에는 호밀빵이 잘 어울린다. 조금 더 강력함을 원한다면 버터를 (바르지 않고) 썰어서 아보카도를 바르지 않은 빵에 올려서 포갠다. 버터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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