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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세수 Jan 05. 2022

마흔, 두 번째 면접에 떨어졌다.


두 번째 면접의 불합격 소식을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당신이 왜 불합격인가?’를 최대한 예의 있게, 그러나 또박또박 설명하는 목소리에 기가 죽어 전화받는 내내 ‘네, 네’라는 말만 반복했다. 진짜 ‘네, 네’만 했다. 상대방은 내가 너무 ‘네, 네’만 해서 황당하지 않았을까? 전형적인 INFJ는 그 순간에도 남 걱정이나 하고 앉았다. 내가 ‘네, 네’만을 반복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아, 조금 기대했는데(30% 정도?) 불합격이라고요?

2. 제가 왜 불합격인지 듣고 보니 당신 말이 맞네요.

3.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4. 형식적이고 의미 없는 말은 하지 말고 이만 끊어주세요.


나는 3번에 이르러 울컥하는 걸 간신히 누르고 있었다. 눈물은 눈치가 없다. 눈물이 사람이라면 이런 순간만을 노리고 치고 올라는 녀석을 사정없이 치고 싶다. 전화를 끊고 무거운 마음을 둘 곳이 없어 한참을 서 있었다. 마침 남편과 집에서 쓰레기 분리수거하던 차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남편이 ‘무슨 일이야?’ 묻는다. ‘불합격이래’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싫어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분리수거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는데 남편이 집요하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궁금한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혼자 좀 내버려 둘 순 없을까? 대답 없는 나에게 더 바짝 다가와 물었다.

“울어?”

이 말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졌다. 비상, 비상! 눈물로 만든 댐이 폭발해버렸다. 나도 모르겠다.

“혼자 좀 내버려 둬” (훌쩍훌쩍).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굶어 죽니? 왜 울어?”


그래. 굶어 죽진 않는다. 아이도 없고 양가 부모님은 생활비 꼬박 드리거나 돌봐드려야 할 처지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속상했다. 다른 문제였다. 나는 다시 예전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 날 힘들게 했지만 정말 사랑했던 일을 영영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과 서러움이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투덜거리며 출근해도, 자리에 툭 앉자마자 ‘아, 여기가 내 자리지, 내가 일하는 자리지.’라고 느끼던 안락함이 그리웠다.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는 없어지고, 새로운 일을 해보자고 계획했던 일도 물거품이 되었다. 면접은 자꾸 꼬이기만 하고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런 마음을 설명할 방법도, 남편이 알아줄 리도 없다.


두 번째 불합격 소식을 받은 날.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았다. 오랜 기간 함께 일해 온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마흔의 영화 PD인 주인공 찬실이는 하루아침에 '일'을 잃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 같은 먹먹한 기분을 느끼며 방황하는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얼마나 울다가 웃다가 했는지 모른다. 나는 잡지 만드는 일을 했었다. 에디터로 일하며 글을 쓰고 기획안을 만들고, 촬영하고 인터뷰하는 일을 사랑했다. 야근을 해도, 사람들과 트러블이 생겨도 어찌어찌 나오고야 마는 결과물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찬실이는 사랑하는 영화에 매달려 달콤한 연애도 못했다. 일을 잃고 나서야 자신이 잘못 살아온 건가 상심하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행복해진다는 장국영(귀신인지 뭔지 모를)의 물음에 어느새 나도 영화 내내 찬실이와 함께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뭘까?' '나의 일', '안정감', '그 안에서의 성장?' 추상적인 것만 떠오를 뿐이었다. 영화 속처럼 온갖 풍파를 겪고도 깔깔깔 웃는 할머니들의 인생의 무게에 비하면 아주 깃털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 20대 후반, 그랜드캐년에 갔다가 그 웅장함에 압도되어 “나는 아주 사소한 존재더라. 세상의 걱정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더라.”라고 말했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그날 저녁. 남편이 빳빳한 오만 원을 건넸다. “엄마가 너 주래” 지난번에는 삼만 원을 주시더니 이번엔 오만 원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내가 고생하는 게 싫다고 하셨다. 일 년에 딱 두 번 장사를 쉬실 정도로 일만 해온 어머니는 “이게 다 뭐라고 남들 다 가는 여행도 못가보고 일만 했을까 싶다.”라고 한숨을 쉬실 때가 많았다. 그리고 “넌 나처럼 일만 하며 살지 마라.” “둘이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거 많이 보고 다녀라.”라고 당부하셨다. 일을 쉬고 있는 나에게도 “일을 쉬고 있으면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망설이게 될 거야. 꼭 먹고 싶은 거 사 먹어”라며 몇만 원씩 주셨다. 남편에게 오만 원을 전달받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날도 어머니는 “네가 좋아하는 과일 사 먹어.”라고 하셨다. 네가 좋아하는 것. 네가 먹고 싶은 것. 어머니는 오직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쓰라고 하셨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상심하는 찬실이 곁을 지키는 것은 주변 인물들이었다. 배우 소피, 영이, 영화 후배들 그리고 주인 할머니까지. 찬실이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듯하지만, 그동안 부지런히 이어온 그녀의 일과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나는 요즘의 내가 미우면서도 한없이 가엽고 안쓰러웠다. 더 깊은 상실감과 고민에 자신을 가두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가끔씩 올라오는 먹먹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비록 두 번의 면접이었지만 과정이 참 혹독했다. 마흔의 나이가 걸림돌이 되는가 하면 결국 그들의 입을 통해 나의 부족한 능력만 확인할 뿐이었다. 감정 소모가 심하니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피곤했다. 웅크린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새해 계획을 세웠다. 나의 부족함을 알았으니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그리고 복잡하게 엉켜버린 생각과 마음을 꺼내 노트에 적어보기로 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오래갈 수 있고, 금방 털고 일어날 수도 있다.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어” 언젠가 위로를 건네던 엄마의 말처럼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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