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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세수 Feb 23. 2022

마흔, 세 번의 면접에 떨어진 이유

마흔의 기혼 여성. 업계 경력 10년 차. 총 세 번의 면접. 어느 날 내가 면접에 떨어진 이유를 알았다. 아니 깨달았다. 그것도 설거지를 하다가 말이다. 최근 일과 꿈, 인간관계, 목표, 돈 등에 관한 글을 자주 읽고 있었다. ‘회사에 목숨 걸지 마라’ ‘저축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 ‘인간관계는 심플하게 하라’ ‘일잘러는 이렇게 일한다’ 등등. 그야말로 사람들에게 다양한 인사이트를 주는 글들을 읽으며 나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깨달은 것이다. 내가 면접에 떨어진 이유를.


첫 번째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는 기술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굳이 깨닫지 않아도 명확한 사실이었다. 나는 a라는 기술만 가지고 있을 뿐, b라는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신생 업체나 다름없던 곳에서는 가능한 a, b 혹은 c, d까지의 기술도 가진 사람을 환영할 것이다. 나는 그야말로 가르치며 일을 시켜야 하는 사람이었다.


두 번째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는 충분한 인사이트를 제공하지 못한 것이다. 2차 면접에서 만난 회사의 임원은 올해가 창사 00주년의 중요한 시기라고 했다. 기존의 새로운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고, 방법을 찾고 싶어 했다. 그래서 업계 경력이 많은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곱씹어보면 나는 그 질문들에 대해 명쾌한, 신선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물론 면접 분위기는 좋았으나, 그 임원은 풀리지 않은 수학 문제를 앞에 둔 사람처럼 계속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답이 됐겠지’라고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었다. 업계 경력은 많지만 고인물 같은 대답만 하고 온 것이다.  그 임원은 나에게 어떤 인사이트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온 인사담당자의 대답은 “함께 일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좀 더 새로운 분야의 경력자와 일하고 싶으시다네요.”였다.


세 번째 면접은 평소 궁금했던 회사이기도 하고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봤다. 면접을 진행한 담당자는 자꾸 나의 나이를 걱정스러워했다. 업계 분위기는 잘 알겠지만 마흔이라는 나이는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니까 말이다. 면접 초반부터 나이에 대한 걱정을 들으니 힘이 빠졌다. 그때부터였을까? 면접에 대한 의욕이 확 꺾였다. 회사에 입사하면 해야 할 일들도 기존에 했던 일들과는 전혀 달랐다. 물론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주 업무 자체가 달랐다. 나는 이런저런 질문을 받으며 담당자가 당황해할 정도로 솔직히 답했다. 담당자는 웃으며 “우리 회사에 어쨌든 관심이 있으셔서 오신 거긴 하죠?”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끝까지 나의 경력과 나이를 부담스러워하는 말을 들었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이 마흔에 다시금 예전처럼 좋아하는 일로 돌아갈 순 없다는 슬픈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하고 배워야 하는데 나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면접을 끝내고 문을 나서면서 ‘아, 떨어지겠구나’라는 예감이 왔다. 그리고 세 번째 면접도 떨어졌다.


얼마 전 꿈을 꿨다. 예전의 회사로 돌아가 동료들과 일을 하는 꿈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지?’하면서도 들뜬 기분이었다. 깨어보니 역시 꿈이었다. 그야말로 꿈만 같은 꿈. 과거는 흘러간 대로 둬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흘러간 강물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몇 년 만에 홍보일을 하고 있는 절친을 만났다. “너의 직업이 면접 보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해야 해”라며 나이가 걸리더라도 계속 문을 두드리라고 조언했다. 친구는 팩폭을 하기보다 다독이듯 말해주었다. 현실이 그런 건 당연한 것이고, 그렇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백수가 되고 면접에 좌절을 느낀 이후, 처음으로 나를 이해해주는 말을 들었다.

회사 밖으로 나오면 비로소 기회가 있다고 한다.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은, 회사에 잘 적응하며 즐겁게 일했지만 퇴사 이후의 삶을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면접에 대한 상실감이 크고 마음을 다잡기가 힘든 건지 모르겠다. 다이어리에는 자신감 없는 일기만 가득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기회가 있을까?’ 현실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건데 나는 애써 외면했던 건 아닐까? 친구 말처럼 세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직 많은 날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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