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미국의 계관시인인 도널드 홀은 2018년 만 여든 아홉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시뿐만 아니라 동화, 산문, 전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을 남긴 그는 노년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나이가 들면서 ‘비범한 은유와 운율이 더이상 떠오르지 않게 된’(13p.)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시가 나를 버렸다.’(25p.)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간다.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은 그가 80대가 된 이후에 쓴 산문들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이 책의 작가이자 화자가 80대 노인이라는 점이었다. 오늘날 소설이나 에세이,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작품을 볼 때, 우리는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듣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다. 청년기를 지나 중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는데도 노년의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시인은 나이가 드는 것을 ‘내 몫의 원이 점점 작아지는 것’에 비유하며 노년을 ‘연속적인 상실의 통과의례’라고 표현한다.(13p.) 그는 50-60대까지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으나 70대가 되자 다리의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균형감각을 잃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80세가 되던 해에 두 차례 교통사고를 내며 운전을 그만두어야 했다고. 노년에 암 투병을 했던 그는 죽음의 문턱 가까이 갔다가 회복하였는데, 80세가 되어서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몸 상태였음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가 겪은 신체적 변화는 피할 수 없는 노화 과정의 일부였지만 직접 겪어야 하는 자신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낯선 상황에 대처하고 새로 생겨난 신체의 제약들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고 유쾌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말하는 노년의 ‘점점 작아지는 원’은 그가 가진 것들을 완전히 잃게 만들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러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생애를 관통하고 있는 행복했던 기억들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작가가 가족 농장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추억,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 (그는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한다고 한다.), 턱수염에 얽힌 이야기, 첫번째 아내와 했던 유럽 횡단 여행 같은 소중한 기억들이 촘촘히 담겨 있다. 이것은 마치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소박하지만 따뜻하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으며, 시인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을 때 나의 생애를 관통하게 될 소중한 기억들은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한편,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일찍 잃어야 했던 것을 포함하여(두번째 아내 제인) 그의 생애에는 수많은 이별이 있었다. 첫번째 그리고 두번째 아내, 아버지, 할머니, 동료들의 죽음 등 가까운 이들과의 무수한 이별이 있었지만, 그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인생의 과정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언젠가 자신에게도 닥쳐올 죽음에 대해서도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는 대신, 자신은 ‘돌아가시지(pass away) 않을 것’ (148p.) 이라며 죽음을 담담히 마주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나아가 그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 되려 ‘늙음’이라고 말한다.
“내 난제는 죽음이 아니라 늙음이다. 내가 균형 감각을 잃어가는 것을, 자꾸만 뒤틀리는 무릎을 걱정한다. 일어나고 앉는 게 힘들어지는 걸 걱정한다.” (198p.)
이러한 그의 표현에서 ‘죽음’이라는 불투명하고 막연한 두려움에 침잠하는 대신, 죽음을 앞두고 있는 순간까지도 계속되는 현재의 삶을 잘 살아 내기 위한 노력과 의지를 읽었다. 그가 죽음 보다도 두려워한 ‘늙음’이란 비단 신체적 노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그토록 소중했던 글쓰기를 끝까지 놓지 않았던 정신적 젊음과 열정, 사랑하는 이들, 소중한 일상을 끝까지 아름답게 바라봤던 시선 같은 것들이 늙어가는 육신을 뛰어넘어 늘 그를 진정 살아있게 만들었던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