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23년 생을 마감한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에세이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는 폴 볼스(Paul Bowles)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스무 번 정도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가 무한하다고 여긴다.”
그의 마지막 연주가 담긴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 영화를 보며, 그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긴 투병 끝에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를 들으면서 생의 유한함, 그리고 그렇기에 더 소중한 인생의 의미에 대해 오래 곱씹었다.
배영옥 시인의 시집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 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3부로 이루어진 시집을 이루고 있는 시에는 공통적으로 죽음과 삶에 대한 고뇌가 관통하고 있다. 작가에 대해 검색해본 결과 이 시집은 그가 투병 후 2018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지은 시들이 담긴 유고시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그의 시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때로는 고통을 주고, 때로는 기쁨을 주는 생을 우리는 감사히 여기기 보다는 당연히 여기거나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여기곤 한다. 삶이 정말 간절해지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갑작스레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이다. 수록된 시 <자두나무의 사색>에서 시인은 자두나무를 타고 오르는 칡넝쿨의 결박에 대해 묘사하며 그 간절함의 원천에 대해 생각한다. 칡넝쿨의 결박으로 표현되는 갈증의 이미지를 통해 마르지 않는 삶에 대한 갈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삶을 갈망한들, 그 의지와는 상관 없이 삶은 주어지고 다시 앗아 가지며, 그것을 깨닫는 순간 어찌할 수 없는 덧없음의 감정이 밀려 온다. 수록 시 <해피 버스데이>에서 시인은 ‘생일’에 대해,
“알고 보면 선택의 자유 없는 피의 신고식
매번 되풀이되는 생일이 존재할 이유는
살아남은 자의 존재 확인에 불과한 것”
이라 표현하며 그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시인이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며 느끼는 감정들은 수치, 늙음, 추함, 병듦, 희미함의 이미지를 통해 보여진다. 그것들은 벌레, 불면, 헌책, 요양원 등의 어두운 단어를 통해 반복되어 등장하며, 이를 통해 그가 겪은 투병과정과 내면의 고통에 대해 짐작해보게 한다. 그 과정은 정말로 고통스럽고 치열하며, “새는 정말 새가 되기 힘들고 나는 진정한 나조차 되기 힘들”다는 말처럼(<나는 나조차 되기 힘들고>, 99p.) 결국 이 삶에서 ‘나’라는 사람이 정말 ‘나’를 지키며 나답게 살아내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란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여러 시에서 반복되어 등장하는 ‘의자’라는 매체는 시인의 시세계를 통해 표현되는 삶의 중심이라고 읽힌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의자를 저버렸던 사람, 모든 영혼은 각자 자기 안의 의자와 마주해야 할 순간이 있고” (<의자를 버리다>, 78p.) 라는 문장을 읽으며, 모두에게 주어지는 공평한 삶과 죽음의 기회에서 그것을 어떻게 읽고 통과해 나갈지 각자의 몫에 달려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내 “새들의 나라에 입국했다”(<나는 새들의 나라에 입국했다>, 102p.) 고 말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인은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을 직면하는 순간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잡으려 할 수록 마구 흝어지려는 삶의 조각을 그러모아 치열히 이어낸 순간들이 이 시집에 빼곡히 담겨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