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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란 Oct 06. 2022

축구는 안보면서 손흥민 아빠책 읽고 우는 여자

책 리뷰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를 읽고

다행히도(?) 엄마가 울든 말든 5살, 7살 난 아들 둘은 옆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지 못한다. 신나게 소리치며 레고 놀이를 즐길 뿐. 다섯 번 정도 눈물을 닦았는데 아무도 모르고 넘어갔다. 주말 오후, 아들 엄마의 삶이다. (아들의 뇌는 딸의 뇌와 구조 자체가 다르데요. 지 일 아니면 안 들리고 안 보인다네요^^;)


책을 읽기 시작하고 10분도 채 안되어 울어버렸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이 책은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이자 축구 지도자인 손웅정 감독이 쓴 에세이다. 축구에 관심도 없는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어떻게 하면 손흥민 같은 멋진 아들로 키우나' 하는 마음이었다. 어쩌다 보니 애를 둘이나 낳아 아직도 실감이 안나는 엄마라는 사람이 세계적인 축구스타 손흥민의 아빠가 마냥 부러워 선택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나에게 전혀 다른 울림을 주었다. 부모로서의 내가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를 돌아보게 만드는 게 아닌가.


책 제목처럼 기본/본질을 가장 중요시하는 그는 축구 선수로, 축구 지도자로 또 아버지로 치열하게 살았다. 부상으로 프로선수 4년 차에 은퇴하게 되는 좌절을 겪지만,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들의 아버지로 막노동도 불사했던 시절의 이야기. 그 시절이 오히려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이제는 덤덤하게 말하는 사람. 담박한 삶이 좋다는 그의 지나온 인생은 담박이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어색한 지독하리 만큼 치열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2-30대에 겪은 치열함은 손웅정 감독의 치열함에 비하면 애교다. 어떻게 하면 나도 아들에게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인생철학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아이들 옆에 앉아 책을 펼쳤는데 그런 방법론은 나오지 않았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오히려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이 당당하고 떳떳하면 아들 인생은 절로 올바를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바른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고, 말하고, 글 쓰고, 책 읽고, 밥 먹고, 물건을 사고, 여행을 하고, 친구를 사귀는데 아들이 어떻게 올바른 생각으로 인생을 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보고 배운 게 그것뿐인데!


책에는 내 기준에서 충격인 이야기도 있는데, 아들(손흥민)이 어린 시절 상을 받아오면 버렸다는 것이다. 오해가 없도록 책 내용을 그대로 발췌해본다.


나는 흥민이가 어린 시절부터 상 같은 걸 받아 올 때면 축하한다, 고생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서 그 상장과 상패는 분리수거하고 들어와라, 라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집에도 무엇 하나 기념으로 붙여놓거나 내놓은 것이 없다. 나의 선수 시절에는 사진 같은 것도 찍을 일이 별로 없었지만 그때 찍은 사진, 신문기사, 당시 입었던 유니폼도 싹 다 폐기 처분했다. 기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대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상을 받는 것이, 상패가 무슨 의미인가.  -중략- 외부에서 칭찬하고 언론에서 무언가 가능성을 언급할 때 아직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 선수는 그에 취하기 쉽다. 사람들의 주목에 들떠 중심을 잃는 경우가 많다. 내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내가 잘났다는 우쭐함은 차원이 다르다. 자기의 중심을 잃는 순간 집중력은 현저히 낮아진다.


비슷한 일화가 하나 더 있다. 손흥민이 해병대 훈련병 시절 사격에서 열 발을 모두 적중시켰고 언론에서도 보도가 되었는데, 이때 받아온 표적지도 버렸다..

퇴소하고 다시 만난 흥민이도 자기 자신이 대견했는지 사격 표적지를 챙겨 들고 나와 가족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는 흥민이가 챙겨 나온 군대 물품들은 물론 그 표적지까지 정리해 버리자고 말했다. 내 행동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흥민이는 '우리 아버지가 그렇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흥민이는 내가 하는 행동의 진짜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내가 흥민이를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표적지나 상장 같은 사물이 아니다. 핵심은 내가 최선을 다했고 그와 더불어 해야 할 일을 행복하게 잘 마쳤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 일에 얼마나 성실히 임했는가.' 중요한 것은 본질이 무엇이냐를 아는 데 있다.


와..

육성으로 '와..'가 나올 정도로 충격이었다. 이 정도 레벨이 되려면 명상, 수련 이런 걸로 가능할까? 나는 어린이집 모든 아이들이 받은 소방안전교육 수료 상장도 스크랩해서 모셔 놓았는데? 손흥민 아빠의 삶의 철학은 어디에서 어떤 계기로 어떻게 이토록 뚝심 있게 자리 잡았는지 궁금하다. 알려준다고 그게 실천이 되겠냐마는.. 다시 생각해봐도 난 못 버릴 거 같아..


 저자의 축구사랑은 진심 그 이상이었던 걸로 느껴지는데 그렇게도 사랑하는 축구를 내려놓아야 했을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어느 날 아들이 그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그리고 아들을 직접 지도하며 아들이 다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시간들. 아버지로서 가슴 아파하면서도 지도자로서 덤덤하게 일으켜 세워야 했을 때 그는 어떤 감정을 겪으며 보냈을까.


축구와 독서. 이 두 가지가 그의 삶을 지탱해 온 두 축이라고 한다. 책을 통해 위로받고 책을 통해 나아갔을 그의 축구 인생 이야기는 축구의 'ㅊ'도 모르는 나에게 승리의 트로피를 받은 듯한 감동을 안겨준 책이다.


치열했던 그의 하루하루 이야기가 영화를 본 것처럼 선명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보니 접힌 책 귀퉁이가 거의 역대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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