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민 May 21. 2020

오직 작업이 답이다

나 역시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솔직히 예술이나 대학에 너무 목숨 걸지 않았으면 한다. 예를 들어보자. 네가 한예종을 나왔다고 치자. 그리고 뉴욕대 예술과를 나왔다고도 치자. 그리고 정말 들어가기 힘들다는 예일대 예술 쪽 학과를 나왔다고도 가정해보자. 또, 선배가 짱짱하다는 중앙대나 동국대나 서울예대 등을 나왔다고 쳐보자. 아니면, 교수들이 현장에 있어서 제자들을 잘 끌어준다는 지방 무슨 무슨 대학 등이 있다고 치자. 그런 학교를 나왔다고 쳐보자. 또 고졸에 그냥 대충 사이버대학 정도 다니고 있다고 쳐보자. 이 중 누가 현장에서 가장 인정받을까? 현장에서 통하는 학력은 뭘까? 교수진? 선배? 한예종? 명문대? 유학? 정답은 일 잘하는 사람이다. 진짜다. 학력은 전혀 도움이 안된다. 뮤지컬 배우를 학력으로 하는 거 본 적 있나? 뮤지컬 배우가 한예종 출신이라서 타 대학 출신보다 오디션이 잘 된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나?


선배는 당신을 끌어주지 않는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법대는 사정이 다르다. 법대는 서울대 다르고, 고려대 다르고, 다른 대학 다르다. 나중에 법무법인에 들어가거나 대형 로펌 등에 들어갈 때도 서울대 아니면 못 들어가는 로펌이 있다. 설혹 그 대학 출신이 아닌 사람이 들어간다 해도 차별이 심하다. (진급하는 최대치가 이미 정해져 있다) 서울대는 기본이고, 출신 고등학교와 지역까지도 차별하는 게 이쪽 분야다. 이처럼 직업에 따라 출신 대학이 매우 중요한 직업이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은 대학이 있다. 그렇다면 예술 쪽은 어떨까?


같은 예술이라 하더라도, 성악이나 기악은 사정이 좀 다르다. 대부분 졸업 후에 레슨이나 시향과 같은 연주단체에 들어가는 정도다. 그도 아니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모두 학력과 선후배, 스승과 제자 관계가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곳이다. 그러니 수많은 부조리와 비리가 있어도 언제나 교수와 스승은 갑이고 학생과 제자는 을인 거다. 하지만 연극과 영화, 영상, 연기, 소설 등의 분야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물론, 선배가 끌어주고 교수가 밀어주는 그런 애틋한 관계가 없지는 않겠으나 앞서 언급한 법대 등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라 하겠다.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최선을 다해 탁월한 경력을 쌓으라


그렇다면 연극 영화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선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한예종 연출과 교수인 배우 박근형은 고졸 출신 연극인이다. 최고의 연출자이자 동국대 연극과 교수였던 이윤택 선생 역시 학력이 높지 않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학력으로 따질 수 없는 압도적인 경력이 있다. 만일 연극영화 분야를 선택했다면 1년 정도만 입시 준비에 투자해라. 최선을 다해서 1년을 준비해라. 솔직히 나도 연극영화과 입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부 학교의 경우 너무 주관적이고 가볍다. 이를 위해 땀 흘려 가르친 학생들을 보내는 것 자체가 아까울 정도다.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을 과연 얼마나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엉터리 입시인 거다. 그러니 붙었다고 뿌듯해하지 말고 떨어졌다고 비하하지 마라.


그러나 그렇게 1년을 준비한 후? 평가를 받았다면? 이젠 준비를 그만두자. 적절한 선에서 일단 대학에 진학하자. 수도권 대학교 정도의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라면 충분히 자부심을 느끼고 다닐 만 하다. 그다음엔 작업에 최선을 다하라. 예술가로서 최고가 되려고? 최선을 다해보라. 밤을 새워서라도 압도적인 실력을 쌓아보라. 술 마시며 의리를 외쳐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선배들 역시 나중엔 먹고사느라 정신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술자리에서 외쳐댔던 그 소중한 의리가 돈 몇 푼에 바뀌는걸 수도 없이 목격하게 될 것이다.


예술가에게 도움이 되는 부류는 의외로 아닐 공산이 크다. 돈 얘기가 아니다. 자유에 대한 갈급함을 예술가에게서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작업하라. 만들고 시나리오를 써라. 어떤 일이 있어도 탁월한 작품을 만들어라. 배우라면 연기를 하고, 영상쪽이라면 만들고, 촬영이라면 촬영하라. 학력이 부족해도 작업경력만 좋으면 충분히 이상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연극영화 쪽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학력을 얻은 후에 직업을 얻는 거라 착각한다. 물론 의대나 교대는 그렇다. 그러나 연극영화 쪽은 그렇지 않다. 작업 경력만 탁월하다면 학력은 다음에도 충분히 갖출 수 있다.


어차피 먹고 살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일부 성공한 연예인들은 대학을 쉽게 가는 게 현실이다. 당신 역시 자신의 분야에서 조금만 이름을 알린다면, 간단히 유학을 다녀오거나 국내에서 따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다. 영국에선 1년 만에 MFA(예술 석사학위)를 딸 수도 있다. 1년을 4학기로 나눠 속성으로 석사를 준다. 미국 역시 30~40위 밖의 예술대학은 정말로 입학하기 쉽다.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외국에서 하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조차도 힘들다면 국내에서 공부해도 충분하다. 교수라고 해서 정교수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 쪽은 오히려 겸임교수와 같은 비정규 교원이 적지 않다. 자기 사업이나 작업을 하면서 겸임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흔한 것이 예술 분야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성공이나 주요한 경력 없이는 절대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도 이 분야다.


한예종 영화과 이정범 교수는 한예종 영화과 학부 출신이다. 이렇게 대졸 학력으로 국립대학 교수가 가능한 곳이 바로 연극영화 분야다. 물론 이정범 교수는 영화 ‘아저씨’를 연출한 감독이다. 학력이 아닌 작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좋은 학교 출신인 걸 자랑하다가 실력이 없으면 욕을 몇 배로 먹는 곳이 이곳의 생리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입시 준비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딱 1년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에 맞춰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대학에 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는 예술가답게 예술가로 경쟁하라는 것이다.


요즘 주변엔 명문대 출신으로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그 어느 대학에서도 교수를 못 해서 떠도는 지인들을 많이 본다. 명문대를 진학하고 싶다면 다른 대학보다 서울대, 연고대 등을 나와서 유학을 한 후 한예종 전문사를 나오는 게 더 좋다. 그만그만한 대학의 연영과를 나와봐야 어차피 먹고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업을 하고, 경력을 쌓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라.


작업이 답이다, 현장이 승부처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요,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죠? 어떻게 해야 현장 경력을 쌓을 수 있죠? 방법을 알려주세요. 솔직히 가능하기는 한 겁니까? 경쟁이 너무 치열하단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 그 심정도 알겠다. 하지만 작업은 그야말로 스스로 부딪혀 가면서 쌓아가는 것이다. 하나를 해서 잘하면 또 같이하게 되고, 주변에 소개하고, 다른 회사에서도 연락이 오고… 그런 식으로 또 다른 경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작은 일 속에 어떤 큰 기회가 숨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단 한 번 오는 그 기회를 위해 당장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서 작업을 계속해가야 한다. 그렇게 해도 기회가 올 것 같지 않다면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기약 없는 기다림과 어려움이 그깟 대학 입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서 현장의 경력을 학력보다 인정하는 것이다. 적어도 연극영화 쪽에선 그렇다는 말이다.


연영과 분야는 지금 전쟁 중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이 현실이다. 학력이 좋다고, 선후배 관계라고 챙겨줄 여유가 없다. 그러니 인맥이니, 선후배니 하는 관계들에 기대지 말라. 결국, 작업이 답이다. 현장이 진짜 승부처다. 예술가답게 미지의 보이지 않는 무한 경쟁에 과감히 도전해보라.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만들어서라도 도전하라. 건투를 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예인이 되기 위해 연영과에 가지 마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