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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미 Feb 07. 2023

1. '조중동' 인턴기자 3관왕 달성

메이저 보수언론 3곳에서 인턴기자 생활을 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실시한 ‘2022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동아일보 이 3곳의 종이신문 열독 점유율은 50.3%에 달한다. 이처럼 대한민국 사회에서 '조중동'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세 언론사의 영향력은 아직까지도 막대하다. 나는 운 좋게도 이 3곳에서 모두 인턴기자 생활을 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면 시쳇말로 자뻑 같아서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 세 언론사에서 모두 인턴기자 생활을 했다는 건 꽤 대단한 일이다. 인턴기자 경쟁률도 일반 정규직 기자만큼이나 치열한 상황에서 메이저 신문사 3곳의 인턴을 모두 합격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중 2곳은 평가를 거쳐 정규직 기자로 전환시켜 주는 '채용전환형 인턴기자'였다. 정규직 전환에 모두 실패하고 말았지만, 어쨌든 당시에 나는 기자를 준비하는 주변 언론고시생들 사이에서 나름 대단한 스펙의 소유자였다. 


나 역시도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참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인턴 경력들은 쓸데가 없다는 것을. 너무 오래된 인턴 경험을 이력서에 쓰기엔 나는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다.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당시의 인턴 경험들을 이대로 기억의 저편으로 흘러 보내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경험한 언론사들의 문화는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대단하지는 않았다.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부자가 되어야지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구성원이 되지 않고서는 직접 그 회사를 경험할 수 없기에 밖에서 들리는 타인이 해주는 이야기에만 의존해 판단하게 된다. 더 까먹기 전에 내가 경험한 세 언론사의 에피소드들을 풀어놓으려고 한다. 


#장면 1. 


A회사는 내가 맨 처음 인턴기자로 근무한 신문사다. 처음으로 메이저 회사의 인턴기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흥분됐고 기뻤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언론사의 인턴기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설렜다. 하지만 이 설렘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처음으로 통장에 찍힌 월급을 확인한 순간 인턴 동기 카톡방은 불이 나기 시작했다. 설마 했는데. 최저시급은커녕 2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우리가 받은 것은 월급이 아니라 '교육비'였다는 것을. 우리는 교육비를 받고 일하는 인턴기자였다. 


"월급 60만 원 찍였던데 다들 확인해 봤어?"


"헐... 60만 원 실화?"


#장면 2.


B회사는 A회사에서 인턴기자 생활을 수료하고 바로 다음 해에 근무한 신문사다. 채용전환형 인턴기자였고 정규직 인턴기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이때 처음으로 언론계 안에서 학벌이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알게 됐다. "서울대 출신들은 아마 모두 정규직 전환이 될 거야." 이런 말이 동기들 사이에서 돌았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인턴이 끝나고 알게 됐다. 헛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서울대 출신들은 이미 인턴 시작과 동시에 정규직 확정이라고 하던데...?"


"..."


#장면 3. 


C회사는 마지막 인턴기자 생활을 한 신문사다. 이미 두 번의 인턴기자 생활을 한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완성형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최종면접 장에서 만난 사장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면접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장의 스마트폰이었다. 사장은 면접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정 가운데에 앉아 열심히 스마트폰을 했다. 나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갔고, 자신감도 사라졌다. 면접이 끝나고 인턴동기에게 물었다. 


"너도 답변할 때 사장이 앞에서 핸드폰 만지고 그랬어?"


"아니 내가 면접볼 때는 안 그러던데, 오히려 질문도 많이 하고 그러던데?"

 


돌이켜보면 주변 친구들이 선망하는 이른바 조중동에서 모두 인턴 경험을 했지만, 상처의 순간들은 아직도 잊히지 않은 채 내 가슴 저편에 남아있다. 물론 상처만 나눌 생각은 아니다. 기뻤던 순간도 보람찼던 순간도 기억 남는 몇 개의 장면들이 더 잊히기 전에 나누려고 한다. 지금도 기자가 되기 위해 인턴기자로서 '미생'의 삶을 보내고 있을 그때의 나를 응원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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