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즈키 Sep 12. 2020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이 맞지 않았다

공무원을 그만두겠다는 배부른 투정






사건 개수가 40개를 향해 치닫아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꼈을 때,

다행히 팀장님의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과 민원인들이 갑자기 줄줄이 취하를 하는 바람에

사건 개수를 여차여차 30개로 다시 줄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이 내게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이.


결국 근로감독관 일이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그것도 '분노'로 가득 찬 사람을.


당사자 사이에 껴서 상대방을 향한 분노의 감정을 감독관이 고스란히 떠맡게 된다.

상대방에게 풀지 못한 감정을 근로감독관에게 잔뜩 쏟아 낸다.

가뜩이나 신고한(혹은 신고하게 만든) 그놈 때문에 열 받아 죽겠는데,

감독관이 중간에 껴드니 "너 잘 걸렸다."라는 심정으로 근로감독관을 주적으로 삼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예전 신규임용교육 때 '선배와의 대화'코너에서 누가 근로감독관에 잘 맞는지라고 질문했을 때

한 선배가 '감정이입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던 게 이제 조금 이해가 간다.

당시엔 뭐 저렇게 영혼 없는 답변을 할 수 있는지라고 생각했지만..


감정을 배제하고 일을 하자니, 점점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어 가고 있었고

나 또한 사무실에서 민원인들에게 때로 성격 파탄자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보니,

내가 왜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괴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다. 사기업에선 직원이 일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당장 그만두라고 하지만,

여기선 그러는 사람도 없으니, 스스로 열정 없는 모습에 한탄할 뿐이었다.


이건 아니라고.. 더욱이 지원을 하고도 욕을 먹었던  '긴급 고용지원금'업무의 악몽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본부는 지방 관서의 의견조차 듣지 않고 '언론'을 통해 2차 지원을 하겠다고. 그것도 추석 전날까지 지급하겠다고 막무가내로 통보를 했다. 우리 직원은 정작 그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했기에 뒤통수를 맞았다.

'이 부처는 대체 뭘까.  도대체 왜 이렇게 대책 없이 일만 벌이는 거지?'

본부의 용감한 사명감(?)은  퇴사를  향한 나의 마음에  점점 불을 지펴갔다.


지인들에게 공무원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니, 오히려 배부른 투정을 한 꼴이었다.

다들 코로나로 인해 무급휴직으로 쉬고 있거나, 감축으로 인해 그만두려는 상황인데

안정적이고 평생 철밥통인 이 직업을 그만둔다고 하니 그들 눈에는 내가 철딱서니 없고 나약한 인간으로 느껴진 듯 보였다.  그래, 이 직업이란 게 힘들어도 쉽게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직업이구나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 그만두자."  또다시 거지꼴이 되든, 백수가 되든.



남편도 맨날 그만둔다는 내 말이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로 알고 있기에 요동치 않았지만

이번에는 내 말이 진심으로 느껴진 듯, 진지하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팀장님께 다시 말씀을 드렸다. 그만두겠다고.

그러나 내가 그만두고 뭘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기에

팀장님은 눈 하나 끔뻑하지 않으셨다. 뭘 할지 계획을 다 정하고 그만둬도 되니까,

그때까진 그냥 있으라고 하셨다.

팀장님께 오히려 폐가 될 거 같다고 하니, 다 감당해 주시겠다고,

남 눈치는 보지 말고 자신만 생각하라고 하셨다.


이런 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그만두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이고 워낙 힘들어 보이니,

급기야 극단의 처방책을 쓰셨다. 바로 내 사건을 줄여주시는 것.

사건이 10개가 줄어들었다. 졸지에.


한편으론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자존심이 상했다.

사건을 다른 분에게 전달하라는 서무분의 눈빛마저  왠지 내가 일 하기 싫어서 저런 식으로 일을 떠넘긴다는

 눈초리처럼 느껴져 자격지심마저 들었다.


여자 직원은 일 힘들면 울고 떼쓰면 안 하게 해 준다는 누군가들의 말들이 정말 듣기 싫었는데,

갑자기 내가 그런 상황의 주동자인 거 같아 마음마저 편치 않았다.


사건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과장님도 지원을 해주셨지만,

내 마음은 성에 차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런 마음으로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단 생각이 들며

다음날 팀장님께 다시 그만둔다고 말하려던 찰나에,


갑자기 몸이 이상해짐을 느꼈다.















작가의 이전글 갑작스레 브런치 조회수가 10,000이 되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