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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와이 Oct 16. 2021

D+23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

취리히 공항 근처의 작은 비즈니스호텔.

네 가족이 얌전히 조식을 먹고 있었다.

평화로운 풍요로운 아침식사 시간.

독일식 식사빵인 Brot이 회전식 토스터기에 걸려 불타기 전 까진 말이다.


엄마!


빵을 굽던 작은 아이가 혼비백산 소리를 질렀다. 토스터기는 납작하게 자른 빵에 적합한 높이였는지, 통통한 높이의 빵이 철망 사이에 걸려 가열되는 통에 작은 불이 난 것이다!


나 역시 이걸 어떻게 수습해줘야 하나 사색이 된 마당에, 긴 집게를 가지고 달려온 직원이 능숙하게 탄 빵을 집어 꺼냈다. 탄 빵의 구수한(?) 냄새가 레스토랑에 진동한다. 연거푸 Entschuldigung!(죄송합니다)를 말하며 어쩔 줄 모르는 날 향해, 그녀가 던진 쿨한 한마디.


괜찮습니다. 크루아상 넣지 말라, 가 아니라 식빵 외엔 넣지 말라고 문구를 바꿔야 할 것 같네요.


무슨 말인가 싶어 옆을 봤더니, 이 토스터기엔 크루아상을 넣지 마시오. 라 안내문이 적혀 있다. 비단 이번 화재가 처음이 아니었나 보구나. 호텔 태울까 싶어 새가슴이 된 나와 대비되는 그녀의 담담함이 웃기기도 하고 안심이 된다.


이렇게 불로 시작한 하루였지만, 우리 앞에 있는

것은 ‘엄청난 물’이었다.


취리히에서 이동할 다음 행선지는 프랑크푸르트. 여정에 꼭 넣고 싶었던 퓌센, 보덴제, 슈바르츠발트 등을 모두 포기하고 달려갈 프랑크푸르트에는 보고 싶은 지인들이 살고 있다. 만으로 3주가 넘는 기간 객지 생활을 하다 보니, ‘집다운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하다. 그러다 보니 취리히 관광은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원치 않고, 한 시간이라도 빨리 달려가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달콤한 휴식을 꿈꾸며 달려가던 우리는, 심각한 위기 상황을 깨닫게 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다음 행선지인 네덜란드-벨기에로 가는 경로를 탐색해 보는데, 유럽의 한파와 함께 몰려온 폭우로 인해, 유래 없는 대 홍수가 베네룩스의 동부, 독일 서부 지역을 강타한 것이다...!


지중해에서 유입된 저기압이 독일 등지에 폭우를 쏟으면서 독일과 벨기에에서 적어도 70명이 사망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번 홍수 피해는 프랑스에서 기원해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거쳐 바다로 들어가는 뫼즈강 주변으로 번지고 있으며, 16일에도 비가 계속될 것으로 예보된 상태여서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원문보기:

https://m.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03805.html#csidx810e63efd167ef89fcec7240953dba3 )


륌뷔르흐 홍수, 라인랄트팔츠 홍수, 룩셈부르크 홍수 등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라인강과 그에서 뻗어나간 지류들이 범람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자연재해를 어떻게 뚫고 여행하게 될 것인가. 과연 앞으로의 여행이 가능한 것일까...?!!



부우 우 우웅...!!


어느덧 완연히 독일의 고속도로로 들어왔음을 추월차선을 따라 질주하는 독일 브랜드 차로 알게 된다.


아우토반(Autobahn)

문자 그대로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의’ 길. 독일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이 표지판이 나오면 긴장해야 한다. 속도 무제한 구간의 시작!

추월 차선을 막거나, 추월 차선에서 머뭇거렸다간, 냉정할 것만 같았던 독일 사람들의 화끈한 진면목을 보게 된다. 톨게이트와 톨비가 없는 오직 달리기 위한 도로라는 매력이, 오늘날 아우토반의 명성을 키웠다. 그래서 새로운 차종이 나왔을 때의 광고나, 기존 차의 주행 능력을 시험할 장소로 자주 보이곤 한다.


실제로는 ‘모든’ 제한의 해제인 경우가 아닐 수도 있으니, 표지판을 유심히 보고 운전해야 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 비해 ‘낮은 수준의 제한’ 임은 분명하다. 이렇게 각종 통제가 풀려있음에도 불구하고 타 도로에 비해 고속도로 사고율이 낮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그러고 보면 제한이 능사는 아니구나 싶기도 하다.


남편 : 그거 기억나?

나 : 뭐?

남 : 옛날 엘란트라 광고. 포르셰랑 경주하는 거.

나 : 아!


30년 전의 광고를 남편과 함께 기억해본다.


뮌헨 근처의 아우토반을 현대 엘란트라가 질주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자극받은 ‘무려’ 포르셰가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한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차량. 포르셰에 뒤지지 않는 주행 능력을 보이는 엘란트라에 선글라스를 낀 포르셰 운전자가 엄지를 척 들어주는, 그 시절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광고다.


https://youtu.be/7QTpWfrpyL8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추억의 최불암 시리즈에선 결말이 이렇다. 폭풍처럼 엘란트라를 몰던 최불암 씨에게 포르셰 운전자가 엄지를 들어준 건,


“ㅋㅋ난 1단이야. “


였다고. 씁쓸~


최불암 아저씨를 소환할 것도 없이, 우리 곁으로 빛나는 멋진 자동차들이 성능을 뽐내며 달려간다. 백미러를 통해 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짐을 싣고 달리는 무거운 우리 차로서는 차마 따라 하기 힘든 속도이지만, 따뜻한 환대와 한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맘은 속도 무제한으로 달려가고 있다.


우리한텐 이 정도가 최고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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