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피셜 입니다.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곳, 집.
당신의 '집' '집안' 때론 '집구석'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에 대해 논하기 위해, 익명의 A 씨를 소환해보자.
A 씨는 집에 돌아와 손을 씻고 부엌에서 물을 한잔 마신 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소파에 앉아 별 일 없이 TV를 틀었다.
이 지극히 평범한 일련의 행동이 '사실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 손세정제와 깨끗한 수건을 제 때 채워 놓는 누군가가 있고,
- 언제든 쓸 수 있도록 잘 말려진 깨끗한 컵이 있고,
- 마실 수 있는 물이 갖추어져 있으며,
- 섬유유연제 향이 폴폴 나는 실내복이 얌전히 개어져 있고,
- 거실 바닥과 소파에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지 않고 잘 정리되어 있다는 것,
등... 이 보이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깨달아진다.
우리가 의식하고 명령 내리지 않아도, 우리 뇌의 어느 부분은 스스로의 기능에 따라 숨 쉬고 눈을 깜박이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이처럼 '삶'의 여러 부지불식의 순간의 배경엔 ‘살림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이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 움직임을 유연하고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이 ‘적절한 가사분담’ 아닐까.
싱글로서 독주하던 일상이 결혼으로 인해 합주로 변하고, 출산과 육아, 그리고 자녀 교육이 덧붙여져 오케스트라와 같이 다양한 변주를 하게 되면서 예측불허의 불협화음이 나기도 하는 가정생활. 여느 평범한 부부들이 다 그렇듯 나 역시 남편과 '가사분담'이라는 이름의 전쟁에서 십수 년째 교전과 휴전을 반복하고 있다.
이 전쟁은 보통 ‘생색’으로 시작되어
나 정도면 많이 하지 않아?/나는 이렇게 하는데 너는 고맙지도 않나
‘변명’으로 갈등이 고조되고
내가 이러고 싶어서 그런 줄 아냐
‘남 탓’으로 절정에 치달다가
너는 뭘 잘했냐/너 때문이다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어 초가삼간을 다 태워버릴 기세로 타오른다.
옛날에~,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너네 집은~
201X 년 어느 날, 분노에 찬 콧김을 애써 가라앉히며 컴퓨터를 켜던 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 엑셀을 켠 후 터진 둑에서 물 흘러나오듯 맹렬히 적어 내려간 것은 다름 아닌 ‘가사 분담 리스트’. 청소-식사 준비-빨래-아이들 케어 같은 대분류를 소분류 별로 쪼개 적어 내려가다 보니 족히 100줄이 넘는 리스트가 순식간에 작성되었다.
아마도 그날 나를 분노케 한 것은 남편의 이런 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음식이야 그냥 대~강 하면 되는 거지,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래?
하지만 '식사 준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냉장고와 식품창고에 어떤 재고가 있고 어떤 것부터 소진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그에 따라 메뉴를 선정해야 하고,
-적절한 시점에 장을 봐야 하며,
-장 봐온 것들을 밑손질해서 보관해야 하고,
-음식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차려내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식탁에 앉아 밥 숟가락을 뜰 수 있는 것인데, 뭐가 힘드냐며 대강 하라는 말에 화가 치밀었다.
우리 집의 가사분담은 크게 식생활과 세탁에 관련된 것은 내가 주로 담당하고, 분리수거나 쓰레기 정리는 남편이, 주말에 함께 하는 대청소는 물건 정리는 내가, 청소기 돌리고 바닥 닦는 것은 남편이 하는 식으로 잠정적으로 정해져 있다. 대체적으로 하나의 활동을 하는데 드는 에너지 자체는 남편이 크지만, 자잘하게 손길과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것은 내 담당인 식.
하지만 여기에 ‘육아’(아이들이 조금 크고 나면 ‘교육’까지도)라는 쉬지도, 미룰 수도 없는 업무가 추가되고 나면, 서로의 육체적/정신적 에너지는 빠르게 고갈되어간다. 여유가 없어질수록 상대방에 대해 박하고 모진 말이 튀어나오는 것. 남편도 역시 진짜 날 타박하기 위해 그렇게 퉁명스레 내뱉진 않았을 테지만, 서로의 마음속엔 '내가 너보다 더 많이 힘들어'라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보니 상대방이 행여나 내 ‘공’을 폄하하거나 가로채려고 하는 것 같으면 쉬이 화가 나게 된다.
이럴 때 만약 눈으로 보이는 수치로
서로의 가사분담을 논의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에 대해 처음 가사 리스트를 만들던 어느 날부터 막연히 해왔던 어중 떠중이 생각들을 풀어본다.
종류
위의 ‘식사 준비’의 예시처럼 가사 리스트를 활동별로 세분화하여 적어보자. 가령, ‘빨래’라 하더라도 흰 옷/색깔 옷/수건/따로 빨아야 하는 옷들을 분리하는 과정-세탁-널기-걷기-개기-다림질 하기-세탁소 맡기기 등등으로 나눌 수 있다. 각자 집안 사정에 맞춰서 무슨 활동을 해야 빠지는 부분 없이 집안일이 운영되는지 들여다보자.
빈도
밥은 (보통) 매일 먹는 거지만 청소는 매일 하지 않는다. 자녀 숙제 봐주기는 매일 하는 것도 있고 없을 때도 있지만, 있는 경우 미룰 수는 없다. 한 번 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 해도, 그 빈도가 적다면(i.e. 화장실 청소) 가사분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각 활동에 대해 일주일 단위로 보았을 때 0~7까지의 빈도를 적용해보자. 예를 들면, 매일 하는 활동은 7, 2주일에 한번 하는 활동이라면 0.5를 적용한다.
강도
가사 분담의 강도는 가정의 상황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다. 분리수거라 해도, 분리수거장이 멀리 위치해 있다면 좀 더 가중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각 활동을 리뷰하며 각각 1~5의 강도를 부여해보자.
선호도
각 가사 활동의 <종류-빈도-강도>가 정해지고 본격적으로 분담을 하면서는 서로의 선호도가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선호도란 한 마디로 말해 “이건 그냥 내가 하는 게 나아.”, 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난 설거지(식기세척기 투입)와 뒷정리를 내가 하는 것을 선호한다. 설거지 전 건조대에 쌓인 그릇들을 옳은 자리에 정리하고, 후엔 싱크대에 물 튄 것 닦아내야 하는데, 남편은 사방팔방 물 바다인 채로 설거지를 끝내기에 결국엔 내 손이 한번 더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남편은 분리수거 치우는 것을 본인이 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내게 맡겨지면 재활용품이 산처럼 쌓여갈 때까지 하나도 안 치울 것이기 때문이라나.
배척도
이는 선호도와는 반대로 ‘일’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를 자기 준 아이가 반드시 ‘엄마’가 옆에 누워 있어 주길 바라는 상황 같은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해당 집안일은 가사 분담의 논의 외의 사항이 되고 배우자가 배척도를 가진 활동을 하고 있으면 다른 배우자는 그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그 시간에 혼자 감자칩을 곁들여 맥주를 마시며 티브이 보는 것은 /반/칙/입니다!)
사실 이 내피셜을 구현해내기 위한 엑셀 작업은 그 후로 수년간 미뤄져 왔다. 부부가 차분히 앉아 최적화된 가사분담을 논의하기도 전에, 일단 닥친 일을 처리하며 ‘오대수’처럼 정신없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오/ 오늘도
대/ 대강
수/ 수습
구체화된 수치를 내밀며 서로 한치의 양보 없는 한판 대결을 벌이는 것보다, 눈싸움하듯 눈 깜빡인 사람이 좀 져주는 것이 훨씬 지혜로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화장실이 너무너무 더럽다면, ‘잔소리하지 말고’ 더 이상 못 참는 사람이 치우면 된다.
- 설거지가 쌓여 그릇이 쏟아지기 직전이라면, ‘잔소리하지 말고’ 라면 끓여서 먹을 냄비와 젓가락이 당장 필요한 사람이 먼저 손을 대면된다.
- 걷어진 빨래가 며칠 째 개어질 생각을 안 하고 소파 위에 있어서 매일 양말과 속옷을 ‘발굴’ 하기 위해 그 더미를 뒤져야 한다면, ‘잔소리하지 말고’ 그게 귀찮고 아쉬운 사람이 개기를 시작하자.
싸움은 나도 안하는 일을 상대방에게 요구할 때 생긴다. 내가 안하면, 상대방도 안할 수 있고-내가 하면, 상대방도 함께 하자 당연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단 가사 전쟁 눈싸움에서 이긴 사람이라고 진 사람 혼자 하게 두지 말고, 그저 한 발 나아가 옆에 서거나 앉아 같이 한다면, 가정의 평화는 의외로 쉽게 유지된다. 그리고 다음번엔 나도 한 번 눈 먼저 깜빡여주며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 보면 일 년이, 십 년이 금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 어딘가에 불만이 계속 쌓인다 싶을 때(눈 깜빡이는 사람이 지는 방법은 아내가 질 확률이 높은 게임이기에..) 배우자와 함께 정밀화된 ‘가사분담 리스트’를 논의해보자.
과연 그 결과가 어떨는지 사뭇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