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차 박사생의 자신감에 대한 근거 없는 고찰.
박사생이 되고 나면 대부분 그렇듯 불분명한 미래에 대해 곱씹으며 쭈글이 인간이 된다. 무엇하나 뾰족하게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는 넘쳐난다 한들 그것을 실재하는 결과물로 이끌어내기란 더더욱 어렵다. 즉, 박사는 뭘 해도 미숙하고 부족한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린다 (실제로는 안 그래도 그런 것처럼 느낀다).
왜 이렇게 내가 쭈글이가 되었는지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봤다.
우선 첫째는, 당연하게도 내가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런 말도 있지 않나. 박사학위를 딴다는 것은 공룡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공룡의 발톱 하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 그 공룡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모자란 것은 아닐까 하는 자괴감 때문에 늘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언어다. 영어로 공부하다 보니 논문에 대해 교수님들과 당연히 영어로 소통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모국어로도 전하기 힘든 연구에 대한 의도나 질문을 완벽하게 전달할 수 없다는 무력함 같은 것이 자리 잡는다. 온갖 수를 써가며 그 의미를 전달하는 데 성공할 때도 있지만, 실패할 때나 아예 설득시키는 것을 포기할 때가 더 많다.
세 번째는 내가 처한 상황 때문일 것이다. 내 나이 서른넷(영국 나이로 계산하기로 오늘부터 정했다)이면 한창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가 가진 능력을 사회에 공유하고 그 성과에 따라 경제활동을 해야 마땅한데, 난 지금 그러한 생산성이 없다는 사실이 하루하루를 우울하게 만든다. 이는 첫 번째 이유와도 상충하는 부분인데,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스스스로의 인식은 잘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현재 쭈글이가 된 세 가지의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면, 1) 능력에 대한 의구심 2) 어리숙한 소통 그리고 3)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의한 불안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떻게 지난 3년간 박사 생활을 견딜 수 있었는가를 다시 생각해보면, 내 마음속 어딘가 자리 잡고 있는 근거 없는 자신감, 근자감 덕분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이디어가 막힐때도, 논문이 안써질 때도, 중요한 인터뷰를 해야 하기 전에도 문득 내 앞에 닥친 것들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어떤 불안과 긴장감이 커질대로 커지면 마음속에서 "ㅅㅂ 어떻게든 될거야" 라는 방어기제 같은게 생긴다. 어떤 문제가 닥치던간에 어떤식으로든 해결 될 것이다라고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근거가 없는 자신감이라는 것은 늘 불분명한 확신을 수반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는 그것이 자신감을 무너뜨린다기보다는 오히려 무언가를 실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처음에 유학을 결심했을 때도 그랬다. 주변에서 만약 '영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이런 것이다'라는 뉘앙스로 나에게 조언을 해줬다면 아마 나는 섣불리 유학을 결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막상 시작한 석사 생활은 또 어떠했는가. 영국 석사가 그렇게 어마 무시한 과제와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공부할 엄두도 못 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 자신감이 높은 상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지르고 보자'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차 있을 때를 의미한다. 유학도 내가 운동선수라는 정체감 때문에 할 수 있었다고 본다. "내가 운동할 때 견뎠던 고통을 생각하면, 공부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막연한 자신감이었다고 해야 할까. 결국 박사를 처음 시작할 때도 연구를 스스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석사를 견뎠다는 자신감 하나로 할 수 있었다. 박사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 내가 사전에 속속들이 알려고 했다면, 아마 시작도 안 했을 거다.
우여곡절 끝에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지원할 때 후회되었던 것을 말하자면, 나의 석사 졸업 성적이 (간신히 졸업했다..) 박사에 지원할 만한 성적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말하는 부정적인 정보들. 즉 "최소한 박사에 지원하려면 성적이 특정 기준 이상은 되어야만 한다"와 같은 부정적 정보에 매몰되어서, 더 많은 학교에 지원하지 않고 스스로가 정한 기준에 있는 학교들과 지도교수들에게만 컨택을 했던 것이다. 처음 유학을 결심했던 그때와 같은 근자감이 없었던 것이다.
박사생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오래된 메시지가 하나 있다. 바로 "Fake it til make it!" (제대로 만들 때까지 속여라!)라는 말인데 이 명제는 시험을 볼 때도, 논문을 쓸 때도, 영어를 배울 때도 적용된다. 쥐뿔 없어도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하며 결국에는 그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뭔가가 있다고 스스로 믿는 순간 그때부터 방향을 잡고, 기한을 만들고 실행한다.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사기꾼이 된다는 위험부담을 안더라도 말이다.
즉 스스로 특정분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신호들을 인지하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목표치를 낮춘다. 반면 정보가 좀 빈약하더라도 최소한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정도의 정보만 있다면,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높은 목표를 지향할 수 있게 된다. 서른 넘어 유학을 고려한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부정적 신호를 무시한 목표 설정이 아니었겠나.
하지만 석사를 졸업한 직후, 머리통에 유학의 현실과 냉철한 자기 판단 같은 것이 추가되고 좀 더 현실적인 고려 (돈, 시간, 가족)를 해야 한다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었다. 일련의 현실적인 고려들은 곧 내가 더 뻗어나갈 가능성을 줄였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박사를 시작하고 난 뒤에는 내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후회 같은 것이 밀려왔다. 다시 말하면, 더 좋은 학교에 갔더라면, 더 대단하고 저명한 지도교수를 만났더라면 같은 후회 말이다. 하지만 다시 시간을 돌린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 그런 선택을 할 당시만 해도, 나 스스로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동시다발적으로 고려하면서 선택한 경험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도 나는 그런 선택을 해야만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다시금 근자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것을 안다는 것은 실천하는 것을 방해할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더 좋은 환경에 있을지도 몰랐겠지만 그것 또한 어디까지나 스스로 만들어낸 유토피아적 환상일 뿐이다. 지금이 언제나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상황이고, 내가 실제로 가진 자원의 유무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냥 Fxxk you 마인드셋 (ㅈㄲ 마인드)이 필요할 뿐이다. 개코의 노래 제목처럼 <될 대로 되라고 해> 같은 마음가짐이면 뭔들 못하랴.
I Don't Give a Sh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