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차 논문 리뷰를 끝내며.
거의 20년 전, 하버드 대학 캠퍼스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기분이 생경하다. "아 살면서 이런 곳에서 공부해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운동하는 고등학생이었던 당시 나는 공부와 담을 쌓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캠퍼스가 주는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매료되었던 것일까. 그렇게 20년 전 나의 기억은 선수 은퇴 후 해외유학의 길로 이끌었다.
그렇게 영국에 오게 되었고, 학창 시절 운동에 매진하느라 느낄 수 없었던 온전한 학생으로 삶을 경험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근대 대학의 효시인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의 설립자 알렉산더 훔볼트는 이렇게 말했다.
"대학은 인류가 이루어야 할 가장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선취하는 소우주다"
교수와 학생으로 이루어진 학문 공동체인 대학이라는 곳은 인간이 냉철한 사회로 나가기 전에 최대한 자유롭게 마음껏 사유하고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바운더리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대학은 이미 그 의미와 가치를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의 모든 대학을 아는 것은 아니라 이러한 의견이 다소 급진적인 표현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해외의 대학 또한 한국의 여느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졸업 후 사회에 조금 더 좋은 상품으로 나오기 위해 담금질하는 비교적 안전한 훈련소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주변 교수님들이나 동료들은 내가 논문을 쓰며 기여하고자 하는 지식보다는, 졸업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들을 한다. 학부생과 달리 박사생의 위치는 졸업의 여부가 사회의 직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나에게 있어 졸업이라는 것이 공부하는 데 있어 상당히 큰 명제이긴 하지만, 결국 나의 생각의 방향과 가치관이 졸업을 하는데 유익한 것인가, 방해가 되는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가끔 무력해지기도 한다. 현실적으로도 나조차 어떤 논문을 쓰는가 보다는 어떻게 졸업할 수 있을지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으니 말 다한 거 아닌가.
특히 영국의 수많은 대학들은 해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대한 비즈니스로서 존재하며, 우리와 같은 수많은 아시아 인들, 특히 중국 학생들이 없으면 학교의 재정적인 측면에서 커다란 타격을 입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유학생들이 지불하는 막대한 학비는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대학교육의 가치가 변질되었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 대학 안에서 개인적으로 획득하고자 하는 의미를 상실할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떨어진 대학의 가치로 인해 내가 그곳에서 배울 것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이 세상을 바꿀 대단한 논문을 써낼 인재가 아닌 이상, 대학이라는 곳은 여전히 나에게 훌륭한 배움터다. 나의 생각을 펼치고 정제하여 끝내 논문이라는 형태로 기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도전이며 큰 의미가 있다.
바로 지난주, 그렇게 2년 차 논문 연차 리뷰를 마쳤다. 앞으로 논문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계획하는 단계인 1년 차 리뷰와는 달리, 나의 논문의 어디까지 진전되었는지 사실상 까발려지는 자리이기 때문에 더욱 긴장되었다. 그렇게 2시간가량 진행된 리뷰와 리뷰어 교수님들의 질문세례는 여전히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논문의 질 측면뿐이 아니라, 내가 영어로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는 자괴감이 동시에 들게 만들었다.
유학 초, 어렵게 결심한 공부를 시작할 때 다짐했던 야심 찬 유학생의 다짐의 반의 반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내가 나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이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제가 주어지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하다. 무엇보다 지난 4년간 깨닫은 것이 있다면 내가 닮고자 하는 모습이 되려면, 수많은 좌절과 포기들을 거쳐야 하는 것을 알았다.
이제 3년차 박사과정생이 되었다. 지금은 단지 산꼭대기를 바라볼 때가 아닌 것이다. 때로는 멈추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앞에 놓여있는 작은 목표들만 우선 달성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