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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안 Jul 16. 2019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가라앉아 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별거 아닌 위로

  2년 동안 백수로 지내며 눈칫밥 먹는 베르트랑, 모난 성격 탓에 가족들과 불화를 겪는 로랑, 파산 직전의 수영장 사장 마퀴스, 꿈만 크고 아무도 알아봐 주지 못하는 재능 없는 로커 시몽, 조금 어리바리하고 하는 말마다 갑분싸를 만들어 버리는 티에리 등 모두 8명의 아저씨들이 수중발레를 하기 위해서 수영장으로 향한다. 배가 튀어나오고 몸은 뻣뻣하며 둔하기까지 한 이들은 수중 발레라는 단어와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수중발레에 임하는 중이. 연습하는 모습만 봐도 웃음을 자아내는 그들의 수중발레는 보는 입장에서는 유머지만 그들에게는 나름 진지한 문제이다. 저마다의 어려운 사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수중발레를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실 수중발레 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시급한 이들의 수중발레는 철없는 행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끝자락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수중발레가 철없다고 말하기에는 마음 한편을 따듯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어느새 그들을 응원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2년째 백수 생활 중인 베르트랑은 딸아이와 수영장에 놀러 간다. 그는 수영하는 도중에 수중 속으로 잠수하게 되고 물아래서 다른 사람들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다른 이들은 열심히 발길질하며 떠오르는 데 자신은 무력하게 가라앉아 가는 모습은 베르트랑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무력감을 목격해서일까? 그는 수영장 게시판에 붙어있는 남자 수중발레 수업 신청서를 보고 즉시 신청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은 자신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들 역시 베르트랑처럼 저마다의 어려운 사정 속에서 서서히 가라앉아 가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예민한 성격 때문에 가족들은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로랑의 말처럼 이 수중발레 수업에 있는 사람들 중에 어떤 이도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하지만 독특한 점이 있다면 이 각자의 고민들을 영화는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기 없는 로커 시몽에게 기적 같은 성공을 주지도 않고, 가족과 다툼이 있는 로랑에게 극적인 화해를 선물하지 않는다. 영화는 기적 대신 이들에게 세계 남자 수중발레 경기 우승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준다. 저마다 수중발레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베르트랑처럼 자신의 무력감에 대한 저항력으로 왔다면 이들에게 경기에서의 우승은 그들이 현재로써 꿈꿀 수 있는 최상의 목표인 셈이다. 그래서 영화는 그들에게 공동의 목표점을 지정하여 각자의 무력감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프랑스 남성 수중발레팀이라는 이름의 그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집단 상담 치료 현장 같은 인상을 준다. 저마다의 고민을 지닌 내담자들로 구성된 이 집단은 스스로를 프랑스를 대표하는 수중발레팀이라 칭한다. 하지만 현실은 일상에서 자꾸만 튕겨져 나가 우울한 사람들이다. 동그라미가 되지 못한 네모, 네모가 되지 못한 동그라미처럼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운 이들은 사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생겨나는 '무력감'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2년 간 백수로 지낼 수도 있지만 자신을 비웃는 처남에게 아무 말 못 하는 무력감, 자신의 가족과 화해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무력감, 잦은 사업 실패로 습관처럼 굳어져버린 무력감, 자신의 딸에게 부끄러운 아버지로 기억되는 무력감. 그들은 네모 혹 동그란 틀에 들어가지 못해서가 아닌 들어가지 못하는 자신의 태생적인 모양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물 위에서 움직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지만 몰려오는 무력감으로부터 마비되어 가라앉아 간다. 그래서 이들에게 물 위에서 아름다운 춤을 표현하는 수중발레는 자신의 무력감과 맞서는 일이며,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후반, 이들은 남자 수중발레 세계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그곳에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공연은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로 깔끔하고 완벽하다. 자유로이 물 위에 동그라미에서 네모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한 치의 실수가 보이지 않는다. 경기 직전까지 불안에 떨던 이들은 사라지고 물속, 물 위에서 그들은 누구보다 당당하게 해야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자신의 무력감과 싸우던 이들은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갈고닦은 움직임과 각선미를 뽐낸다. <미스 리틀 선샤인>과 같은 속 시원한 결말을 기대한 내게는 조금 아쉬운 결말이지만 로커 시몽의 조명과 에어 기타 장면으로 영화는 따듯한 위로를 건넨다.


 이 영화의 시작에서 영화가 선언했던 '이 영화는 별거 아닌 영화입니다.'라는 말은 이들의 고민을 너무 어렵고 심오하게 바라봐주지 말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피나는 노력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그들의 표정에 담긴 진지한 무력감을 해소하는 과정이다. 우린 너무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럴수록 자신에게 몰려오는 무력감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영화는 편안하고 유쾌하게 대한다. 모든 가라앉아 가는 이들에게 전하는 별거 아닌 위로와 같은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만드는 유쾌한 유머를 아는 편안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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