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의 1952년도 작품, <이키루>는 죽음을 앞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 남자의 이름은 와타나베로 도시의 시청에서 과장으로 근무를 하는 공무원이다. 그는 어느 날 위가 아파 찾은 병원에서 자신이 위암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실감하게되고, 지난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사실상 암 선고를 받게 된 와타나베
<이키루>는 암 선고를 받은 이후의 와타나베를 따라간다. 죽음 앞에 모든 것이 무너져내려가는 와타나베의 표정은 그야말로 산송장의 표정이다. 그의 힘없고 낮은 목소리는 죽음을 앞둔 와타나베의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평생 별다른 의미 없이 도장 찍는 기계처럼 살아온 와타나베는 죽음 앞에서 드디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하지만 자신이 바라본 자신의 삶은이미네레이션에서 말한 듯이 이미 죽어있던 것과 다름없다.삶에 대한 회한과 절망감을 품은 와타나베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만난다.검은 옷의 남자는 와타나베의 사정을 듣고 악마를 자처하며 와타나베를 쾌락의 세계로 데려간다.
와타나베에게 악마가 찾아온다. 마치 <파우스트>를 연상시킨다.
<이키루>는 죽음을 앞둔 남자의 마지막 행로를 따라간다. 자신의 삶이 죽음 앞에 처절하게 탐구되어 가며 지난 삶의 허무함과 마주하게 된 와타나베는 검은 남자를 따라가 쾌락으로 삶을 채워보려 한다. 20년대 노래 '삶은 찰나의 것'을 따라 부르며 와타나베는 자신의 삶을 채워가려는 의지를 갖는다.
'삶은 찰나의 것, 그러니 소녀여 사랑을 해라'
그의 노랫소리가 처연하고도 아름답게 흘러나온다.
와타나베는 검은 옷의 남자를 따라 유흥가로 간다. 둘은 돈을 주고 데려온 여자와 사람들 틈 속에서 큰 음악소리에 맞추어 춤을 춘다. 하지만 와타나베의 표정은 어둡기 여전하다. 돈을 세던 여자들과 이동하는 차에서 그는 갑자기 멀미를 느끼며 차에서 내린다. 검은 옷의 남자가 함께 내려 와타나베를 바라보지만 와타나베의 눈을 보더니 와타나베를 버리고 차로 도망간다. 그때의 와타나베의 눈은 공허함 그 자체다. 죽음 앞에 모든 것이 퇴색되어가는 눈. 검은 옷의 남자(악마)도 그의 눈 앞에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쾌락은 빈 속에 술처럼 속만 울렁거리게 할 뿐 결코 아무것도 채워주지 못했다.
와타나베와 같이 시청에서 일하던 여직원을 우연히 만난다. 시청 같은 딱딱한 일터가 맞지 않았던 그녀는 자유로움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의 풍성해 보이는 삶을 본 와타나베는 계속 그녀에게 다가간다. 이성적인 사랑이 아닌 풍성한 삶에 대한 동경으로 말이다. 하루하루를 열정적이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그녀를 보며 와타나베는 간접적으로 행복해한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녀의 것이고, 와타나베의 삶은 와타나베의 것이다. 그녀의 삶이 와타나베의 것이 아니기에 필연적으로 와타나베는 다시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온다.
아직 늦지 않았어!
그녀에게서 힌트를 얻은 와타나베는 다시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온다. 그가 있던 곳은 관료제라는 체계다. 문제를 회피하기만 하고 해결 의지는 없는 그야말로 무능력한 체계에서 와타나베는 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청 직원들은 마치 관료제라는 큰 기계의 부품, 아무런 의미 없이 헛바퀴만 돌려대는 부품이다. 사실상 삶의 의미라는 측면에서 그들 모두는 이미 죽은 자들과 다름없다. 하지만 그중에서 자신의 죽음과 마주한 와타나베만이 살아 움직인다. 모든 죽어있는 사람들 중에서 홀로 죽어있음을 깨달은 와타나베만이 살아있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는 죽음을 이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움직인다.
'파이프 하자에 대한 민원' 영화 초반에 많은 주민들이 시청에 찾아와 외쳐왔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던 일. 와타나베는 자신이 무얼 할 수 있는지 알았기에 주민들의 요구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와타나베의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던 눈이 조금 바뀌었다.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그의 눈에 목표물이 생긴 것이다. 모든 걸 삼켜버릴 것만 같던 그의 눈이 목표물을 겨냥하자 주변 이들도 그의 눈을 보고 따라가게 된다. 정확한 삶의 목표가 있는 사람의 눈은 다른 무엇보다도 신뢰로 가득하다.그는 결국 그토록 바라던 작은 공원을 만들게 된다.그리고 그는 숨을 거둔다.(그의 장례식 장면은 추후에 다시 자세하게 적어볼 예정입니다.)
삶은 찰나의 것, 소녀여 사랑을 해라.
그가 만든 공원의 그네에서 그의 노래가 가득 채워진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삶이라는 공원에 그의 노랫소리가 담긴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웃으며 뛰어다닌다. 영화는 죽음을 마주해야 겨우 삶을 깨닫는 것이 인간이지만 겨우 삶을 깨달은 자의 노랫소리는 정말로 아름답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그의 작품 세계에서 끊임없이 말해온 가여운 인간이 가지는 작은 희망이 이곳에도 피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