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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안 May 23. 2024

미워하지 않기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말일까. 죄를 저지르는 건 사람인데, 어째서 죄만 미워하고 사람은 제외되나. 애초에 그런 게 필요한 걸까. 당장 텔레비전만 틀어봐도 분노가 치미는 사람들과 끔찍한 죄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대체 어떻게 죄인을 미워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래서 나는 혼자서 이 말을 되뇌고, 되뇌며 생각했다.


 얼마 전에 혼자 끄적인 글이 하나 있다.

 ‘나의 기억나지 않는 기억 중 하나쯤은 누군가의 한숨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 나는 평생 모를 너의 한숨에 대해 고민하다가 지쳐버리겠지.’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쓴 글이었지만, 내 마음에 놓인 생각의 덩어리 중 가장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덩어리라 생각했다. 아마 나는 누군가에게 죄인이지 않을까. 내가 무심하게 넘긴 인연 중에는 나의 무심함이 그 사람을 얼어붙게 했을지도 모르고, 내가 툭 내뱉은 말이 어떤 이의 평생을 흔들어놓았을 수도 있다. 온전하지 못한 나의 판단이 타인을 해쳤을 수도 있다. 결국 내가 보내온 과거의 일부는 나의 과오로 가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잘못을 생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이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내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났다. 정확히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으나, 떠나보낸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중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별이 있었는데, 이별 직후 혼자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었는지 복기하기도 했었다. 그럴싸한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아이에게 직접 물어볼 수가 없었으므로 아마 평생 모를 일이 되었다. 그 아이에게 나는 죄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기억할 수도 확언할 수도 없는 잘못을 생각하는 일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하나의 가정 정도는 세울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결국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 모두 잘난 것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라는 말은 사실 ‘모든 사람을 미워할 수 없으니 죄만 미워해야 한다.’을 말하는 게 아닐까. 굳이 종교적 사상을 들어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린 언젠가 한 번 이상은 죄인이었고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망각했을 것이니 죄에 따라 사람을 미워하는 건 결국 모든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지 않을까.

 나는 모든 이들을 미워할 자신이 없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것도 이젠 지쳤고, 남탓하는 것도 지쳤다. 그리고 평생 모를 나의 죄를 생각하다가는 허송세월 다 보내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미워하는 걸 포기하자. 죄만 미워하고, 사람은 그만 미워하자. 미워하는 게 너무 힘이 드는데, 나와 다를 바 없는 저들을 미워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냥 딱 죄까지만. 거기까지만 미워하고, 포기하자. 그리고 가장 내가 바라는 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우원재의 ‘그래요’ 노래 가사처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덜 미워하고 덜 미움받았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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