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네대와 건조기 네대가
쉴 새 없이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누군가의 삶이 돌아간다
알록달록 보이는 옷가지들이 마구 섞이며 돌아간다
사춘기 소년 소녀의 하얀 교복 셔츠가
새벽녘 한기에 목까지 끌어올렸을 얇은 차렵이불이
고된 하루를 보낸 작업복이
해 질 녘 천변을 달리며 입었을 운동복이
모두의 얼굴을 닦아주는 수건들이
생을 이고 걷는 발을 감싸주는 까만 양말들이
여기저기 부딪히며 위로 갔다가 아래로 갔다가 한다
살아내는 동안 흘리는 땀과 눈물이 몇 리터나 될지는 모르지만
어제 흘린 눈물과 어제 흘린 땀이 세탁기의 둔탁한 소리를 통해 사라진다
고운 향기를 내며 사라진다
살아있는 것들에겐 빨래가 필요하다
요즘 이런저런 일들로 빨래방에 갈 일이 많았습니다. 여러 빨래방을 다니다 보니 동전을 넣는 코인 빨래방부터 카드 충전하여 쓰는 빨래방까지 시설이나 방식이 다양한 곳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된 점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세탁기나 건조기 안에서 빨래들이 서로 섞여가며 원심 회전을 한다는 것이었죠. 그렇게 돌아가면서 저마다 둔탁한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기계음이, 빨래가 돌아가는 모습이 지겹거나 싫지 않았습니다. 빨래방에는 은은한 비누향까지 살짝 더해져서 뭔가 상쾌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세탁 소리가 살아가는 것은 끊임없이 빨래를 하는 일이라고 속삭이는 듯 들렸습니다. 더러워지고 얼룩진 것들을 끊임없이 깨끗하게 만드는 것. 다시 얼룩지더라도 우리는 살아있는 한 언제나 빨래를 하게 되겠지요. 4대의 세탁기와 4대의 건조기 사이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