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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소댕 Jan 12. 2024

새로운 세상에 흔적을 남겨가기

12월 호주의 무더운 여름철을 (농장에서) 온몸으로 한껏 느끼고 있을 때, 콥스하버 블루베리 팜 여정이 끝났다. 두둥! 1월 5일 가까운 맥스빌 역에서 시드니로 떠나는 기차표를 예매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아쉬운가 싶은가 보다.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보라빌 마을을 산책하면서 구석구석 잔상을 마음 속에 담고 있다가 요 삼색 예쁜이를 만났다. 시내 거리를 서성거리면서 밤늦게 통화를 하다보니 사람이 없는 새벽에 지나가는 고양이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갈 길을 바삐 가다 우뚝 멈추고는 나를 구경하는게 제법 귀여워요.


그 중 이 작은 삼색고양이는 처음에는 경계어린 눈으로 살금살금 눈치살피며 다니더니 위협이 아니란걸 깨달았는지 삐죽삐죽 옆으로 기어오는데 한국에 두고온 나의 큰 고양이 둘(쿠키와 밀키)도 생각나고, 동네사람들 예쁨을 듬뿍 받던 (내 맘대로 이름 지어준) 라멜이도 생각난다. 라멜이도 어린 고양이이던 시절에는 사람 경계가 심했는데, 워낙 붙힘성이 좋아 가끔 밀키가 앙칼지게 화내서 도망갈 때를 제외하곤 출퇴근때 동네 어귀까지 마중나와 주곤 했던 기억이 나 이 삼색 요물이가 비슷한 성격일까? 생각해본다.


첫날에는 근처에서만 어른거리더니 둘쨋날에 삶은 계란을 조금 주었더니 근처까지 오고, 떠나는 날에는 슬쩍슬쩍 만져줘도 챱챱 거리며 참치먹기 바쁜게 예쁨받겠구나 생각이 들어 다행이다 싶다가도 도마뱀과 주머니쥐같은 천적이 넘치는 험난한 호주 스트릿캣의 생활이 빤히보여 걱정이 한 바가지다. 



작은 등은 잔뜩 오무리고는 조그만 머리에서는 무슨 생각을 바삐하고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오늘 새로운 도시로 가기 위해 밤 기차를 타고 떠나요.
다른 바다 위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지만 가끔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래. 



She took the midnight train going anywhere 가사 한 구절이 맴돌다 사라질 무렵 기차는 시드니에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벽 4시에 BroadMeadow역에서 내려 Strathfield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지만. 보라빌 식구들 역까지 배웅해주었는데 다음주면 다시 볼 얼굴들이라 섭섭한 마음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작별을 하고 도착한 시드니. 안녕 반가워. 내 새로운 도시. 슬픈 추억은 팜에다 묻고 갈테니 여기엔 반짝임으로 가득차길.


새로운 룸메이트인 루나가 친구를 통해 미리 구해놓은 집이 있어 곧장 리드컴 역으로 향했는데, 인스펙션도 없이 공간이 넓고 위치도 좋은 곳에 렌트를 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익숙하게 짐을 풀다 문득 이제야 정말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물 여섯살 맨해튼 47가 GIA 빌딩 7층에서 입버릇처럼 난 호주에 가서 살꺼야.라며 입버릇처럼 중얼거리곤 했는데, 꼬박 4년이 걸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아시아나로는 9시간이면 도착하는 이 도시는 시드니. 세계 3대 미항으로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고 오페라 하우스가 대표적인 랜드마크. 페리로 갈 수 있는 해변(쉘리는 꼭 가보도록!)도 여러 개며 음식은 그렇게 빼어나진 않지만, 모든게 넉넉하고 너그럽다. 눈을 마주치면 이방인과도 웃으며 안부를 주고 받기도 하고, 매주 토요일마다 이름마저 아름다운 달링하버에서는 아름다운 스카이 라인과 함께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곳. 이제 이 곳에 내 흔적을 조금씩 새겨보기로 하자. 안소댕.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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