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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om Nov 25. 2020

신혼집을 구합니다.

전세대란이 찾아오기 전 운 좋았던 그 날

요즘은 집값이 미쳤다.

오늘 아침에 봤을 때는 강남 아파트 84 전세가 20억..

요즘 우리 아파트 전세가도 정말 미쳤다 싶을 정도로 많이 오르고 있다.


우리는 다행히 그 기간 전에 집을 싸게 구할 수 있었다.

사지는 못했지만.



나는 부동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가 올해 들어 경제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집 보는 법을 알아갔다.

집은 뭔가 대단한 것 같아 보였는데 알고 보면 그냥 아주 비싼 물건에 불과했다.

그래서 우리는 적은 전세금으로 시작할 수 있는 집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았다.


문제는 서로 집을 대하는 가치관이 정말 달랐다.


나의 조건 : 금액 > 주변 환경 > 평수 > 직장과의 거리

남자친구의 조건 : 금액 > 직장과의 거리 > 주변 환경 > 평수


정말 하나도 맞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가장 1순위로 생각하는 금액이 워낙 적은 금액이었기 때문에 이 조건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집은 많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그 와중에 반드시 내 직장과 가까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지하철에서도 픽픽 기절해버리기 때문이다.


그 조건에 맞는 집은 18~22평 정도 되는 오래된 구축 아파트였다.

주변 환경은 좋았지만 나는 그 낡은 아파트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18평의 집은 둘이 살기엔 너무 좁은 느낌이 들었다.

거실과 침실의 구분이 없는 방 하나와 주방 하나가 전부인 공간에서 둘이 생활하다가는 우울증이 다시 도질 것 같았다.


결국 나는 5개 정도의 매물을 보고 인정했다.

나는 20평 이상의 집을 원한다.


내가 내민 조건에서 20평대 아파트를 구하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었다.

빌라도 내가 생각한 금액을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부동산을 탐색했다.



남자친구가 좋은 매물을 확인하고 전화를 주면 나는 바로 연차를 쓰고 달려갔다.

그렇게 해도 좋은 조건의 매물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여기다, 하는 확신이 들었을 땐 망설이지 않고 계약금부터 걸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그 교훈이 빛이 발하는 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만났다.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직장과 아주 멀지 않은 20평대 아파트가 전세로 나왔다.

근저당이 있는 집이었고 집주인 선생님께서 다른 경기도로 이사를 가시면서 내놓으신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있던 집이라 집 이곳저곳의 벽지가 성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널찍하고 깔끔한 집이었다.

뒤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해서 얼른 계약금부터 넣어버렸다.


그날부터 그 집은 우리의 소중한 집이 되었다.



안방에 어마어마했던 벽지, 포스터로 가리고 잘 살고 있다



이사청소도 하고 가구도 몇 가지 들여놓고 나니 제법 살만한 공간이 되었다.

둘이 어버버 하면서 힘을 합쳐 커튼도 달고 의자도 조립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전세대란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거의 2배로 뛴 우리 아파트 전셋값을 보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택 기간이 길어지면서 집이 넓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결혼을 안 해서 10평 원룸에 나 혼자 있었다면 나는 필시 우울증에 시달렸을 것이다.


큰 집에 사는 것은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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