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컵라면을 다 먹은 지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과서와 공책, 필기도구가 들은 필통 그리고 학교 갈 때 잊지 않고 챙기는 핸드폰이 들은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었다.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워서 더 이상 허기를 느끼진 않았지만 길 옆에 불 밝힌 피자집에서 새어 나오는 피자 냄새에 자기도 모르게 입안애 침이 고였다. 그러자 언제 갔었는지 까마득한 소풍날에 엄마가 챙겨준 김밥과 삶은 달걀이 눈앞에 선했고 코에서는 김밥과 삶은 달걀 냄새도 나는 듯 해졌고 그러자 지훈이의 눈매는 복잡한 눈매가 되었는데 이렇게 표현해도 좋다면 짜증이 섞인 슬픈 눈매였다. 왜냐하면 지훈이의 눈앞에 떠오른 김밥과 삶은 달걀은 마치 멀고 먼 무지개처럼 다가서려 하면 자꾸만 멀어지거나 사라져 버리는 허망한 꿈과 같은 성질의 것이었지만 늘 손만 뻗치면 금세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짜증이 날 뿐 아니라 자꾸만 누가 옆에서 그리로 뻗은 손을 낚아채는 것만 같아서 묘한 슬픔, 그것도 위에 무언가 얹힌 듯한 분노가 섞인 묘하게 두려운 슬픔을, 그러니까 그런 느낌을 받으면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묘한 슬픔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가로등 불빛의 도움을 받으면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지훈이 옆으로 가끔씩 부웅 하는 낮은 소리를 내며 자동차들이 지나가곤 했고 어두워서 어떻게 생겼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젊은 여자로 보이는 사람도 옆을 지나쳐 갔는데 그 여자를 보자 지훈이는 저도 모르게 “젊은 여자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밖에 있으면 위험할 텐데”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얼른 집에 들어가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다음 자기 방에서 누워 핸드폰으로 게임을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편하고 좋은 생각은 곧바로 어렵고 지루한 학원 숙제를 연상시켰고 그러자 지훈이의 입에서는 낮은 한숨이 나왔고 갑자기 몸에서 기운도 쑥 빠지는 듯했다.그래서 지훈이는 속으로 게임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잠이라고 충분히 잘 수만 있었으면 하는 말을 했는데 그러고 나니 지훈이의 머릿속에는 “인생은 고해다”라는, 언젠가 어디선가 접한 어려운 말이 떠올랐고 딱히 그 말을 설명할 순 없어도 막연하게나마 깊이 공감이 되어서 이 놈의 세상을 확 바꿨으면 하는 나름대로 절박한 마음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