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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Feb 28. 2022

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작가 에릭 와이너의 신작

왜 신을 믿으세요?


라는 질문을 갖고 있다. 믿음에 열성적인 사람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저렇게 신의 품 안에 폭 감싸 안겨, 저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데, 나는 왜 신을 따르지 않는가? 내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매번 디폴트 값처럼 존재한다.




믿음 속에서 충만한 이들을 향해 세속적인 질문을 가차 없이 던지는 사람이 있다.


<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의 저자 에릭 와이너다. 작년,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알렸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익살꾼, 철학 전도사 에릭 와이너의 신작이다. 미국에선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보다 먼저 출간된 책인데, 저자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판도 출간되었다. <행복의 지도>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만으로는 부족했던 독자에게 보란 듯 어크로스 출판사가 던져준 510페이지에 달하는 에릭 와이너의 종교 탐사기는 무척 흥미진진하다.


8개의 종교가 등장한다. 미국인인 에릭에게는 낯선 불교, 도교, 샤머니즘은 오히려 아시아 독자인 내게는 편안하다. 늘 측은지심, 도, 무소유 같은 것들이 우리 곁에 있다.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는 식으로 읽었다. (나는 꽤나 도교적인 인물이군.)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8개의 종교 중, 구미가 당기는 종교 먼저 읽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삶이 잿빛 같고 무료하고 지루하다면 라엘교를. 내 삶의 주인공이 나라는 감각, 내 삶은 내가 잘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면 위카를.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에 쫓기는 기분이라면 불교를.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에는 가톨릭 프란체스코회를. 흐트러진 내 생활에 기둥 같은 규율이 될 무엇이 필요하다면 유대교 카발라를. 


종교에 대한 큰 관심이 없는 내가 이 책에 푹 빠져서 읽었던 이유는, 신을 바라보는, 혹은 신을 믿는 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가 나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가 경험하는 양가감정이 내 것과 똑같이 느껴졌다. 

 오늘 10권의 책을 곁에 쌓아두고 이 책들을 집어삼킬 기세로 읽다가도, 내일은 그저 죽었으면 좋겠다는 양극단에 치우치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감기인 우울증을 지독하게 앓고 있는 내 마음을 헤아리는 문장이 나온다.


<내게는 두 가지 상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미친 듯이 움직이거나 아니면 마비된 사람처럼 꼼짝도 안 하거나. 뭐든 억지로 해내려고 자신을 들들 볶든지, 아니면 아예 인생을 포기해버린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말고 제3의 방법이 있다. 도교의 방법인 무위. 힘들이지 않고 하는 것. 노자가 뭐라고 했더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미완성으로 방치되는 것도 없다. 나도 이 말을 믿고 싶다. 아니, 이 말대로 살 수만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p343>


'그렇지, 그래 내 상태가 딱 이건대.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도교적 인간에 딱 맞아. 그래 도교랑 딱 맞아.'


<하지만 진짜 문제는 계속 마음에 걸리는 구식 문제, 즉 믿음의 문제다. 나는 고만고만한 여러 신들이 내게 말을 걸거나 나 대신 끼어드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이 많은 신들의 존재를(내 왼손 새끼손가락이나 노트북 컴퓨터의 존재를 믿듯이) 내가 믿지 않는다는 것이 차가운 현실이다. p398>


신의 코앞까지 가까이 간 것 같다가도 기어코 고개를 들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현실감각에, 이 무시무시한 이성적 균형이 이번 책의 묘미이며, 정수다. (나도 진실로 신을 믿고 싶어, 그런데 안 믿겨.)


에필로그를 읽을 땐 일부러 더 천천히 읽었다.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아쉬웠다. 

다채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종교는 추구하는 바도, 따르는 신도 제각기 달랐다. 그러나 신을 믿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에너지가 있었고 그들이 지닌 에너지는 삶을 살고 싶게 만드는 화수분 같은 역할을 했다. 책의 말미에 다다라서도 "신은 역시 존재해"라고 말할 순 없었지만, 작가가 만난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분명 느낄 수 있었다. 그런 확신으로 삶에 임하고 싶었다. 신은 그러한 확신으로 나아가는데 일말의 역할을 할 것인가? 그럼 나는 어떤 신이든 취해야 할까?


유대교 출신인 에릭의 마지막 여정이었던 유대교 카발라는 마침내 방황하던 그(무신론자)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었을까?


유대교 카발라 경전을 읽고, 교리를 공부하며 드디어 핏속에 녹아있던, 자신의 무의식에 명령을 내리던 유대교를 마침내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에릭 와이너는 합리적 이성주의자며 무신론자다. 그가 내린 결론은 커스터마이즈 customize다. 그가 만난 모든 종교에는 삶을 끌어안는 삶을 기꺼이 살아내는 에너지가 있었고, 장점도 많았다. (이 고생스러운 여정을 보고도 그중 하나만(하나의 신만) 고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에릭이 경험한 종교체험 같은 것은 가히 상상 이상인데?)


그는 천재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독자로서도 흡족한 마음에 책을 덮었다. 그가 선택한 자신의 신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종교, 신, 믿음과 상관없이 '사는 건 뭐 이럴까?' 하는 의문 정도만으로도 이 책에 빠지기에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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