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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Jan 20. 2022

이럴 거면 혼자 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이런 개인주의 어때요?

‘개인’이란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건 고1 화학과목 제일 첫 장에 등장하는 Atom이라는 단어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a-tomos에서 온 것으로 우리 말로는 '원자'라고 한다. 일상적인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를 일컫는 개념이다.


사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이며 더 이상 나눌수 없는 ‘개인'인 우리는 사회 속 원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과 원자가 만난 표현을 살짝 들여다보기만 해도 우리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바로 체감할 수 있다.


원자화된 개인

현대의 대중 사회 속에서 홀로 고립된 채 살아가는 개인. (출처. 구글 WORDROW 국어사전)


개인 자체를 불완전하게 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어딘가 소속 되어야 하고, 어딘가 연결되어야 완전해지는. 우리 사회에서는 '적령기' 라는 표현으로 어느 세대든 시기마다 속할 곳을 은연중에 부여하고, 그렇게 되기를 다그치는 바가 있다.


결혼 적령기라는 암묵적인 사회적 룰에 동조한 1인으로, 10년의 결혼 생활을 이어오면서 역설적으로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그 안의 개인의 정체성을 또렷이 세워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동명웹툰과 tv시리즈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스테디셀러 ‘며느라기’는 한 개인이 결혼과 함께 자신이 아닌, 가족이 바라는 이상적인 며느리, 아내로 행동하며 자신의 내면에서 충돌하는 가치관들과 내면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들에 직면하게 되는 민사린이 등장한다. 왜 개인은 공동체 안에 들어가면 무색무취한 1인이 되는 걸까.


‘며느라기’없는 결혼 생활은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왜 모든 것 중에서도 개인으로 존재하기를 가장 빨리 포기할까.


그에 대한 해법으로 든 책이 <이럴 거면 혼자 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였다.

 

집단이 정한 공식과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우연히 일치한다면 행운이지만, 불일치한다면 공식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며 살거나 문제 자체를 안 푼 반항아로 낙인찍힌다. 정답이 하나뿐인 집단적 과제 앞에 개인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p18, 19


가족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 대부분은 더 많이 동일화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가족이 나와 다른 개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일어난다. 자식이 진정으로 잘되길 바란다면 가족 안에서도 일정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p28


‘자유론’을 썼던 존 스튜어트 밀은 1장에서 밝힌다. 자유와 권력의 관계는 개인과 다수자의 투쟁문제를 포함한다고. 자기 자신에만 관계있는 일에 대해서는 개인이 다수자의 전제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게 요지다. 그러나 우리 삶은 정말 만만찮다. 대입, 취업, 결혼, 자녀계획, 양육까지 어디에서나 침범하는 경계선 없는 걱정과 조언들은 우리 삶을 정말 피곤하게 만든다. 존 스튜어트 밀이 이 광경을 본다면 뭐라고 말할런지. 한국인의 종특이라고 할만한 ‘오지랖 문화’는 요람부터 무덤까지가 가능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개인의 자유 침해 수준을 넘어선다.


여기서 고통받지 않으려고, 선제적으로 결혼제도에 들어가고 자녀들도 낳아 키웠지만, 개인을 누르고 수행하는 역할극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올해의 목표는 개인성의 회복. 청년시절 가졌던 청운의 꿈을 다시금 회복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이 책은 응원의 손길이 되었고 작가의 목소리는 결코 내가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게 아님을 지지해주었다. 

30대의 나이에 이모든 경험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온 작가의 삶은 개인주의자를 고수하면서도 지혜롭게 조직생활, 결혼, 양육의 세계로 들어갔기에 어느새 나는 작가의 삶을 선망하는 자세로 책을 읽고 있었다.


최민지 작가가 전하는 개인주의에 대한 통찰이 너무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점을 분명히 밝혀준다.


- 조직에서 개인주의하면 팀웍(team-work)이 가능할까?


그러나 ‘나 하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심마저 개인주의로 둔갑시킬 수는 없다. 동료가 개인주의자인지 이기적인지는 어떻게 구분할까? 본인 한 사람의 편의만을 생각하느냐, 다른 동료의 권리도 생각하느냐로 가늠할 수 있다. p53, 54


동료들이 저마다의 이유와 목적에 끌려 이곳에 왔음을 헤아리고, 너와 나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관계. 네가 나와 같지 않음을 알고, 각자의 개성으로 조직에 이바지하리라 믿는 관계,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동료를 나만큼 중한 존재로 여기는 개인주의에 있다. p57


- 개인주의자가 어떻게 결혼을 해?


남편과 나의 결혼생활을 식기에 비유한다면 티포원(tea for one)이 아닐까. 찻상 앞에 마주 앉아 함께 차를 마시되 각자가 원하는 차를 1인용 티포트에 우려내는 것이다. 커다란 티포트에 하나의 차를 우려 두 찻잔을 채우는 날도 있지만, 때로는 수색과 향취가 다른 차를 마시고 싶은 날도 있는 법. 티포원을 꺼내면 ‘함께’라는 큰 울타리 속에서 ‘나’와 ‘너’로 분리될 수 있다. p89


우리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이유는 인간생활의 공허함과 단조로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족 안에서도 너무 바짝 달라붙으면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만다. 여기에서의 ‘적당한 간격’은 무엇일까? p107

 

부모 자식 관계, 가족 관계라 해도 나와 동일시 하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과 결정을 존중하는 정도의 적절한 거리감, 이게 바로 가족 간에 필요한 정중함과 예의 아닐까? p107


- 개인주의자가 결혼했다면 딩크? 아이 있는데 개인주의가 가능해?


서로에게 일정한 역할이 주어진다는 것을 수긍하고, 그것을 균형 있게 분담하는 육아. “그래, 네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은 그거구나. 그럼 내가 이 역할을 해볼게. 다른 집들은 보통 저렇게 한다지만 우리는 이렇게 한 번 해보자”하며 조율과 협의에 공을 들이는 육아다. p219


아이 삶의 밑그림을 짜임새 있게 그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펜을 아이 본인에게 쥐어 주기로 한 것이다. 밑그림이 대단하지 않으면 어떠랴. 살아가면서 빈 공간에 채우고 싶은 것들이 자연히 생겨날 테고, 그때마다 부분 부분을 제 힘으로 채워 가면 되는 거다. p204 「3장, 육아, 작은 개인과 함께 사는 일」 中


기존 질서에 질문을 던지는 이들로 인해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과감하게 묻는다. 개인주의가 널리 전파되고 있다가 아니라, 왜 ‘개인주의’는 ‘팽배’하다고 낙인을 찍는지. 개인주의자라서 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니라, 개인주의자라서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들에 기꺼이 빛을 비춘다.


지속되는 코로나19, 비혼과 함께 부상하고 있는 1인가구의 등장. 생활동반자법을 근간으로 한 혈육과 결혼이 아닌 새로운 가족의 결합 등, 개인의 존재가 더욱더 부각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르네상스 시대는 ‘신(god) 중심이던 중세에서 개인(individual)에게 주목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로부터 7세기가 지나고 2022년의 서막이 열렸다. 과거처럼 빛나는 문화부흥을 이끄는 르네상스가 아닌 코로나19시대가 되었지만, 시대의 흐름속에서 와해되는 공동체는 다시 객체화된 개인으로 환원되었다. 온전한 개인으로 돌아온 우리는 그 속에서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동을 삼가며 타인을 지키고자 하고, 필요할 때는 연대를 통해서 다시 공동체를 구성한다.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가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인간과 인간이 만나 이루는 공동체의 바탕에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중략)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이 더해질수록 이런 생각은 더욱 견고해졌다. 개인주의는 성숙한 관계 맺기의 기본 바탕이기도 하니 말이다. 누군가가 나의 친구, 연인, 동료이기 이전에 나와 다른 의견과 가치를 지닌 개인이라는 것을 알고, 존중해야지만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p 9, 프롤로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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