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 소금 사막
많은 사람들이 남미를 찾아오는 이유 중 하나를 꼽자면 우유니 소금사막을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누구라도 우유니 소금 사막 사진을 본다면 반드시 버킷리스트에 넣게 될 정도니까.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 불리는 우유니 소금 사막은 우기가 되면 새하얀 소금 결정체로 이루어진 지면에 빗물이 흡수되지 않고 자박하게 고인다. 그렇게 고인 투명한 물은 하늘을 그대로 비춰준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땅 위에 펼쳐지면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달콤했던 수크레를 떠나 9시간 버스로 이동하여 도착한 우유니는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마치 잠이 덜 깬 채 헝클어진 '머리로 누구세요?' 하고 문을 여는 사람처럼. 낮고 허름한 건물이 어정쩡한 간격으로 늘어져 있고 쓰레기가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그런 마을과 꼭 어울리는 으스스한 호스텔에 들어서니 희미한 불등이 깜빡이고 나무 바닥은 삐걱였다. 우유니에서는 비자 문제로 오래 머무를 수 없어 곧장 사막투어를 해야 했기에 당황할 새도 없이 짐만 대충 풀어놓고 호스텔 밖으로 나섰다. 시간이 늦어 오늘 당장 투어는 힘들지만 내일 곧바로 사막에 갈 수 있도록 여행사에 가서 예약을 해야 한다.
내가 꿈꾸는 물이 고인 사막을 보기 위해서는 우기인 12~3월 사이에 이곳에 와야 했는데 이를 계산할 새도 없이 갑작스러운 여행 일정의 변경으로 7월 중순인 건기에 이곳에 불시착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남미 여행 카페에서 건기임에도 물이 있는 곳을 데려다준다는 '호다카'라는 여행사를 추천받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일본 여행객에게 특히 유명하다는 호다카는 벽면 가득 일본어 추천사가 쓰여있었고 간간히 한국어로 된 추천사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자 사장님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나에게 "물이 있는 곳에 갈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홀린 듯 계약을 했다. 사실 그녀를 믿는 것 외에 딱히 방법이 없기도 했으니까. 뒤늦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투어 멤버에 한국인이 있는지 물었는데(없어도 상관없지만) 그녀는 또다시 망설이지 않고 "지금은 없지만 내일 아침 버스터미널에서 데려올게요"라 답했다.
썩 들어가고 싶지 않은 호스텔에 다시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다행히 물은 잘 나왔다)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버스를 너무 오래 타기도 했고 쉬지 않고 곧바로 여행사에 들러서 지칠 대로 지쳤다. 그래도 내일 만나게 될 소금사막에 대한 기대감으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아주 늦게까지 밤잠을 설쳤다. 사실 단순히 설레서라기 보다는 방안이 무척이나 추운 탓이었다. 직전에 머물렀던 수크레와 다른 환경에 전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우유니가 추운지 이 호스텔이 난방이 잘 안 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 일 수도 있겠다.
다음날 아침 약속시간에 맞춰 호다카로 갔다. 원래라면 1박 2일 투어로 사막에서 숙박을 하려고 했으나 소금 호텔이 무너져버려 아쉽지만 노을을 보며 마무리하는 선셋 투어로 변경했다. 역시 소금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내구성이 약한 것 같다. 사장님은 소금 호텔에서 잠을 잘 수는 있지만 아마 엄청 힘들 거라고 말씀하셨다. 어제 숙소 안에서도 추위로 고생을 한 탓에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팀 명단을 쭉 살펴보니 보니 정말로 한국인이 한 명 추가되어 있었다. 코이카 봉사단원인 언니는 로하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언니는 이른 새벽에 우유니에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와 다짜고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봤다는 거다. 한국사람이라고 답하니 자기 투어에도 한국사람 한 명이 있다며 가자고 해서 따라왔다는 게 지금까지의 전말이다. 엄청난 섭외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 사장님은 거짓말할 분이 아니라는 더욱 큰 확신이 들었고, 물이 있는 곳에 나를 데려다줄 것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두 사람 외에 다른 멤버는 모두 일본인 친구들이었다. 갈라파고스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온 유코와 유리, 값이 꽤 나가 보이는 사진기를 가진 소이치, 또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일본인 커플 두 사람. 한국인 두 명과 일본인 다섯 명의 조합으로 7명이 한 팀이 되어 지프에 올라탔다.
먼저 지프는 얼마 달리지 않아 우유니 사막 필수 투어 장소인 기차 무덤에서 멈춰 섰다. 그저 기차가 고장 나서 더 이상 못쓰게 되었을 뿐인데 무덤이라는 단어가 붙자 뭔가 대단한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우리는 다 같이 내려 사진을 찍으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차를 타고 출발했다. 우리의 관심사는 오로지 물 찬 우유니였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지프는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얀 우유니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사막의 바닥은 하얀 소금 결정체들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커다란 육각형의 모양으로 갈라져 있었다. 물이 없는 우유니 사막은 큰 감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금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거리는 모습이 정말이지 예뻤다. 마치 형광등을 켜놓은 것처럼 하얗게 빛나 새파란 하늘과 확연히 대비되었다. 구름 한 점 없어서 그런지 더욱 현실감이 없었고 마치 그래픽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먼 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머리가 이상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지프차가 또다시 정차했고 우리는 바스락-하고 소금 땅을 밟았다. 가이드 아저씨는 소금 채굴장으로 가보자며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채굴장이라고 하면 엄청 커다란 동굴이 있어야 할 것만 같은데 도무지 이 허허벌판에 그런 곳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의문을 가득 가진 채 그의 뒤를 따랐다. 얼마 안 가서 아저씨는 갑자기 멈춰 서서 고개를 수구리며 앉았다. 사막 한가운데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곳을 아저씨는 채굴장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구멍 안을 들여다보니 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그 속으로 손을 넣어 보았는데 얼음장과 같아 곧바로 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익숙하다는 듯 이에 굴하지 않고 손을 쑤욱 넣더니 열심히 손을 움직이셨다. 그리고는 작은 소금 결정체를 몇 조각 떼어내어 우리에게 나눠주셨다. 마치 원석처럼 투명하고 제멋대로 각이 져 있었다. 혀로 살짝 맛을 보니 짠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빨개진 아저씨의 손이 너무나도 시려 보여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연신 Gracias(그라시아스,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아저씨는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셨다.
다시 지프차를 탄 우리는 마지막 종착지로 향했다. 고요한 차 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이 공간에는 기대감이 가득 차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섣불리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메마른 소금 결정체들이 가득한 이곳에 과연 물이 고인 곳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건기인지라 만약 고여 있다 해도 사진에서 본 것처럼 물이 가득 차는 건 힘들 거다. 아주 쬐금 웅덩이처럼 고여있지 않을까? 사실 그 정도라도 좋으니 하늘이 비치기만 해도 좋을 거라 생각한 순간,
촤르르륵- 자동차 바퀴가 물 위를 구르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주변은 다른 공간으로 변했다. 지평선 끝까지 물이 가득 찬 우유니 사막이 태양을 머금어 그 무엇보다 찬란하게 빛나며 우리를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