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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당근 Jun 03. 2022

결국 사라져 버리지만 (2)

마추픽추



 다음날 중요한 일정이 있으면 누군가 -하고 밀쳐서 깨운 것처럼 깜짝 놀라며 일어나게 된다. 이건 여행이 나에게 남긴  가지 흔적  하나이다. 알람보다 효과적이므로 늦잠을 자서 곤혹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해   있다. 다만 아주 편하게 스르르 눈을 뜨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다.

 여행에서는 경계태세를 뾰족하게 세워야 한다. 이번 버스를 놓치면  '~ 어쩔  없지'하며  느긋이 기다릴  있는 한국에서와는 달리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수고와 약간의 짜증을 더해야 한다. 근처 카페라도 들어가 여유롭게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여행 중에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인색하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도 있지만 어쩐지 어색한 일이 되어버렸달까. 그저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터미널에서 앉아 버스가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숙소 역시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늦지 않게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실을 선점한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는 빠트리는 물건이 없도록 꼼꼼하게 짐을 긴다. 늦장을 부리다간  뭔가 하나씩 두고 오게 되니까. 콜롬비아에서  맘을 먹고  후안 발데스 보온병 역시 그런 물건  하나이다.

 아무리 장기 여행이라도  곳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여기저기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는 신세이기에 스스로 정한 약속을  지키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러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곳이 낯선 곳이라는 생각, 나를 지킬  있는  오직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있었기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언제든 쉽게   있는 얕은 수면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육체는 잠들고 유체이탈을  영혼이 보초를 선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이번에도 번뜩 눈이 뜨였다. 여행    번도 늦잠으로 문제가 일어난 적이 없다. 어쩌면 여행이 꽤나 적성에 맞는지도 모르겠다. 마추픽추로 향하는 새벽 버스를 타기 위해 간단한 소지품만 검은색 작은 백팩에 넣었다. 움베르도와 카밀라와 만나기로 약속해서 더욱 늦장을 부리면  되기도 하지만 이번 버스를 놓치면 또다시 다음 버스표를 구하거나 하룻밤을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 셋은 비몽사몽  눈을 비비며 숙소를 나섰다. 아직 어두운 새벽. 야시장처럼 사람들이 기다랗게 줄지어 있는  보고 경악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추픽추에 발을 디디면 내려앉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둡고 고요한 버스 . 사람들이 곯아떨어지는 소리가 곳곳에 들렸다. 길이 고르지 못해 덜컹덜컹 거림에도 개의치 않고 모두가 깊이 잠들었다.

 여행  마추픽추를 다녀온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호기심에 가득  눈으로 실제로 보니 어땠는지 묻자  사람은 '사진을 하도 많이 봐서 실제로 보면 크게 감흥이 없다'라고 답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사진이 전부라고 말하는   푸쉬시 맥이 빠져버렸다. 그때를 떠올리며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라는 허탈한 마음과 '그래도 마추픽추인데'하는 실낱같은 희망 공존한다.

  버스가 입구에 다다르자 서서히 동이  오르고 있었다. 이번엔 오픈런을 준비하는 대기줄처럼 버스에서 사람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입구에 들어서자 아직 고요한 새벽의 정취를 가득 담은 마추픽추가 한눈에 보였다.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나왔고  모르게 '우와' 감탄을 연발하며 조심스럽게 마추픽추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 가득  공기는 아래에 있는 것과는 분명 달랐다.  자신이 이질적인 존재임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주 순수한 공기이다.

  포인트에 올라가 한눈에 마추픽추를 내려다보니 거대한 파도처럼 마음이 울렁거렸다. 해가 천천히 떠오르며 햇볕이 찬란하게 드리우자 서서히 살아 움직이는 듯한 집터들과 생생하게  색을 뽐내는 잔디와 나무 그리고  속에서 환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의 표정까지도 명확히 보였다. 어느  가지도 놓치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투박한 구조물들 조차 하나의 작품처럼 멋지게 펼쳐졌다.


 누군가 나에게 마추픽추는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마추픽추는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오백 배는  멋지고 감동적이었어'라고 자신 있게 답할 것이다.

 페루 사람들은 수학여행으로 마추픽추에 온다고 하지만(우리나라 불국사 느낌일까) 남미가 아닌 머나먼 외국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은 신대륙의 발견까지는 아니겠지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일 것이다. 마치 인디아나 존슨이  기분이랄까.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스로 편히 올라왔지만 직접 산을 타고 텐트를 치며 야영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지금 내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큰 기쁨을 느끼겠지? 이런 방법이 있는  알았다면 트레킹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예일대 교수 하이럼 빙엄은 이런 말을 했다.

"Few romances can ever surpass that of the granite citadel on top of the beetling precipices of Machu Picchu, the crown of Inca Land."

"잉카 땅의 왕관, 마추픽추의 들쭉날쭉한 벼랑 위에 우뚝  화강암 도시의 낭만보다 더한 낭만은 없을 것이다."

 스페인의 침략에 끝끝내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  이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무수한 가설만 있을 뿐이다. 대표적으로는 전염병, 식량부족이라는 설이 있다.  쪽이든 비극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멋진 이곳에서 서서히 죽어간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움베르도와 카밀라는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며 같이 조인하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혼자 둘러보겠다고 했다. 지금은 그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순서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는데 어딜 가나 가이드 무리가 있어서 고독한 시간을 보내기란 어려웠다. 그래도 따로  같이 움직이는 묘미가 있다.  슬쩍 가이드 말을 들었을  마추는 old, 픽추는 mountain 뜻하여 결국 마추픽추는 오래된 산이라고 번역할  있다. 뭔가 대단한 의미가 담긴  알았던 조금 허무해져 버렸다.

정처 없이 발걸음을 움직이다 젯밤 만났던 한국인 어르신들이 잔디에 앉아서 쉬고 계셨다(마추픽추는 넓은  같으면서도 좁다). 또다시 먼저 다가가 인사를 드리니 역시나 반갑게 맞이해주시며 깎아 놓은 사과를 나눠 주셨다. 그중  분이 "아휴 여기까지 혼자  생각을 다하고~ 기특해라"라며 칭찬해주셨고 다른 분들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봐 주셨다. 나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사양하지 않고 칭찬을 받을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침에 예민하게 곤두섰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포인트로 다시 올라가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주 오래전 이곳에서 밥을 먹고, 뛰어놀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이들은 우리의 존재를 상상도  했겠지.

 혼란스러운 바깥세상을 피해 몸을 숨기면서도 일상을 살아갔을 이들을 떠올려 본다. 결국 Life goes on. 우리와 똑같이 소중한 일상을 보냈겠지? 이들은 스페인군에게 끝끝내 발견되지 않았기에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최후를 맞이할  있었다. 결국 쇠퇴 이르는 마당에 무슨 상관인가 싶다가도  아름다운 성지가 누군가의 손에 망쳐지지 않았다 사실이  세기가 지난 지금도 안도의 한숨 쉬게 만든다.

 마추픽추 하늘이 이토록 청명하고 좋은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한다.  뻗으면 닿을 듯한 푸르른 하늘 아래 이질적인 존재로서의 기분을 마음껏 낀다. 그러면서 사라져 버린 것과  사라질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사라지는 순간이 오면  유적처럼 비석만 을 뿐 육안으로는 나라는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어쩌면 비석마저 무성한  사이에 가려질지도 모르지.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 쇠퇴할 밖에 없지만 그래도 가지  삶을 살아가고 싶다.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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