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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미아 Jun 22. 2020

#4. 우리가 위로하는 방법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일상.


적응을 위한 몇 달의 시간이 지나가고, 다시 일상의 스트레스가 찾아왔다.


바빠서 잠깐 잊고 있었던 항상 맘대로 되지 않는 회사 생활, 성과, 그리고 가끔씩 비즈니스 예의 없이 갑질 언사를 하는 몰지각한 일부 클라이언트, 거기에다 한국을 벗어나면 느끼게 되는 해외생활의 느린 속도감, 비합리성, 비효율성 등등, 살게 된 나라가 바뀌었다고 생활이 크게 바뀐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옆에서 함께 이런 골칫덩이들을 이야기하면서 슬픔과 분노를 나누어 버려 줄 남편도 옆에 없을뿐더러, 짜증지수가 최대치를 찍는 두바이의 밤이 되면, 한국은 이미 새벽. 내가 이야기하면서 스트레스 풀자고 그 시간에 연락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전에 썼듯이 장거리 커플 유지의 주요 조건 중 하나는 수면시간 확보에 따른 체력 유지니까.

그런 툴툴거림은 주말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일주일 중 하루 혹은 이틀, 그 하루 중에 적어도 한두 시간은 영상통화를 하면서 할 일을 했다. 일주일 동안 미뤄두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하나하나 풀면서 일상생활을 했다. 내가 일어나서 집안일을 좀 해놓고 느지막한 아침을 먹을 때가 되면, 남편은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기 때문에 같이 밥을 먹으면서 내가 아는 몹쓸 놈들의 이야기들을 들어주었고, 또 남편은 만난 적 없는 싹수없는 놈들의 욕을 같이 해주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그냥 어느 날처럼 빨래를 널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요즘 아픈 데는 없는지,

지난주엔 뭐 특별한 일이 없었는지,

혹은 어디를 갔었는데 너무 좋아서 너랑 꼭 같이 가야지 생각했어라든지,

맛있는 것을 먹었는데 너 생각이 나서 내가 그냥 두배를 먹어 두었다던지...


사실 이미 주중에 간단하게 문자로 주고받았던 내용이었지만 하나하나 복습을 하듯이 세세하게 다시 이야기했었다. 그렇게 얼굴을 보면서 따뜻한 목소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주중 내내 나의 골치를 썩였던 것들은 까맣게 기억에서 지워졌다. 물론 초단기 기억 상실에 가까운 것이긴 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던 날들이었음에도 나의 주말은 편하고 안정적이었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짝꿍의 부재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항상 같이 하던 일상을 혼자 했을 때 느꼈던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말에는 거의 남편과 건대에 있는 이마트에 가서 장을 보곤 했는데, 우리가 가장 좋아하던 시간은 아침 일찍 문 여는 시간이었다. 흔한 카페도 다 열지 않아, 마트 입구 옆에 있는 낯선 이름의 조그만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씩 들고, 이마트의 채소, 과일, 고기, 와인, 생활용품, 과자 섹션, 그리고 빵집을 순서대로 빠짐없이 돌았다. 집에 와서 먹을 슈크림빵과 맛나 보이는 닭강정, 초밥을 마지막으로 카트에 담고 집에 오는 일상.



그 일상을 이제 각자 해야 했지만, 예전만큼 즐겁지 않아서 두 시간씩 있을 필요도 없었다. 오랫동안 차근차근 장을 봤다고 생각했는데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그래도 괜찮은 카페를 찾아 커피는 한잔씩 꼭 마시고 돌아왔다. 다음에 남편이랑 같이 장 보러 오면 커피를 마셔야 하니까. 내가 주말마다 가는 카페 이야기를 해줬고, 남편은 꼭 가봐야겠다고 기대된다고 이야기했고, 서로 장본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면서 경험한 나의 초보운전 무용담과 또 그 와중에 얼마나 쓸쓸함을 느꼈는지 이야기했다.






추억이 많았던 만큼, 그것을 떠올리고 또 새롭게 맞이한 일상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지친 일상에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서로의 빈자리에 대한 아쉬움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도, 나를 항상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 짠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의 일상에 바로 옆에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하게 되었을 때 퍼즐이 따닥하고 맞춰질 수 있도록 많은 대화를 하는 것이 정말 너무 중요한 부분이었다. 남편은 가 본 적 없지만 아는 그 카페처럼.



물론 우리가 만나는 그날을 위한 계획을 하루하루 같이 세우면서 예약한 비행기표를 보면서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돈은 많이 들지만, 일상의 두통을 잊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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