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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미아 Jun 28. 2020

#5. 가장 싫은데 좋은 것

On the way to the Airport

연애할 때는 365일 중에 360일을 만났다.


특히나 연애 초반의 나는 사회 늦깎이 새내기였던지라, 영혼을 불사르며 월화수목금 야근을 하던 시기였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국회의사당 역 앞에 있는 흡연실이 있는 카페 7 gram에서 오래도록 나를 기다려 우리 집에 가는 내내 같이 이야기하고, 집 앞 공원에서 따끈한 꿀차를 손에 쥐고 못다 한 이야기를 하다가 (정말 찰나의 시간이라고 느꼈던)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난 뒤에야 헐레벌떡 새벽 할증이 잔뜩 붙은 택시를 타고 면목동으로 돌아가곤 했다.



물론 결혼하고도 많은 순간을 함께 보냈다. 주말 내 게으름이 뚝뚝 떨어지는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해가 질 즈음해서 나가는 광화문 그리고 삼청동 산책, 광진구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나무가 울창한 어린이 대공원 산책로를 한 바퀴 걷는 시간, 물론 함께 먹고 마시고 사랑한 시간까지.



이런 사람이 나의 과거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벤트 없이도 지루한 순간 없이 3년 여의 시간이 흘러 결혼을 했고, 또다시 8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모든 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져 벌써 10년이라는 함께한 숫자를 보면 새삼 놀랍다. 이렇게 떨어져 보내기 전까지 우리는 보통의 다른 커플보다는 훨씬 많은 시간과 날을 함께 했었다.






멀리 떨어져 있다 보면 일 년 중 함께하는 몇 주의 시간이 너무 특별하게 느껴진다. 만나서 하루하루 무엇을 할까, 어디를 갈까 계획을 세우는 재미도 있지만, 역시나 가장 설레는 시간은 남편이 오기 전날이다.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는 보통 새벽에 도착인지라 아침에 픽업을 가려면 늦어도 4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다. 일찌감치 목욕재계하고 푹 자야 하는데, 왜인지 전날은 항상 야근이거나 늦게까지 할 일이 있거나 혹은 하다못해 긴급 집 청소를 하다가 피곤한 채로 잠들었다.


혹시나 몰라 몇 개의 알람을 맞춰놨지만, 미쳐 울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 떠져 눈곱을 떼고 옷을 챙겨 입고, 깜깜한 새벽의 공기를 갈라 신나게 날아가고 싶은 내 맘을 담아 속도를 높여 공항에 픽업을 갔다.



남편의 사계절 최애 음료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지와 나의 아침 라테를 시켜서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는 게이트가 제일 잘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도착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두리번대며 남편이 나오자마자 바로 서로를 알아보고

함빡 웃음을 짓고 두 손을 휙휙 저으면서 인사하는 것.

그리고 게이트를 빙 돌아서 카페로 걸어오는 두 팔 벌린 남편을 보는 그 순간이 바로

몇 번을 반복해도 항상 그리고 가장 신나면서 설레는 순간이다.






그리고 또 같은 공간 다른 층, Departure에서는 말이 없는 나와 남편이 있다.


사실 집에서 짐을 싸고, 공항으로 오는 차 안에서부터 크게 말이 없었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 밖으로 떨어지는 해를 보면서 그냥 별 의미 없는 말을 했다.


두바이는 달이 저렇게 크네...


이번에 우리 둘이 만들었던 추억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다음 만남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하기도 싫었다. 그냥 너무 우리 둘에 집중하고 싶지 않았다. 체크인을 하고 이제 커피 한잔 하고 나면 또 한동안 못 볼 테니, 최대한 내일도 볼 듯이, 특별한 당부의 말이나 걱정의 말 대신 최대한 아무 말이나 하고 있었다. 그러면 덜 슬프지 않을까.



공항에 도착했다.

길 찾는 더듬이가 부재한 나를 위해 항상 그렇듯 게이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캐리어를 끌고 최대한 천천히 걸어갔다. 남편이 체크인을 하는 동안, 일주일 전의 나와 같이 카페에 가서 다시 커피 두잔을 주문했다. 이번엔 아메리카노 아이스 작은 것과 라테.


붐비는 테이블 사이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남편을 기다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당근 케이크이라도 시켜놓을까 망설이다가 그냥 있기로 했다. 남편은 항상 라운지에 가니까 굳이...


둘이 말없이 한참을 있다가 그래도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담담히 말하고, 애써 웃고 남편을 보내기 위해 진짜 시큐리티 체크를 위한 게이트로 보내기 위해서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더욱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지점까지 왔을 때, 한번 꼭 안아주고 연락하라고 하고 들여보내기로 했다.



후웁.

한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돌아보면서 손을 흔드는 남편의 모습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눈앞이 뿌옇게 앞이 잘 안 보인다.



그렇게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주차장을 가다가

어딘가에 주차되어 있을 나의 자동차를 찾아 다시 모험을 떠나자니

갑자기 머리에서 후끈 열이 나면서 눈물이 땀이 되어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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