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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Jade Jan 20. 2020

그렇게 그때의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해간다

가볍게 무거운 글 시리즈_가벼운 일상에서 적는 괜히 무거운 글 (1)


어린 시절에 밥상 앞에서 다리를 떨다가

아버지한테 심하게 혼난 적이 있다.

밥을 싹싹 긁어먹지 않고 밥풀을 남긴다고 맨날 혼나기도 했고,

친구와 치고받고 싸우고 집엘 왔을 때도 결국 다시 혼나는 건 내 몫이었다.  

잘못한 건 그 친구인데도 말이다.


그때는 도무지 아버지의 행동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 자식이 아니라 진짜 똥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애인 줄 알았고,

한동안 아버지 욕을 바가지로 하고 다니던 때가 있을 정도로,

아버지와 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그때의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해간다.





며칠 전 '드림 프로그램'이라는 자원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내가 맡은 베트남팀의 참가자들은 지적장애와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2주 동안 같이 먹고 자고 하면서 하루 종일 붙어 지냈는데

한창 잘 먹을 18살, 19살 아이들이라 그런지 혹은,

베트남에서보다 한국 밥맛이 좋아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은 늘 밥을 정말 많이 퍼담았다.

다른 참가자 아이들은 한 접시를 겨우 채울 때마다

우리 아이들은 늘 두 접시를 가득 채워 밥을 비웠다.


가끔은 그렇게 먹는 애들이 걱정되어서

배부르면 다 먹을 필요 없다고

억지로 먹다가 체하지 말고 남기라고 했지만,

'형 어떻게 밥을 남겨요. 이거 다 먹을 수 있어요'라며

매번 접시를 싹싹 비우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옆 테이블에 있던 다른 국가 아이가

밥을 많이 먹는 우리 아이들 모습이 신기했는지

낄낄 웃으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는 멀뚱멀뚱 밥을 먹고 있었고,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는 무슨 일인지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 아이도 너무 얄미웠지만

그 순간 화도 못 내고 그렇게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되려 화가 났다.

나의 아버지께서 내게 종종 보이시던 모습이 내 안에서 보였다.


그 아이에게 잘 타이르고 주의를 준 뒤,

나도 식사를 시작했지만 좀처럼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아이들이 먹는 걸 멍하니 바라보며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우리 애들이 밥을 다 먹어갈 때쯤 한마디 했다.

"아, 형 너무 배부르다 진짜"


"그러니까 배 부르면 다 먹을 필요 없다고 했잖아! 왜 그렇게 많이 먹은 거야!"

착하고 착한 우리 아이들한테 처음으로 입 밖으로 화를 냈다.

아무렇지 않은 배부르다는 말에도

아무렇지 않지 않고 괜히 속이 상한 마음에.




나의 아버지도 분명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그때를 조금씩 이해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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