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없이 자원봉사 활동해보려고 떠난 길바닥 여행기 (1)
사실은 도피에 가까웠다. 탈출이었다.
그러나, 무작정 탈출을 하려고 했던 것만은 아니다.
내게도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어떻게 사는 게 행복일까'에 대한 답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대충 '이런 게 행복한 삶이겠구나'싶은 심증은 있었다.
때는 20살 여름이었다. 자원봉사를 구실로 몽골로 떠났다.
그리고 그 낯선 땅에서의 첫날. 그때의 감동을 나는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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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어느 무더운 여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인근 빈민지역.
“여기서부터는 차가 갈 수 없어요. 모두들 내려서 이동할게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길이었다. 게다가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은 어찌나 울퉁불퉁한 돌멩이들이 많은지, 잠시라도 방심을 하면 ‘삐끄덕’하기 십상이었다.
“너무 어두워요.", "꺄악!", "발목 나가겠는데?"
여기저기서 원성 어린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밤눈이 밝은 나조차도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발을 헛디디기 일쑤였다.
그런데 목이 뻐근해 잠시 고개를 든 그 순간, 그 상태 그대로 나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하섭아, 갑자기 멈추면 어떻게 해. 빨리 걸어.”
“형. 잠시 하늘 좀 봐 보세요.”
넉이 나간듯한 내 목소리에 나머지 일행들도 잠시 멈춰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우와! 어떻게 밤하늘이 이렇게 아름답지?”
“이렇게 환할 수가! 이런 밤하늘 처음 봐. 별들이 어쩜 이렇게 많대?”
“봐! 점같이 촘촘한 별들이 밤하늘의 검은 여백을 다 덮어 버렸어!”
곳곳에서 감탄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원성이 감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주변이 전혀 어둡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신기했다. 어두워 땅만 바라보며 걸을 때에도 이 수많은 별들은 우리 머리 위에 떠 있었을 텐데, 단지 잠시 땅에서 눈을 떼고 하늘만 올려 다 봤을 뿐인데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서로의 걸음을 맞춰주며 걷는 동료들, 서로를 향해 던지는 따뜻한 웃음들, 몽골의 신선한 밤공기까지 이 모든 시공간 속에서 나는, 행복했다.
2주라는 시간 동안 몽골의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아낌없이 나를 드러내고 나누었다. 그 속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진정으로 행복했다.
몽골에서 느꼈던 것처럼 나에게 꼭 맞는 행복한 일을 찾고 싶었다.
'족보책 프로젝트'도, '모금전문가'라는 직업도 행복한 일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였다.
그러나 두 가지 일 모두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니, 현실적인 두려움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분명 존재했다.
쉽게 말해 내가 '행복'이라고 정의 내린 일들에 수반되는 현실적인 문제에 맞서기에는 내공이 딸려 허우적댔다.
친분이 있던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을 찾아뵈었던 건, 딱 그 무렵이었다.
교수님께 비영리 분야의 일을 하시는 이유를 물었는데, 순간 교수님께서는 생각에 잠기셨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가 자원봉사로 해외에 있을 때, 거리 모퉁이 조그만 공간에 한 사람이 보였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고. 이야기를 걸기 시작했었지. 워낙 가난한 동네였지만, 그 사람은 곧 죽을 사람처럼 더 가난해 보였거든. 그런데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지난 몇 년간 이렇게 누추한 모습의 나에게 말을 걸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당신이 처음이다. 말을 걸어줘서 정말 정말 고맙다.’라고 흐느끼면서 말이야. 아직도 그때를 잊을 수가 없어. 그때 느낀 뜨거운 무언가가 나를 이끌고 있는 거 같아”
이야기를 하시며 교수님은 눈물을 보이셨다.
‘아 아직 경험과 깊이가 나에겐 부족하구나.’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에 행복을 느끼는지를.
또 기르고 싶었다. 앞으로도 계속 부딪히게 될 어려움들을 극복할 힘을.
‘내 삶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세계일주를 하며, 현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NGO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사회적기업을 탐방하고 와야지. 그래, 내 안의 깊이를 채우는 밑바닥 여행을 하고 와야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이 밑바닥 여행, 완주해내야겠다.’
- 2011. 7. 다이어리 중에서. -
그동안 해오던 일들을 하나, 둘 내려놓고 여행 준비를 마친 가을의 문턱.
인천 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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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선 게이트에 선 내 손엔 인도 행 비행기 티켓이 꼬옥 쥐어졌다.
몽골 이후로 다시 한번 별을 보러 떠나야 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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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길이 너나 중길이를 왜 처음부터 어린애 취급을 했는지 알아? 아주 좋은 것들은 숨기거나 슬쩍 거리를 둬야 하는 거야. 너희는 언제나 시에 코를 박고 있었다구. 별은 보지않구 별이라구 글씨만 쓰구.”
- ‘황석영, 개밥바리기별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