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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철 Nov 25. 2023

<침대 밑을 치우며/최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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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밑을 치우며/최희철>
 
 침대를 들어내니 
 물건들이 화들짝 놀란다
 생활의 크기가 들켰기 때문 
 조강지처 같은 침대가 끌려 나가고 
 완강한 공간이 소란하다.
 
 청소기가 작동하자 
 건더기들은 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빨려 들어간다.
 빨판을 뻗어 버티던 놈들도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
 걸레가 개미핥기처럼 
 근거들을 먹어 치운다.
 
 일상으로부터 잊혀 진 그들은 
 먼지 속에서 자라는 해초(海礁)
 때론 잠수함 투수처럼 
 꿈의 방향을 걷어 올려 보기도 하였지만 
 누구도 관심이 없다.
 
 세상은 맑고 넓어졌으나 
 기댈만한 그늘은 걷혀지고 
 햇살에게 멱살까지 잡혀 숨쉬기 거북하다
 미래에 대한 약속도 없이 
 제거되거나 문신(紋身)처럼 
 검푸른 얼룩이 되어야할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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