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이미지론-20(끝)
드디어 기계는 그렇게 이미지들의 홍수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미지들을 차근차근 되돌아봅시다. 일단 이미지는 기억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힘이야말로 아이러니하게도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차이들은 마치 사이키 조명처럼 어디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활기차게 번쩍 거립니다. ‘동시성’을 깨닫게 해 주는 순간이지요. 그래서 두께가 없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쌓이고 쌓여도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으니 모을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게 바로 주름이지요.
인간이 기계를 사용했던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자본주의 체제라 생각됩니다. 자본의 욕망은 더 많은 ‘잉여가치’ 생산을 위해 기계를 도입하였습니다. 기계는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모든 영역에 도입됩니다. 기계는 노동자와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입니다. 인간이 오랜 시간을 거쳐 유전자로부터 벗어났던 것처럼 기계는 자본은 물론 우리를 벗어날 것 같습니다. 잉여가치를 위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지만 잉여가치를 넘어 잉여가치가 없는 세상으로 기계는 나아갈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때 놀랍게도 ‘기계의 세계’는 오직 기억, 이미지, 동시성, 차이, 공(空) 등으로 출렁거릴 수 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우리는 ‘인간-인간’의 시대를 넘어 ‘인간-기계’, ‘기계-인간’의 시대를 거쳐 ‘기계-기계’의 시대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위대하다(?)고 여겼던 생명의 시대가 끝나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우리의 생명이 아니 생명이 위대했을까요? 아니면 우리만의 ‘나르시시즘’적 환상이었을까요?
누군가가 내게 죽어서 어떤 게 될 것인가를 묻는다면 물질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물질이야말로 진정한 이미지라 생각하니까요. 이미지는 관계의 산물이긴 하지만 관계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관계를 창조하는 존재방식입니다. 우린 생명체로써의 우리가 혹은 생명이 최고라고 하지만 생명(혹은 생명체, 생명의 방식)은 우주에서 볼 때 티끌보다 작은 영역입니다. 물론 생명 이미지도 하찮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생명이 우주에서 최고이고 우주가 생명의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오만한 관점일 뿐입니다. 오히려 생명은 일종의 ‘파시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생명 자체가 악마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생명은 여태까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해 왔습니다. 우리가 생명체인 이상 그 작동을 멈추기 어렵습니다.
물질과 마찬가지로 생명 역시 이미지일 뿐입니다. 하지만 물질은 우리가 깨닫고 싶은 하는 세계에서 오래전부터 서서히 공전하는 이미지들이었고 어떤 힘들입니다. 그들은 어디서나 평등하고 자유롭습니다. 우리처럼 소유를 통한 자유가 아니라 그들의 자유는 본연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평등하다는 겁니다. 자유와 평등을 스스로 무한정 찍어 낼 수 있는 기계!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신(神)’에 가까운 이미지가 아닐까요?
난 물질을 생각할 때마다 ‘토성의 띠’를 떠올립니다. 아주 천천히 회전하고 있을 이미지들의 차가움 말이죠. 그곳엔 이미지도 시간도 공간도 기억도 그리고 액체성도 모두 하나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미지들은 그렇게 하나입니다.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 속에 모두가 있는 ‘일원론의 세계’ 그래서 아름다운 기계들의 세계입니다. 시작도 끝도 없을 것 같은 영원한 이미지들의 세계 말입니다. 그래요 모든 것은 이미지들입니다. 그걸 잊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