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론-19
기계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봅시다. 사진이 나오기 전 우리는 그림 같은 걸로 어떤 대상을 재현해 왔습니다. 하지만 속도가 아주 느렸고 심지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진 특히 영화가 나오면서 재현은 좀 더 쉬워졌습니다. 대상에 대한 관점을 잡고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그 양(量)도 많아졌습니다. 예전에 사진관할 때 휴일이면 사진기 빌리러 오는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한 사이’이로 불리는 올림푸스 카메라가 인기였습니다. 기억하기론 500원 했는데 그게 빌리는 가격 전부인지 아니면 보증금(카메라를 갖고 오면 돌려주어야 하는)이 포함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사이’는 당시 필름 한 장이 아니라 반장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사진의 시대엔 재현이 훨씬 수월해지고 양도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기계로 인해 우리가 쉽게 재현할 수 없는 것들도 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카메라를 아주 높은 곳으로 올려서 사진을 찍는다든지 아니면 낭떠러지 등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내려오면서 찍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의 다양성을 알게 된 것이죠. 예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떠나기 어려웠는데 카메라를 통해 우리는 쉽게 우리 자신을 떠날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는 객관과 주관의 세계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진 찍기 및 인쇄(인화) 그리고 그것들이 유통되는 영역과 속도의 변화입니다. 어떤 그림을 그리려면 그곳으로 화가가 직접 가야 하고 오랜 시간을 거쳐 겨우 몇 장을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림도 특정한 사람들만 소유하거나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현의 속도와 확산이 느렸던 것이죠. 하지만 사진은 그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모빌리티’ 시대의 맹아라고나 할까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보면 자신이 지금 그리고 있는 대상을 ‘진짜’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가장 비슷하게 그걸 베끼는 셈이죠. 그러므로 재현으로서의 그림은 대상으로서의 진짜보다 더 진짜일 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이데아’와 ‘현상계’의 관계죠. 하지만 카메라의 등장으로 재현되는 속도와 양이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실물을 직접 보지 않아도 여러 곳에서 그리고 늘 실물을 재현한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젠 실물보다 더 진짜 같은 재현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진이 실물보다 낫다 못하다 하는 말을 쓰는 경우가 그런 것이죠.
그리고 또 카메라라는 기계에 의한 재현은 실물보다 낫다 못하다가 아니라 실물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누구의 욕망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실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재현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재현은 새로운 가치를 갖게 됩니다. 실물이 아닌 재현으로서도 세계를 충만하게 할 수 있는 세상이 온 셈이죠.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기계에 의해 풍부하게 된 재현들은 그야말로 ‘재현 그 자체’라는 것이죠. 마치 노예주에게서 해방되어 자유를 찾은 노예들처럼. 이런 기계적 재현들은 새로운 미적 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자기들 스스로.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여태껏 ‘실물이라고 하는 중심에 묶여 잘 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 즉 ‘이미지’들의 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실물이 아니라 오직 ‘이미지들’만 존재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그 속도가 점점 확장되어 인간은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영역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정말 놀랍지만 당연한 일이지요.